산디노

 


1. 개요
2. 생애
3. 게릴라
4. 죽음
5. 그 이후

[image]
Augusto César Sandino (또는 Augusto Nicolás Sandino)

1. 개요


아우구스토 세사르 산디노 (1895년 5월 18일 - 1934년 2월 21일)
니카라과의 비운의 영웅,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반미 저항 운동의 상징.

2. 생애


산디노 가는 니카라과의 부유한 가문으로, 산디노는 이 가문의 서자로 태어났다. 한편 이때 니카라과는 끊임없는 내전 끝에 친미 정권이 들어섰는데, 1912년 7월 29일 국방장관 루이 메나가 친미 아돌포 디아즈 정권에 대해 레온에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고 [1], 이에 대응해 지켜보고 있던 미국이 개입, 해병대가 상륙하자 메나는 싸움을 포기하고 9월 23일 항복한다. 젤레돈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여전히 항전했지만 미군에게 코요토페 언덕 전투에서 패하고, 이 전투에서 포로가 된 젤레돈은 미군에게 처형되었으며 이틀 뒤 레온이 함락되면서 니카라과는 미국의 손아귀 안에 놓여지게 된다.
한편 산디노는 어머니를 욕하던 사람을 살해하려다 실패, 1921년 도망을 다니다 멕시코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산디노는 스탠다드 오일에서 일했는데, 이러던 중 멕시코 혁명이 일어났고, 멕시코 혁명의 반제국주의 사회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는다. 산디노는 살인미수 시효가 지나자 1926년 니카라과로 돌아온다.

3. 게릴라


한편 이때 니카라과에서는 아돌포 디아즈가 물러나고 보수당의 에밀리아노 차모로가 대통령이 됐는데, 중도성향의 카를로스 호세 솔로르자노가 당선되자 1925년 쿠데타를 일으켜 1926년 준내전 상태에 들어서자 미국이 다시 개입, 아돌포 디아즈가 다시 돌아오는 조건으로 차모로는 사임한다.
하지만 1927년 솔로르자노 밑에서 부통령으로 일하다 쫓겨났던 진보성향의 후안 바스티타 사카사가 돌아와 자신이 합법적인 대통령이라고 주장하면서 몬카다 장군이 이끌던 반란군과 합세, 전쟁이 다시 재발하는데, 이 정부를 멕시코가 합법적인 정부라고 인정한다. 이에 산디노는 니카라과에서 금 광부들로 이루어진 게릴라를 조직, 사카사를 지지하며 전쟁에 참여한다. 게릴라 자체는 대체로 성공적이였으나 임시정부에서는 독립적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사카사와 몬카다 둘 다 산디노를 불신한다. 세를 불리면서 승승장구한 몬카다가 이끄는 진보 군대가 1927년 마나구아로 진군하지만 미국이 개입하겠다고 협박하자, 사카사와 몬카다는 미국 대사 헨리 스팀슨과 에스피노 네그로에서 미군이 1928년 선거를 치룰 때까지 주둔한다는 조건으로 타협하여 평화조약을 맺는다.
하지만 산디노는 이를 조약을 미국에게 유리한 불평등 조약으로 부정하고, 미국을 민족의 적, 조약에 합의한 사카사와 몬카다를 반역자라 부르며 산에서 투쟁을 계속 이어나간다. 미국은 바이플레인으로 세계 최초의 공습을 할 정도로 19세기 총을 들고 싸우는 산디노 게릴라를 압도했다. 그래서 산디노의 게릴라 군은 니카라과 전역을 돌아다니며 미군과 친미 니카라과 정부를 꾸준히 괴롭히며 저항했다.[2] 이후 세계 대공황이 일어나 미국의 사정이 어렵게되자 1931년 미국무장관이 된 헨리 스팀슨이 철수를 건의하게 되고, 1933년 미국은 니카라과 정부에게 전권을 넘기며 완전 철수한다.[3]
1933년 사카사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산디노는 1934년 마나구아에서 사카사를 지지하며 항복하겠다 선언하고 사카사 대통령도 이를 받아들였다. 이렇게까지 보면 해피엔딩인데...

4. 죽음


산디노는 항복을 선언하며 한가지 조건을 걸었는데 그것은 미군이 훈련하고 미군을 위해 산디노와 싸웠던 국가 방위군의 해체였다. 이는 국가 방위군을 이끌던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가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고, 1934년 2월 21일 사카사와의 만남이 끝나고 차를 타고 돌아가던 중 국가 방위군에 습격당해 동생과 그를 따르던 동료들과 함께 허무하게 죽고 만다.[4] 산디노와 고위직 장군들을 한꺼번에 잃은 게릴라군은 지위체계가 혼란에 빠지게 되고,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국가 방위군은 손쉽게 게릴라군을 궤멸시킨다.

5. 그 이후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는 1936년 국가 방위군을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었던 사카사를 몰아내고, 1937년 1월 1일 정권을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산디노 정신을 이어받은 조직들은 여전히 소모사를 상대로 저항했고, 이들은 자신들을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라고 자칭했다. 그리고 결국 1979년 산디니스타가 소모사의 차남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를 몰아내는데 성공했으니, 산디노와 소모사의 전쟁은 둘의 사후 이후에도 50년동안이나 계속 되어온 셈이다.
니카라과의 아우구스토 세자르 산디노 국제공항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1] 여담으로 니카라과의 역사의 대부분이 진보성향의 레온과 보수성향의 그라나다의 이념 전쟁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 니카라과 수도 마나구아가 레온과 그라나다 사이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2]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미군이 철수할때까지 사상자는 135명에 불과하여 피해는 크지않았고 오히려 산디노의 게릴라군이 미군보다 더 심한 피해를 입었다. 특히 산디노의 게릴라군은 미국의 공습으로 대부분의 병력을 잃었기에 소수의 병력으로만 싸워야하는 상황이었다.[3] 산디노는 지금까지 싸워왔던 미국인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미국 노동자들을 공격한 일은 없을 것이라 선언했다.[4] 매복한 암살자들이 기관총으로 암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