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리그 오브 레전드)/배경
1. 장문 배경
아이오니아 범죄 세계의 거물인 세트는 지금 모습과는 다르게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났다. 아이오니아의 바스타야 종족과 녹서스 출신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수' 소년 세트는 세상 빛을 본 순간부터 배척당했고, 세트를 보고 놀란 바스타야 부족 사람들은 그의 어머니와 가족을 추방했다. 바스타야와 인간의 사랑은 금기시되었기에 아이오니아의 인간들 역시 이들을 못마땅해했지만, 악명 높은 투기장 전사였던 세트의 아버지 때문에 대놓고 반감을 표시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세트의 아버지가 홀연히 사라지면서 가족의 안정적인 생활도 끝이 났다. 불편한 심기를 숨기고 있었던 사람들이 세트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어디로 갔는지, 왜 갑자기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인지 알 수 없었던 세트는 어리둥절했다. 사람들의 조롱과 위협을 견디며 세트는 빠르게 성장했고, 점점 주먹을 사용해서 자신을 모욕하는 이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소문을 들은 세트의 어머니는 자신의 남편이 싸웠던 녹서스식 투기장에 얼씬도 하지 말 것을 아들에게 당부했다. 하지만 싸움을 거듭할수록, 세트는 아버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밤, 세트는 어머니가 잠들길 기다렸다가 몰래 투기장으로 향했다. 어렴풋한 기억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투기장에 도착한 세트는 순식간에 그 매력에 사로잡혔다. 갓 아이오니아에 상륙한 수십 명의 녹서스 병사들이 주변 관객석에서 함성을 질렀다. 투기장 중앙에는 다양한 출신의 전사들이 자신만의 기술과 무기를 활용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으며, 승자에게는 막대한 양의 녹서스 주화가 주어졌다. 경기가 끝나고 세트는 아버지에 관해 수소문하다가 충격적인 얘기를 듣게 되었다. 계약금을 다 청산한 세트의 아버지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투기장을 찾아 외국으로 떠났다는 사실이었다. 가족을 버리고 돈을 택했던 것이다. 분노에 사로잡힌 세트는 투기장 관리인을 만나 경기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언젠가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와 투기장에서 맞붙으려는 심산이었다. 관리인은 세트를 바로 다음 경기에 배정했다. 자신이 자랑하는 최고의 전사에게 훌륭한 제물이 되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처음 경기에 나선 순간부터 '반인반수 꼬마' 세트는 투기장의 최고 화젯거리가 되었다. 정식으로 무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타고난 힘과 야만성을 활용해 기술적으로 훨씬 뛰어난 상대들마저 공성 망치처럼 돌격해 제압해 버렸다. 자신의 아버지와 투기장에서 맞서 싸울 날만 꿈꾸며 결투를 계속한 세트는 곧 '투기장의 제왕'으로 등극했다. 벌어들인 우승 상금으로 세트의 주머니는 두둑해졌다.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매일 밤 경기를 마치고, 세트는 돈과 살림에 도움이 될 만한 물건들을 어머니에게 건넸다. 물론 돈의 출처는 절대 밝히지 않았다. 출세한 세트의 모습에 어머니는 자랑스러워했고, 더는 허드렛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세트의 얼어붙었던 마음이 점점 녹아내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투기장의 제왕도 수입이 쏠쏠했지만, 투기장을 직접 소유하면 더 큰돈을 만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어느 날 밤, 역대 최다 관중이 군집한 가운데 방어전에서 승리한 세트는 녹서스 관리인 패거리에게 투기장 통제권과 수익권을 요구했다.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세트는 문을 걸어 잠갔다. 몇 분 후 문이 열리자 만신창이가 된 녹서스인들이 밖으로 나오며 반인반수 전사가 투기장의 새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소리쳤다. 이제 세트는 한때 자신이 싸웠던 투기장의 주인이 되었다. 최근에 전쟁을 겪었던 아이오니아인들은 새롭게 발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투기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세트는 폭력을 갈망하는 이들을 이용해 어릴 적 꿈꿨던 것보다 더욱 막대한 부와 권력을 손에 쥐었으며, 투기장을 도박과 범죄의 지하 제국으로 변모시켰다. 투기장 최고의 전사가 된 반인반수 꼬마는 이제 범죄 세계의 제왕이 되었다. 누구든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면 직접 나서서 힘의 차이를 몸소 보여 주었다. 세트의 주먹은 빈곤하고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했던 자신의 옛 삶을 향한 일격이자,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
2. 자만심의 말로
[image] "금고는 누가 지키고 있지?" 내가 물었다. 빼빼 마른 몸으로 문 앞에서 무기를 나르던 셰라프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날 쳐다봤다.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게 있는지 생각하며 겁먹은 모양새다. "료입니다. 오늘 밤은 료가 금고 담당입니다." "두 명 더 붙여." 오늘 밤은 내기에 참여한 사람이 많았다. 쥐새끼 같은 놈들이 돈을 들고 튀면 곤란했다. 허둥지둥 사라진 셰라프는 이내 덩치가 가장 좋은 부하 두 명을 데려왔다. 두 녀석이 금고를 지키는 료와 합류하는 모습을 확인한 나는 다시 투기장 상황을 확인했다. 투기장은 꽉 차 있었다. 온갖 지위의 사람들이 문 앞까지 바글바글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피에 대한 갈망 하나로 모인 것이다. 곧 그들이 원하는 것을 볼 수 있을 터였다. 인기 투사인 독사 프란이 어슬렁거리며 기나긴 입장을 마친 참이었다. 조각 같은 몸 전체를 초록색으로 칠한 그는 왼쪽 팔뚝에 작은 원형 방패를 차고 있었다. 상대를 마주하려 투기장에 들어서는 그의 허리띠에는 독사처럼 보이게 칠한 악명 높은 채찍검이 얌전히 감겨 있었다. 도전자는 슈리마 출신의... 패런? 패럴이던가? 이름은 그가 승리한다면 외워도 늦지 않았다. 도전자는 독사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등에 멘 쌍 단검을 어서 쥐고 싶은 듯 손이 벌써 어깨 위까지 올라간 상태였다. 이 결투를 위해 세계의 절반이나 되는 거리를 달려왔으니 이곳의 인기 투사라는 자에게 당할 생각은 추호도 없을 것이다. 투기장 관리인이 스카프를 흔들자 결투가 시작됐다. 투사들은 결투장 중앙에서 빙빙 돌며 거리를 유지했다. 그때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기로 유명한 독사가 채찍검을 뽑아 자신의 몸 주위로 마구 휘둘렀다. 몸에 상처를 내지 않고 이런 묘기를 보일 수 있는 자는 전 세계에서 여덟 명 정도뿐이었다. 그는 실력을 과시하는 걸 좋아했다. 도발에 모욕을 받은 도전자는 단검을 뽑아 빠른 속도로 질주하며, 비정상적인 각도로 바람을 가르고 있는 칼날의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독사는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 방패로 단검을 쳐 냈다. 순간 도전자가 균형을 잃었다. 영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도전자의 몸이 기울었다. 양손은 허리쯤 놓여 있었다. 몸통이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된 것이다. 독사는 흐르는 듯한 동작으로 상대를 향해 채찍검을 휘둘렀고 도전자는 그 자리에 처참히 쓰러졌다. 관중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금고는?!" 난 뒤쪽에 있는 녀석들에게 소리쳤다. "가져왔습니다!" 셰라프의 대답과 동시에 흥분한 관중이 내기에 건 돈을 받기 위해 통로로 몰려들었다. 다시 결투장을 내려다보니 부하들이 패배한 도전자를 시신 운반용 수레에 싣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독사가 팬들과 승리를 만끽하는 중이었다. 얼굴에는 어떤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나도 잘 아는 표정이었다. 안도감도 만족감도 아닌 자만심에 가득 찬 표정이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한 시간 후, 관중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금고도 정산이 끝나 텅 빈 상태였다. 부하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는 찰나 문 앞에서 누군가 길을 막았다. 독사였다. 손에 빵빵한 돈주머니를 들고 있었지만 만족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따질 문제가 있단다. 예상대로였다. 나는 무슨 문제냐고 물었다. 방금 기록적인 수의 관중 앞에서 엄청난 승리를 거두지 않았냐고 했다. 그게 문제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신이 기록적인 수의 관중을 끌어들였으니 그 몫을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내 몫에서 떼라는 소리였다. 그의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내가 이 투기장을 차지했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으니까. 하지만 원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해서 줘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난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독사는 폭발했다. 자기가 이 투기장에 있는 걸 고마워해야 한다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저처럼 채찍검을 다루는 사람이 몇인지 압니까? 아홉입니다!" "아홉이라. 이거, 그새 한 명이 더 늘었나 보군." 그는 나더러 돈 좀 벌더니 투기장에서 목숨 걸던 시절을 잊었냐며 계속 입을 놀렸다. 어느새 부하들이 와서 대화를 엿듣기 시작했다. 내가 유하다고 착각하게 둘 수는 없었다. 독사에게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지 확실히 보여 줄 때가 된 듯했다. 그도 물러서지 않았다. "당신은 이제 볼 장 다 본 과거의 승자일 뿐입니다. 이제 모피 외투에 파묻혀 진짜 투사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게 다죠. 그런 일은 누구든 할 수 있어요." 그건 용납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난 독사에게 투기장에서 대결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럼 내 실력이 여전하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그는 물러설 수 없었는지 결국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제가 이기면 투기장은 전부 제 것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독사는 내 조건도 말해 보라는 듯 얌전히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내가 원할 만한 것을 갖고 있지 않았다. 난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관중 앞에서 대결하자고 했다. "돈은 챙겨야지." 결투의 날이 다가왔다. 사람이 어찌나 많이 왔는지 투기장 밖으로 넘칠 지경이었다. 오늘 밤에는 부하 다섯을 금고에 붙였다. 나는 투기장으로 나갔다. 둥둥 울리는 북소리와 관중의 함성이 들려왔다. 독사는 맞은편에 서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몸을 초록색으로 칠하고 성급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난 바스타야답게 마지막 자비를 베풀었다. 투기장을 가득 메운 이들에게 내게 범한 무례를 말하고 반성하면 결투를 취소해 주겠다고 말이다. 독사는 침을 뱉더니 머리 위로 채찍검을 맹렬히 휘둘렀다. 물러설 기세가 아니었다. 투기장 관리인이 스카프를 흔들자 독사는 일순간 결투장을 반쯤 가로지르며 나를 향해 채찍검을 휘둘렀다.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성가신 녀석이 휘두른 무기가 뺨을 스쳤다. 그는 검을 몇 번 더 휘두르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기묘하게 흐물거리는 검을 쳐 내려던 그때, 방패가 얼굴을 강타했다. 나는 바닥에 나자빠졌다.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그가 채찍검을 들어 올렸다. 결투가 시작한 지 1분 만에 패배할 위기였다. 이럴 수는 없었다. 채찍검이 다시 한번 목으로 날아들었다. 난 그냥 검을 잡았다. 초록색으로 얼굴을 칠한 독사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가슴이 세차게 뛰고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입가로 낮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손바닥의 고통을 느낄 새는 없었다. 나는 일어서서 채찍검을 잡아당겨 그를 반대편 주먹 쪽으로 홱 끌어당겼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황동 너클을 낀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몇 번 더 후려쳤다. 주먹질을 멈추자 그는 깨진 이를 뱉으며 내가 지금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를 저지르는 거라고 말했다. "뭐 하는 겁니까? 관중을 끌려면 제가 필요할 텐데요." "이봐, 넌 지금 볼 장 다 본 과거의 승자에게 지고 있어. 이제 네 결투를 돈 주고 볼 사람이 있을 것 같아?" 그는 마지막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투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에게 만만하게 보이면 곤란했다. 난 독사의 목을 쥐고 일으켜 세운 후 온 힘을 다해 땅으로 내리꽂았다. 탐욕에 빠진 얼간이는 바닥에 처박힌 후 잠시 몸을 움찔거리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관중은 열광했다. 그날 밤 늦게 평소처럼 어머니 집에 들렀다. 어머니는 이미 잠자리에 든 상태였다. 나는 조용히 서랍 위에 돈주머니를 올려놓고 어머니 이마에 입을 맞췄다. 어머니는 눈을 떠 침대 옆에 있는 아들을 보고는 가만히 미소 지었다. 내가 어머니의 뺨을 어루만지자 어머니가 내 손의 붕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채찍검을 잡아 상처가 난 곳이었다. "세상에. 세트라이, 손이 왜 이러니?" 어머니가 걱정이 그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별일 아니에요. 공사장에서 손을 베였거든요." "오늘은 뭘 지었니, 아들?" "고아들이 살 고아원이에요, 어머니." 나는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착한 우리 아들." 생계를 착실히 꾸려 가는 아들이 자랑스러운 듯, 다시 잠에 빠져드는 어머니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