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충(삼국지)

 

盛沖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생애


1. 개요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

2. 생애


247년에 낭중을 지내면서 사자와 함께 손휴에게 학문을 전수했으며, 253년에 제갈각손준에게 암살되자 조정의 신하들 중에 제갈각을 위해 비를 세워 그의 공훈을 기록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 때 박사를 지내고 있던 성충은 그러한 일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손휴는 이 말을 듣고 한여름에 군대를 출동시키고 병사들을 손상시켜 조금의 공도 없으므로 그에게 재능이 있다고 할 수 없으며, 어린 군주를 보필하는 임무를 받고도 어린 아이의 손에 죽어 지혜로울 수 없다면서 성충의 의견에 동의했다.
262년 겨울 10월에는 손휴가 성충, 위소와 함께 도덕, 육예에 대해 토론하기를 원했는데, 성충은 위소와 함께 평소 성실하고 솔직했기에 장포가 성충이 위소와 궁궐로 들어와 손휴를 가까이 모시면서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자신의 과실을 발견해 전권을 휘두를 수 없게 할까봐 걱정이 돼서 이를 막으려 했다.
손휴가 낭야왕이던 시절에 장포가 좌우장독으로 있으면서 총애를 받았는데, 손휴가 황제에 오르면서 총애를 받아 국가의 권력을 독점하고 무례한 행동을 많이 했다. 장포는 스스로의 단점을 꺼리면서 성충, 위소 등이 이 일을 말할까 두려워했으며, 손휴는 결국 장포의 의견에 따라 성충을 위소와 함께 궁궐에 들이지 못하게 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