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식

 

성명
손인식(孫仁植)
생몰
1894년 5월 10일 ~ 1975년 4월 21일
출생지
경상도 대구도호부 내당동
(현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
사망지
경상북도 대구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손인식은 1894년 5월 10일 경상도 대구도호부(현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광주로 이사가서 그곳에서 살아가다가 1919년 3월 10일 오후 3시 광주의 장날을 이용해 김강(金剛), 김철(金鐵), 최병준, 최한영(崔漢泳)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다.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읍내를 돌면서 경찰서 앞으로 행진했다가 일본 경찰과 기마헌병이 출동하여 주모자들을 연행하자, 흩어진 군중을 재집결한 뒤 경찰서 마당으로 진격해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연행자 석방을 요구했다.
이에 일제는 재향군인과 소방수까지 동원해 시위 군중을 해산시키고 대대적인 체포에 착수했다. 박경주는 체포를 피해 피신했고, 3월 17~18일 양일에 걸쳐 송정면 선암리의 자택에서 독립선언서와 경고문 각 1,500여 매와 독립가(獨立歌) 500여 매를 등사하여 목표 등 인근 지역에 배포했다. 그러다가 결국 체포되었고, 1919년 9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신간회 활동 및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고 하며, 8.15 해방 후에는 대구로 돌아가서 여생을 보내다 1975년 4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손인식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9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