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테이 엔라쿠(5대)

 

1. 개요
2. 생애
3. 쇼텐의 사회자


1. 개요


5대 산유테이 엔라쿠(5代目 三遊亭円楽, 1932년 12월 29일 - 2009년 10월 29일)는 일본라쿠고가다.

2. 생애


1932년 12월 29일, 도쿄부 도쿄시 아사쿠사구 (지금의 도쿄도 타이토구)에서 요시코 가정의 아홉 형제 가운데 태어났다. 원래는 식량이 떨어질 것을 염려해 농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농업학교를 졸업했으나 우에노에 위치한 스즈키 연예장에서 라쿠고를 보고 '전쟁으로 모든 것을 빼앗겨 어두운 안색을 비춘 사람들에게 이렇게 웃음을 끌수 있는 라쿠고는 대단해.' 라고 생각하면서 라쿠고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1955년 2월, 그는 서른이 될 때까지 신우치로 진급하지 못하면 라쿠고를 그만두겠다는 악속과 일본 전역에 웃음을 선물하고 싶다는 결의로 6대 산유테이 엔쇼(6代目 三遊亭圓生)의 제자가 되어 젠쇼(前生)라는 예명을 받았다. 그리고 1958년 3월에 후타쓰메로 승진. 1962년 10월에 신우치에 승진하고 5대 산유테이 엔라쿠(5代目 三遊亭円楽)라는 이름을 물려받았다. 그가 엔쇼에게 라쿠고를 그만두겠다고 약속한 서른이 되기 불과 3개월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선물로 부인에게 양갱을 받았는데 그 이후로 엔라쿠가 한번 화났다 하면 라쿠타로가 양갱을 주면서 화가 난 엔라쿠를 제어했다고....
그리고 나서 1965년, 친구인 다테카와 단시(立川談志)와 함께 니혼TV의 프로그램, 금요야석을 만들어 오오기리 코너의 사회자가 되었으나 오오기리의 사회가 익숙치 않은 엔라쿠는 첫회부터 실수를 연발했고 결국 친구인 단시에게 사회를 맡겼다. 그 후 금요야석은 1년 후 1966년. 시간을 금요일 오후에서 일요일 오후로 바꾸고 쇼텐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5월에 첫방송하였다.[1]
그러나, 쇼텐 출연자들과 다테카와 단시 사이에 불화가 생기게 된다. 사회자인 다테카와 단시는 블랙 코미디를 주류로 설정해 오오기리에서 사형수를 거론했고 엔라쿠가 관객들의 분위기를 보라면서 질책했던 것. 그러자 단시는 "이건 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야! 내가 한다면 하는 거지, 뭘 그렇게 말이 많아!"하면서 "내 말 안들을거면 나가!"라고 말했고 엔라쿠와 카츠라 우타마루, 하야시야 곤페이, 산유테이 코엔유 등 오오기리 출연자들이 줄줄이 하차하게 된다. 그러다 1970년에 새 사회자 3대 미나미 신스케와 새 오오기리 멤버 하야시야 키쿠조(지금의 키쿠오)와 함께 다시 쇼텐에 복귀하게 되지만 이번에는 엔라쿠의 생각으로 또 쇼텐을 그만두게 된다. 라쿠고가들이 TV나 라디오에 출연하면서 결국 라쿠고에는 무관심해질 거라는 것이 엔라쿠의 생각. 그 대신에 제자인 산유테이 라쿠타로(지금의 6대 엔라쿠)가 대리로 나오게 되었다.[2] 이 때부터 우타마루-라쿠타로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다.
그러다가 라쿠고협회 분열소동이 벌어지고.... 엔라쿠는 엔쇼를 따라 라쿠고협회를 나와 '라쿠고 산유협회'(지금의 엔라쿠일문회)를 세우게 된다.

3. 쇼텐의 사회자


이후 쇼텐 사회자인 미나미 신스케가 급사하자 결국 그는 1983년 1월 9일, 쇼텐의 사회자로서 복귀한다. 그리고 그는 역대 쇼텐 사회자 가운데 최장수 사회자로 기록이 됐다. 오오기리를 안정적으로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잘 웃기도 해서 반응도 좋은 편이었고 을 닮은 모습 때문에 멤버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2006년 5월 29일, 사회자 자리를 카츠라 우타마루에게 넘겨주고 쇼텐에서 하차했다. 그 이후 2008년 8월, 자신의 첫번째 제자 라쿠타로에게 엔라쿠라는 이름을 물려준 뒤 2009년 5월, 지병인 폐암이 재발하여 병원으로 입원한 뒤 같은해 10월 퇴원하고 그달 29일. 작고했다. 향년 76세.

[1] 이 쇼텐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다테가와 단시가 좋아한 소설인 효텐(氷点), 거기서 웃을 소자를 붙여 웃음의 포인트. 쇼텐(笑点)이 된 것이다.[2] 제자가 되기 전에는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가 대학 라쿠고 연구회로 들어와 엔라쿠의 가방을 들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