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64년 겨울
1. 개요
김승옥의 단편 소설. 제10회 동인문학상 수상 작품으로 ‘사상계’ 1965년 6월호에 처음으로 발표되고서, 현재는 다양한 출판사에서 출판을 하고 있다. 단편소설 중에서도 고교 교육에서 잘 다뤄지는 단편 소설은 아니지만, 진도에 나가지 않더라도 심심풀이 삼아 교과서를 읽어 본 청소년들은 이 소설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교과서가 아니더라도 작가의 대표작 무진기행과 함께 실려있는 판본도 있다. 1964년 겨울 어느 날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우연히 만난 세 남자의 이야기가 수채화처럼 그려지고 있다. 한 사람의 불행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무관심을 보여주면서, 당시의 어두운 시대상과 함께 서울의 여러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 작가 소개
김승옥은 1941년 12월 23일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전남 순천에서 자랐으며, 서울대학교 불어불문과를 졸업했다. 1962년 소설 '생명연습'으로 데뷔했다. 1964년에 제 10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68년에는 대종상 각본상을 수상했고, 가장 최근의 수상 내역으로는 2012년에 제 57차 대한민국예술원상 문학부분에서 수상했다. '이차돈', '안개', '감자', '장군의 수염' 등의 영화 부분과 '무진기행', '서울의 달빛0장' 등의 도서 작품도 있다. 김승옥은 1960년대 도시 소시민의 삶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받으면서, 감각적인 문체와 새로운 주제의식을 통해 소설의 신기원을 열었다.
3. 요약
육사 시험에서 미끄러지고 구청 병사계 직원으로 일하는 25세의 고졸자 '나'는 동년배의 대학원생 '안'과 포장마차에서 처음 만나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눈다. 이들은, 사람들은 모르는 자신만이 본 것, 자신이 남긴 행위 등을 말하며,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하여 저마다의 감상을 나눈다. '''서울은 모든 욕망의 집결지'''라고 말하는 안과 잘 모르겠다는 '나' 사이에 도서 외판원으로 일하는 30대의 사내가 끼어든다. 그는 아내의 시체를 카데바로 세브란스 병원[1] 에 팔고 받은 돈을 다 써버리고 싶어한다. 나와 안은 그가 달갑지 않지만 함께 식사를 하고, 여관에서 가명의 이름을 쓰고 각방에 들어가 헤어진다.[2] 다음 날 외판원 사내가 자살하자, 안과 나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기 전에 서둘러 여관을 빠져나간다. 헤어지기 전 안은 나에게, "우린 스물다섯이지요?" 라고 묻는다.[3]
4. 배경
작품의 주인공 세 명이 살고 있는 서울을 배경으로 하였다. 가수 조용필은 그의 곡 <꿈>에서 서울을 ‘화려한 도시’이자 ‘춥고도 험난한 곳’이라고 표현했다. 1960년도에도 역시 서울은 가장 화려한 도시였지만 이면에는 춥고 험난한 모습이 있었다. 많은 부자와 가난뱅이들이 제 삶을 사느라 바쁜 도시, ‘안’이 말한 것처럼 온갖 욕망이 집결한 도시가 바로 서울이었다. 그리고 ‘겨울’은 무관심과 비인간적인 사회 분위기를 나타내는 배경이다. 즉, ‘서울, 1964년 겨울’이라는 제목은 ‘겉으로는 화려하나 한편으로는 갖은 욕망이 들끓고 있는 공간, 누구도 깊은 속내를 드러내지 못했던 시대, 무관심과 비인간적인 사회 분위기’를 말하고 있다.
5. 등장인물
- 나: 시골 출신이고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했다가 실패 후 구청 병사계에서 일하고 있다. 사내의 일과 엮이지 않기 위해 숙박계에 거짓 정보를 쓴다.
- 안: 대학원생이자 부잣집 장남이다. ‘나’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서로 자신밖에 모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사내가 자살할 것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고, 그 다음날 아침 ‘나’에게 사내를 두고 빨리 여관에서 도망치자고 한다.
- 사내: 급성 뇌막염으로 죽은 아내의 시체를 세브란스병원에 카데바로 팔고 죄책감을 느낀다. 카데바 값으로 받은 사천 원을 중국집에서 음식을 먹고, 귤을 사 먹고, ‘안’과 ‘나’에게 넥타이를 사주는 등에 쓰고, 나머지는 화재 현장에서 불길 속에 던져버린다. 아내를 판 돈을 다 쓰고 여관 방에서 자살한다.
6. 줄거리
구청 병사계에서 일하는 말단 공무원인 ‘나’는 선술집에서 대학원생인 ‘안’과 만나 구운 참새를 먹으며 이야기를 한다. 그러던 중 ‘나’가 먼저 안에게 질문한다. “안형, 파리를 사랑합니까?” 질문에 ‘안’이 머뭇거리자 나는 “날 수 있으니까요. 아닙니다. 날 수 있는 것으로서 동시에 내 손에 붙잡힐 수 있는 것이니까요.”라고 대답했다. 나의 대답에 이어 ‘안’은 "김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라고 질문했고 ‘나’는 버스에서의 이야기를 한다. “시간이 조금 가고 내 시선이 투명해지면서부터 나는 그 여자의 아랫배가 조용히 오르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르내린다는 건……호흡 때문에 그러는 것이겠죠?" 그들은 질문에 이어 사소하지만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의미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선술집에서 일어나려 하자 한 무기력한 사내가 그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부탁했다. 그 사내는 '나'와 ‘안’을 중국집으로 데려가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월부 서적 외판원이다, 결혼 후 아내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다, 하지만 오늘 아내가 죽었고 그 시체를 병원에 팔았다는 것. 그리고 그 돈을 오늘 밤 동안 모두 써버릴 것이니 함께 있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와 ‘안’은 사내에게 동의하고 그들은 중국집에서 나온다. 그 때 소방차가 지나간다. “택시! 저 소방차 뒤를 따라 갑시다” 그들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불구경을 하기로 의견을 합친다.
하지만 불구경에 대한 세 사람의 생각은 모두 달랐다. ‘안’은 불구경이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흥미가 없어 안이 하는 말에 성의 없이 대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사내’는 불길 속에서 아내의 모습을 보고 환각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별안간 가지고 있던 돈을 전부 손수건에 싸서 불길 속으로 던져버린다. 불구경 후 사내는 자신과 함께 여관에서 잘 것을 부탁한다. 그들은 여관에서 숙박계를 거짓으로 작성한 후 각자 따로 방을 잡는다. 화투라도 하자는 ‘나’의 말을 ‘안’이 거절한 후 그들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서 잠을 청한다. 다음날 아침, ‘안’이 ‘나’를 깨웠다. “그 양반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여관에서 도망친 후 서로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냐는 말을 한 채로 헤어진다.
7. 주요 사건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중략) 아내는 어떻게 될까요? 학생들이 해부 실습하느라고 톱으로 머리를 가르고 칼로 배를 찢고 한다는데 정말 그러겠지요?”
당시 병원에서 시체를 구하는 방법은 첫째, 기증을 받는 것이다. 의학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시체를 기부한다고 의사를 밝힌 시체(카데바)를 구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은 무연고자 시체를 찾는 것이다. 무연고자 시체란 길거리에서 신분증 없이 변사체로 발견된 후 연고자를 찾지 못한 시체를 말한다. 합법적으로 구하는 방법이 이 정도뿐이니 시체가 부족한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화장터에서 화장하기 전에 시체를 빼돌리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짜로 시체를 화장해 준다고 홍보를 하여 시체를 가져갔다. 또는 불법적으로 시체를 사기도 했다.
“택시! 저 소방차 뒤를 따라갑시다.”
그들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불구경을 하기로 의견을 합친다. 물론 ‘불구경’에 대한 셋의 생각은 다 달랐는데, ‘안’은 불구경이 재미없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다지 흥미가 없어 ‘안’이 거는 말에 아무렇게나 대답한다. ‘사내’는 불길 속에서 아내의 모습을 보고 그런 사내에게 ‘안’은 위로가 아니라 현실적인 말을 한다. 그들은 함께 불구경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부질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이 장면에서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서로에 대한 생각과 세 사람이 바라보고 있던 것이 서로 제각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시죠? 술 취하신 것 같은데...”
“월부 책값 받으러 온 사람입니다.”
‘사내’의 직업은 외교원이었다. 외교원이란 영업사원, 판매사원을 말한다. ‘사내’는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 ‘나’와 ‘안’과 함께 있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들은 사내의 돈을 다 쓸 때 까지 함께 있기로 한 계약 관계였기 때문에 돈을 마련하기 위해 월부 책값을 받으러 간 것이다. 사내는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아내의 시체를 판돈까지 다 써버렸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나’와 ‘안’과 함께 있기 위한 돈을 구하는 것도 실패한 사내의 절망과 슬픔은 매우 깊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내는 그 자리에서 “여보”라고 중얼거리며 울 수밖에 없었다.
“숙박계엔 거짓 이름. 거짓 주소, 거짓 나이, 거짓 직업을 쓰고 나서 사환이 가져다 놓은 자리끼를 마시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는 꿈도 안 꾸고 잘 잤다.”
숙박계는 일제강점기에 독립 운동가들을 색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위생법’의 잔해로 불시에 범죄예방과 범인 검거를 목적으로 1980년대까지 유지되었다.
‘나’는 이 여관에서 어떠한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하여 거짓으로 인적사항을 적은 것이다. 거짓된 인적사항을 적으면 경찰의 수사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내’를 위로해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사내에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는 거짓으로 인적사항을 적음으로 책임과 부담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 것이다.
세 사람은 서로 약속한 것처럼 숙박계에 거짓 인적사항을 적었다. 당시 숙박계를 거짓으로 쓰는 경우가 실제로도 많았지만, 작가가 이 부분을 특히 강조한 것을 보면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소외감과 거리감, 진실 된 관계 맺기를 거부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방은 각자 하나씩 차지하고 자기로 하지요.”
“혼자 있기가 싫습니다.”라고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혼자 주무시는 게 편하실 거예요.”안이 말했다.
심리적으로 위태로운 사람에게는 따뜻한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관심을 주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나와 안은 사내를 돌보지 않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고, 사내는 쓸쓸히 죽는다.
방은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다. 방은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둘 수 있는 장치, 사람들 사이의 마음을 가로막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함께 있어달라고 부탁하는 사내를 외면하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안과 나의 모습을 통해서 타인의 삶과 자신을 무관하게 여기고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8. 특징
-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안 형’, ‘김 형’, ‘사내’ 등으로 익명화시켰다.[4]
- 이것은 등장인물들이 그 시대에 살아갔던 평범한 시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세 등장인물(근현대 도시인들)의 의사소통이 단절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 이름이 있다는 것은 어떠한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익명화를 통하여 등장인물들의 개성을 박탈시켰다.
- ‘안 형’ 은 사내의 죽음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내를 결국 혼자 자게 한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산업화로 인하여 서로에게 매우 무관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갈 길만 찾기 바빴음.)
- 비유적인 어휘를 사용하였다.
- ‘사내’가 죽은 뒤에 여관을 나가려는 ‘나’의 발밑에 개미가 있다. 그 개미는 죽은 사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혹은 나의 죄책감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개미가 자신의 발밑에 가까이 오자 발을 다른 곳으로 디딘다. 이를 통해 ‘나’는 사내의 죽음에 관련되지 않길 바라고, 사내의 죽음에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생각함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 화재 현장 앞에 걸터앉아 불구경을 하는 세 인물의 모습을 통하여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개인적임을 알 수 있다.
- '안 형’과 ‘김 형’ 의 대화에서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의 대화는 어떠한 소통의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본인들이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데, 이는 대화를 통한 관계 맺기가 성립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9. 평가
김승옥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와 건조한 묘사가 적절히 어우러졌다. 또한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 도입된 개인주의를 성찰하고, 이를 화합하지 않은 채 끝맺는 실험적인 구성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시대적 변화는 있으나 현대에도 통용되는 근대 문학의 한 표본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