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성(독립운동가)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서동성은 1897년 12월 13일 경상북도 대구시 중구 장관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0대의 나이로 일본으로 유학가서 도쿄에서 공부하다가 박열, 김정근(金正根), 이홍근(李弘根) 등과 함께 아나키즘 단체인 흑우회(黑友會)에 가입했다. 흑우회는 <흑도>, <불령선인> 등의 기관지를 발행하는 한편 신문사인 불령사(不逞社)를 결성했다. 그는 이 불령사에 입사해 불령선인 신문지의 기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1923년 8월 일본 황태자 암살 미수 사건으로 불령사 동지들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을 때 그 역시 연루되어 체포되었지만 예심에서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이후 귀국한 서동성은 1925년 9월 29일 대구에서 신재모(申宰模), 방한상(方漢相) 등과 함께 진우연맹(眞友聯盟)을 조직했다. 진우연맹은 흑우회의 후신인 흑색청년연맹(黑色靑年聯盟), 반역아여맹(反逆兒聯盟) 등 재일 아나키즘 단체와 연계해 일제에 대한 투쟁을 전개했다. 그들은 향후 2년 내에 대구부 내의 도청, 경찰서, 우편국, 법원을 비롯해 관서, 일본 점포 파괴 공작을 준비했으며, 경찰부장, 관서 수뇌부를 암살할 것을 계획했다. 그는 이를 위해 파괴단(破壞團)을 조직하고 상하이에 있던 아나키스트 유림을 통해 폭탄을 입수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연맹원 안달득(安達得)이 경찰에 체포된 후 가택수사를 당하던 중 발각되고 말았고, 서동성은 1926년 7월 경찰에 체포되어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9년 4월에 출소했다. 이후 자택에서 일제의 감시를 받으며 곤궁하게 지내다가 1941년 1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서동성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