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림 3세
1. 개요
오스만 제국의 제28대 술탄.
이름은 셀림 빈 무스타파이다. 제국의 근대화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예니체리 군단의 반발로 폐위당해 살해된 비운의 인물이다. 엠파이어 토탈 워를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익숙할 '니잠 시리즈'가 바로 이 사람의 작품이지만 큰 활약을 해보지 못하고 예니체리의 쿠데타로 폐지되었다. 하지만 니자므 제디드 보병대는 이후로도 꾸준히 개혁되어 탄지마트 개혁 때 새로운 보병대로 재탄생했다는 의의가 있다.
2. 즉위 이전
1761년 무스타파 3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오스만 제국 황실은 1725년에 태어난 압뒬하미트 1세 이후로 후계를 이을 아들이 줄곧 없었기 때문에 셀림 3세는 어린 시절부터 각별하게 키워졌다. 셀림 3세는 황자 시절부터 시인, 예술가 황제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문학과 서예에 조예가 깊었으며, 오스만 제국의 정치적, 경제적 혼란을 해결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개혁에 대한 열망을 가져 오스만 제국의 근대화 계획을 수립했다.
3. 근대화 정책
셀림 3세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전쟁 중인 1789년에 왕위에 올랐다. 삼촌인 압뒬하미트 1세의 뒤를 이어 술탄이 된 그는 개혁위원회를 세우고 서구화 정책인 니자므 제디드를 추진했다. 개혁에는 토지, 행정, 조세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개혁의 가장 핵심적인 부문은 군사였다. 오스만 제국의 군대인 예니체리는 결혼과 세습이 가능하게 된 이후 오스만 제국 말기부터 부패하여 혈연을 중심으로 한 이익집단으로 변모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셀림 3세는 오스만 제국의 군사 개혁이 가장 시급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군사 개혁에 역점을 두어 군사 교육을 유럽식 교육으로 개편하는 한편, 개혁의 이름을 딴 니자므 제디드라는 신식 군대를 창설하여 예니체리를 대체하고자 했다.
예니체리들은 이 정책에 당연히 반발했으며, 예니체리뿐만 아니라 신학자들과 보수 세력들도 개혁에 반발했다. 하지만 셀림 3세는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혁을 계속 추진했다.
니자므 제디드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이집트 원정 때 프랑스 군대와의 전투에서 일부 활약하기도 했으나, 오스만 제국은 결국 피라미드 전투에서 프랑스에 크게 패배했다. 개혁의 한계가 드러난 셈이다. 셀림 3세는 1804년 나폴레옹의 황제 직위를 인정했다.
4. 몰락
이전에도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개혁을 막기 위해 전 술탄인 오스만 2세에게 하극상까지 벌였던 예니체리가 이 개혁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예니체리들은 1805년 에디르네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1807년 셀림 3세를 폐위시키고 감옥에 투옥했다. 그리고 셀림 3세의 뒤를 이어 무스타파 4세를 옹립하여 셀림 3세의 개혁은 중단됐다.
1808년 루스추크에서 개혁파인 알렘다르 무스타파 파샤가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셀림 3세를 복위시키고자 했다. 예니체리는 개혁파가 이스탄불로 진군하기 전에 셀림 3세를 암살했다. 셀림 3세는 그렇게 4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 후 개혁파는 이스탄불을 장악하여 무스타파 4세를 폐위시키고 대신 마흐무트 2세를 옹립했다.
5. 대중매체에서
엠파이어 토탈 워에서 등장한다. 작중에서는 능력치가 꽤 좋다.[1]
[1] 게임 중에서 오스만은 초중반에는 유럽식 전열 보병이 아예 없거나 일단은 전열보병 역할이지만 능력치가 현격하게 딸린 징집병과 능력치 자체는 괜찮지만 역할이 한정 된 예니체리들만 굴리다 후반 개혁을 마쳐야 설정상 유럽식 군제 개혁을 통해 양성 된 신부대 니잠 시리즈가 나온다. 이를 보상하기 위해 니잠시리즈는 동시대 다른 일반 유럽 전열보병에 비해 능력치가 꽤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