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봉

 

성명
서상봉(徐相鳳)
이명
서기견(徐岐見)

기현(岐峴)

포송(抱松)
생몰
1870년 6월 16일 ~ 1927년 6월 13일
출생지
전라남도 목포시
사망지
전라남도 목포시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서상봉은 1870년 6월 16일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국 남 장로회 선교회 소속의 선교사 벨의 전도로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1898년 목포 양동교회(陽洞敎會) 설립에 참여하고 예수교 장로로서 목회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던 1919년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목사 이경필(李敬弼), 장로 양경팔(梁景八), 서화일(徐化一), 박여성(朴汝成)[1] 등 목포 기독교 인사들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독립만세시위 계획을 논의한 뒤 4월 8일에 청년 150명을 규합하여 만세 시위를 주동했다.
그러던 중 일본 경찰에게 양팔을 모두 칼로 맞아 중상을 입은 그는 체포된 뒤 5개월간 고문을 받다가 병보석으로 석방되었지만, 후유증에 시달린 끝에 1927년 6월 13일 자택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서상봉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박여성과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