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아
1. 개요
한국의 만화가...라기 보다는 해적판용 필명.
2. 설명
1980~1990년대 한국의 만화시장을 휩쓴 인물로 걸출한 명작들을 배출해냈다. 아마 1980년대에 소년기를 보냈던 사람이라면 열에 아홉은 성운아의 만화를 보고 자랐을 것이다. 대표작은 이름만 대도 대충 알만한 용소야 시리즈와 쿤타맨.
성운아의 가장 큰 특징은 장르를 가리지 않으며 엄청난 다작을 하면서도 퀄리티는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점이었다. 심지어는 그림체까지 마음대로 바꿀 수 있었던 만화가로서 절정의 경지에 달했던 인물. 무엇보다도 만화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첫작인 권법소년 용소야가 히트한 후 시리즈화하여 나인볼 황제 용소야, 유도황제 용소야, 야구황제 용소야 등 스포츠쪽으로도 진출했다.
해적판 문제가 여론화된 1990년대 이후로는 행방이 묘연해져 상태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해적판 만화를 전문으로 출판하던 다이나믹콩콩코믹스라는 회사에서 내세운 인물로, 진짜 정체는 일본 원판을 보고 베껴 해적판을 그리던 만화가'''들'''의 집단을 그냥 성운아라는 인명으로 낸 것. 이는 권법소년의 전성기도 마찬가지이다. 전성기나 성운아, 이외 몇몇의 필명은 상당히 여러 작품에 사용된다. 권법소년. 용소야. 쿤타맨만이 아니라 그외에도 상당수의 작품에 사용된다. 성운아는 특히 자주 사용된 편.
20세기 한국 해적판만화의 복제방식은 한국의 만화가들이 직접 베껴그리거나, 복사기로 복사해서 화이트로 수정만 하는 수준으로 나뉘어지는데, 성운아 명의로 해적판 만화가 나오던 시기는 전자에서 후자로 이행되던때라 양쪽 방식이 섞인 경우도 있었다. 특히 전자 같은 경우는 한국인 작가[1] 가 본인의 이름 혹은 해적판용 필명(?)으로 이러한 해적판 만화들을 베껴그렸다고 하는데, 이러한 유령작가명 시스템은 이런 작업관행의 흔적일 가능성도 있다.
애초에 해적판 자체가 트레이싱에다가 얼굴만 용소야(쿵후보이 친미)로 바꾼 것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림체도 바뀌고 장르도 맘대로 넘나들었던 것이다. 1990년대 중후반 들어 대원과 서울문화사가 라이센스판 대량 정발로 맞불을 놓으면서 해적판의 범위는 기존 인기작에서 비인기작, 비디오 게임 앤솔로지 코믹[2] , 동인지로 차례차례 좁혀졌고, 이로써 해적판 출판사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이에 따라 당시 해적판을 그리던 이들은 일본 성인만화를 표절해 그리는 일을 하거나, 일본 만화 번역본에 식자를 붙이는 일을 주로 맡게 됐다. 복사기 형태의 해적판에서 효과음을 넣거나, 여성의 노출된 신체에 수영복이나 티셔츠를 입히는 해적판 나름의 자주규제도 이 사람들이 주로 맡아서 했다. 다만 이것도 일본 만화가 다수 나오던 1990년~ 2000년대 초반 시절 이야기고, 인터넷 시대 들어서 해적판 2.0이라고도 볼수 있는 불법번역본(ex.마○○루, ○시시)이 범람하면서부터는 일이 줄거나 끊겼을 듯.
이름의 유래는 크라잉 프리맨의 작가인 이케가미 료이치의 1983년 작품 <세이운지>(星雲児)를 독음 그대로 읽은 것인 듯하다.
[1] 그중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중견 만화가들도 섞여있었다. 당연히 대부분의 본인들에게는 흑역사.[2] 이쪽의 경우 절대다수가 게메스트를 출간하던 신세이샤 계열의 만화책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