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선호(독립운동가)

 


성명
송선호(宋善鎬)
생몰
1901년 10월 7일 ~ ?
출생지
평안북도 위원군 위원면 고성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송선호는 1901년 10월 7일 평안북도 위원군 위원면 고성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2년 음력 1월 25일 집안현에서 대한통의부에 입대하여 제1중대 제1소대 대원으로 편입되었다. 같은 해 음력 8월 문학빈(文學彬) 중대에 배속되어 11월 평북 강계군 고산진에 소재한 경찰주재소를 공격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3년 5월 28일경에는 동지들과 함께 권총을 휴대하고 평북 위원군 봉산면 호안동에서 군자금을 모집했으며, 같은 해 6월 평북 강계군에서 일본수색대와 교전하여 일본 순사 2명과 밀정을 사살하고, 우편소를 공격하였다. 이어 11월 14일에는 일제 경찰수색대와의 교전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려 참사(參事)로 승급하였다.
1924년 3월 위원군 밀산면 일대에서 독립사상 선전과 밀정 1명을 처단하고 군자금 1천 원을 모집하였다. 1924년 4월에는 남만군인 대표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견고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요 본분이라는 취지 아래 임시정부 산하에서 대업(大業)을 완성하자는 취지의 선언서에 대한통의부 제1중대를 대표해 서명하였다. 이후 대한참의부에 편입된 그는 1925년 제2중대 대원들을 이끌고 위원군 지역에 출동하여 밀정을 총살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러나 1927년 12월 집안현 대청구에서 중국 관헌에 체포되었으며, 이후 일제에게 넘겨진 뒤 1929년 6월 10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3년을 받고, 같은 해 8월 3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송선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