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달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서달선은 평안남도 강동군 출신이라는 것만 알려졌을 뿐 출생년도 및 전반적인 생애는 알려진 바 없다. 그는 1920년 강동군에서 이환욱(李桓郁), 이성규(李成奎), 이근배(李根培), 이석돈(李錫敦), 이죽수(李竹水), 최인택(崔仁澤), 최선식(崔善植)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후원하기로 결의했다. 그해 8월, 그는 비밀결사 농민단(農民團)을 조직하고 강동경찰서, 군내 원탄주재소, 고천주재소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계획했다.
1920년 9월 18일, 서달선은 이근배, 이죽수, 최인태, 최선식 등과 함께 강동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다. 그리고 9월 30일에 강동군 원탄면에 거주하는 부호 이관식(李寬植)으로부터 군자금을 받아냈다. 1921년 3월 30일, 서달선은 평남 대동군에서 대동청년독립단(大同靑年獨立團)을 결성하고 활동하던 김봉규(金鳳奎)과 조우한 뒤 그와 함께 대동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과 독립문서 배포를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이후 1921년 4월 17일과 4월 27일 평남 강동, 성천 등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했으며, 그해 12월 23일 중국 관전현 광복군총영 모험부장 겸 비서 주석환(朱錫煥)과 함께 평안남도통신연중앙기관(平安南道通信聯中央機關)을 조직해 만주 관전현에 자리를 잡고 있던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과 국내 독립운동단체와의 통신 연락을 담당했다.
그러나 1922년 1월 7일 일제 순사들에게 체포된 그는 그해 4월 19일 평양지방법원으로부터 강도,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3년을 받았다. 그는 이에 공소했지만 1922년 8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고 평양 형무소에서 7년 2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다가 1929년 3월 25일에 출옥했다. 이후 그가 어떻게 살았으며 언제, 어디서 사망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서달선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