쉔/배경
1. 장문 배경
영혼 세계와 물질 세계 양쪽의 수수께끼 같은 존재인 쉔은 그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않는다. 나보리 북부의 명망 높은 가문에서 태어난 쉔은 킨코우 결사단의 '황혼의 눈'이었던 아버지의 대를 이을 운명을 타고났다. 쿠쇼 대사부의 아들인 쉔은 결사단의 문화에 심취했고 그에게 결사단의 핵심 교리는 아이오니아의 석양만큼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쉔은 가지치기의 필요성과 해따르기의 결의를 이해했고 무엇보다도 별보기의 지혜를 배웠다. 그는 유년기를 명상과 공부로 보냈으며 선생님들에게 모범적인 수련생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는 연습 대련에서 그와 호각을 다툰 제드라는 젊은 수련생이었다. 이들은 형제처럼 자랐고 종종 자신의 꿈과 희망을 서로에게 털어놓았다. 쉔은 어떤 일이든 새로운 관점이 필요할 때는 제드에게 의지했으며, 이 둘은 킨코우에서 가장 촉망받는 수련생이었다. 둘의 실력이 늘자 쿠쇼 대사부는 그들을 위험한 임무에 투입했는데, 그중에는 주운 지방에 출몰한 금빛 악마를 사냥하는 임무도 있었다. 몇 년이나 악마를 추적하며 끔찍한 죽음을 수도 없이 목격했지만 쉔은 굴하지 않았다. 마침내 잡은 악마는 카다 진이라는 유랑 극단의 무대 담당자였다. 쿠쇼 대사부는 그를 죽이지 말고 감옥에 가두라는 명령을 내렸다. 쉔과 제드 모두 처벌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했지만 쉔은 아버지의 결정을 따랐다. 쉔은 ‘황혼의 눈’인 아버지처럼 중립성을 가지고자 했고, 그렇기 때문에 이 결정에 분노하고 반대한 제드를 달래지 못했다. 녹서스 침공군들이 평온했던 최초의 땅을 침략했을 때조차 쉔은 쿠쇼의 중립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제드가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결사단을 버렸을 때도 쉔은 사원을 떠나지 않았다. 녹서스군이 아이오니아의 여러 지역을 점령했지만 쉔은 아이오니아의 영적 균형을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킨코우 결사단 내부에서 일어난 불균형을 감지했다. 서둘러 결사단으로 돌아가던 중 유혈 사태에서 살아남은 킨코우 결사단원들을 만났고 그들을 통해 제드가 자신을 따르는 수련생을 이끌고 사원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가 가족이나 다름없던 자에게 살해되었다는 끔찍한 비보와 함께. 쉔은 비통함을 억누른 채 생존자들을 이끌고 산속 은신처로 갔다. 그는 아버지의 기의 검을 들고 대를 이어 '황혼의 눈'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역할은 복수가 아닌, 결사단의 재건이었다. 그는 결사단이 이전의 힘을 되찾기를 바라며 새로운 수련생을 모집하고 훈련시켰다. 쉔은 그중 무한한 잠재력을 보인 아칼리 호멘 테시라는 소녀에게 은신술과 기만술을 가르쳤다. 소녀의 어머니인 마임은 '그림자의 권'으로서 쿠쇼를 돕던 인물이었기에 그 딸도 같은 길을 걸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쉔은 아칼리가 물질 세계의 적에게 반격하자고 할 때마다 자제시킬 수 밖에 없었다. 녹서스군이 후퇴하자 아이오니아를 위해 싸운 많은 이들이 승리를 자축했다. 하지만 쉔처럼 전쟁의 참상을 묵묵히 견딘 사람들도 있었다. 쉔은 자신의 의무를 다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속으로는 제드를 향한 증오를 삭이며 자신에게 결사단을 이끌 능력이 있는지 의심하곤 했다. 수년에 걸친 전쟁 때문에 최초의 땅은 큰 피해를 입었고 쉔은 재건한 결사단이 이 땅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실제로 아칼리가 새로운 '그림자의 권'이 되자 쉔은 그녀가 점점 결사단에서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 아칼리는 쉔의 가르침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채 결사단을 떠났다. 별을 보고 명상한 쉔은 아칼리가 스스로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고, 그것은 킨코우 결사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가끔 영혼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다툼이 일어나면 쉔은 그가 믿는 가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곤 한다. 아직까지는 감정에 휘말려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한 적이 없었지만, 과연 언제까지 한 인간이 두 세계의 균형을 수호할 수 있을 것인가? |
2. 진정한 중립
“그건 폭풍이 아니었소. 정령의 짓이었어요.” 어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저께 밤 바다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는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어부는 집채만큼 커다랗고 바람처럼 빠른 무언가가 어선을 침몰시켰다고 이야기했다. 탁자 맞은편에 앉은 쉔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이 들은 정보들을 종합해 보았다. “사고 현장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어부는 쉔을 해안가로 데리고 나갔다. 그곳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익사한 선원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었다. 쉔은 난파선의 잔해 옆에 꿇어앉아서 부서진 목재들을 살펴보았다. 나무 표면에 칼로 깊이 베어낸 것처럼 생긴 틈이 여럿 나 있었다. 강력한 발톱으로 할퀸 자국 같았다. “전부 몇 명이 당했습니까?” “나 빼고 전부... 여섯 명이라오.” 이 정령은 강한 것 같았다. 쉔은 배의 잔해를 둘러보면서 다른 단서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선체에서 쪼개져 나온 널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 끄트머리에 무언가가 걸려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아주 가느다란 털 여러 가닥이 뭉쳐져 있는 게 보였다. 여느 사람이라면 못 보고 지나쳤을 것이다. 설령 보았더라도, 그렇게 가늘고 섬세한 터럭들이 배 한 척을 박살낸 괴물의 털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리라. 하지만 쉔은 이런 털을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그가 손을 가져다 대자 그 은빛 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걸 본 순간 쉔은 어부의 이야기에 과장이 섞였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완전히 거두었다. “악마로군요. 어르신이 탔던 배가 놈의 영역으로 들어갔던 모양입니다.” 쉔의 말에 어부가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 만물에는 온갖 종류의 정령들이 어우러져 있고, 영계와 물리계 사이의 경계가 흐릿한 아이오니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곳에서는 영적 차원과 물리적 차원이 서로 맞붙은 채 공존한다. 그릇 안에 든 물과 기름처럼. 황혼의 눈인 쉔은 두 세계 사이를 굽어보며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일을 했다. 인간들에게 쉔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유령처럼 보일 것이다. 반면 정령들에게는 쉔이 자기네 영토에 절대로 들어와서는 안 될, 피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 보일 것이다. 쉔은 해안에 끌어올려진 시신들을 훑어보았다. 그중 한 남자는 너무 처참하게 당해 원래 형체를 알아보기도 쉽지 않았다. “걱정 마십시오. 해가 지기 전까지 제가 그 괴물을 잡겠습니다.”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쉔이 돌아보니, 이 지역 사원에서 보낸 사제가 도착해 있었다. 그 옆에서 견습 사제들이 신비로운 성물과 기름 등을 제단에 차리고 있었다. 이곳의 영적인 혼란을 잠재우는 정화 의식을 거행하려는 것이다. 사제가 쉔의 가치를 평가하는 듯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무사님의 협력을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사제의 질문에 쉔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균형은 회복될 것입니다.” 쉔은 사제를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는 은빛 털이 떨어진 흔적을 좇아 걸음을 옮기면서 생각에 잠겼다. 사망한 선원들을 생각하고, 그 악마에게 얼마만큼의 값을 치르게 해야 하는지를 헤아려야 했다. 아버지가 생전에 하셨던 말씀이 귓전을 맴돌았다. ‘모든 것을 고려하여 균형점을 찾아내는 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황혼의 눈은 세상에 작동하는 모든 힘의 자장에서 정확히 중심 지점을 찾아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진정한 ‘중립’에 설 수 있다. 균형점을 찾아낸 뒤에는, 균형을 실제로 실현하는 과정이 잇따른다. 그 과정 역시 쉬운 것은 아니었다. 쉔이 등에 매고 다니는 검 두 자루는 그 일에 필요한 도구였다. 한 자루는 아이오니아의 강철 군도로, 일격에 사람을 벨 수 있는 명검이었다. 다른 한 자루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가보인데, 순수한 비전 에너지가 깃들어 있었다. 쉔은 오랜 세월 그 검으로 악마, 유령, 망령, 정령 들을 숱하게 상대했다. 오늘 해가 지기 전에 또 하나의 악마를 처치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마침내 쉔은 어느 후미진 물가에 이르렀다. 호수처럼 작고 호젓한 그 만에는 사람의 흔적이라곤 없었고, 얕은 물에서 모래톱이 솟아올라 있었다. 바로 그 위에 그 악마가 있었다. 고운 은빛 털이 저녁 햇살 속에서 은은하게 빛났다. 녀석이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몸이 더욱 크게 부풀어올랐다. 그 괴물은 희생자들의 정수를 빨아먹고 한껏 배가 부른 채 잠들어 있었다. 쉔은 수풀 사이로 살금살금 움직여 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 거대한 흉곽이 들숨과 날숨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보였다. 쉔은 괴물에게서 몇 발짝 거리에 멈춰선 채 기의 검을 뽑아들었다. 그때 어딘가에서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웬 날카로운 비명이 솟아오르다 뚝 멎는 것이었다. 귀에 익은 소리였다. 쉔은 손을 멈추고 그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려 했다. 그런데 즉시 똑같은 비명이 다시 들려왔다. 그리고 또 다시, 또 다시... 급기야 수많은 비명 소리가 일제히 터져나와 섬뜩한 합창처럼 울려퍼졌다. 이건 정령들이 죽어가면서 지르는 비명이 분명했다. 쉔은 재빨리 악마를 돌아보았다. 놈은 잠에서 깨어나려는 듯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쉔은 손에 든 기의 검을 내려다보고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침착하게 궁리했다. 그리고 두 손을 합장하고 기를 집중시켰다. 순식간에 그는 휘몰아치는 에너지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지고, 모래톱 위에 잠든 악마만이 홀로 그곳에 남았다. 쉔이 난파 사고 현장에 돌아와보니 온 사방에 시커멓고 걸쭉한 액체가 튀어 있었다. 액체가 지글지글 끓으며 증발하는 냄새와, 정령들을 휩쓸었던 공포의 악취가 공기 중에 진동했다. 쉔은 모래밭 위에서 사라져가는 검은색 물웅덩이의 수를 헤아렸다. 그것들은 각각 정령이 죽어 남긴 흔적이었다. 그런데 사제가 견습 사제들을 대동하고 나타나는 바람에 쉔의 계산은 중단되었다. 견습 사제들 중 한 명은 아마 섬유와 은실로 만들어진 노끈을 잡고 있었는데, 그 끈의 맨 끝에 작은 정령 하나가 묶여 있었다. 보잘것없는 요괴 한 마리였다. 녀석은 목줄이 답답한 듯 버둥거리면서도, 자기 형제들이 학살당한 광경 앞에서 슬피 울부짖었다. “이 녀석을 처치해 주시겠습니까?” 사제가 쉔에게 물었다. 저녁 식탁에서 수프 한 그릇을 권하듯 태평스러운 태도로. 쉔은 끈적끈적한 물웅덩이들을 둘러보았다. 이계의 강력한 존재들이 불과 몇 초 전만 해도 이곳에 있었음을 알려주는 흔적들을. 그는 사제와 그 옆에서 울부짖는 요괴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유감입니다, 사제님.” 쉔은 기의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대신 강철 군도를 꺼내들었다. 원래 오늘 쓰려고 했던 무기는 이쪽이 아니었다. |
3. 활과 단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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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구 배경 1
질서가 있으면 혼돈이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 이처럼 극과 극인 성질들이 우주의 법칙 속에서 조화롭고 완벽하게 상생하는 것을 두고 사람들은 세상의 균형이 잘 지켜지고 있다고 평가하곤 한다. 그러나 세상의 균형이 스스로 조절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이오니아 군도에는 평범한 사람들은 모르는 곳에서 우주의 법칙을 사수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고대 결사단이 자리 잡고 있다. 킨코우라 불리는 이 결사단에는 세 명의 그림자 전사들이 활약하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인 쉔은 어떤 상황에서도 편견을 갖지 않고 공정하게 심판하는 '별 감시'라는 신성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쉔의 가문은 수 세대 동안 킨코우의 고위 직급을 섭렵했다. 남다른 핏줄을 타고났던 쉔은 그림자 전사가 되기 위하여 평생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행동들을 배우고 어떤 상황에서든 냉정하게 판단하는 법을 익히기 위해. 그리하여 ‘황혼의 눈’이 되기 위해. 쉔은 필사적으로 훈련했다. 그러나 '황혼의 눈'이 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거쳐야 하는 시련이 있었으니... 아버지가 고문당하는 처참한 광경을 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냉정을 유지해야 하는 타카누라는 의식이었다. 의식이 진행되는 도중에 약간의 감정 변화라도 보인다면 즉각 도전 자격을 잃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쉔은 눈도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이 광경을 지켜봤다. 황혼의 눈으로서 쉔은 모든 감정을 배제한 채 보통 사람의 의지로는 불가능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이제 그는 동료 아칼리, 케넨과 함께 발로란의 균형을 유지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 신성한 임무를 수행 중이던 3인방이 정의의 전장에 오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황혼의 눈은 희생자의 절망을 보지 않는다. 균형이 만들어내는 우아함만을 볼 뿐이다. |
5. 구 배경 2
'''황혼의 눈 쉔''' ''“황혼의 눈에는 균형을 깨뜨릴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담기지 않는다 - 두려움도, 증오도, 사랑도.”'' 쉔은 신비로운 전사들의 비밀 결사단을 이끄는 수장이자,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황혼의 눈'이다. 그는 감정, 편견, 아집에서 자유로운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며, 궁극의 공명정대를 실현하기 위해 기의 검을 들고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쉔은 필멸자의 세계에도, 정령의 세계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 내면에는 인간의 영혼과 비전 에너지가 불안정하게 뒤섞여 있다. 그러나 쉔이 자기 사명에 매진하는 자세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견고하다. 어느 세계에 속한 존재이든, 쉔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이오니아의 고귀한 문중 출신인 쉔은 태어나면서부터 중요한 사명을 띠고 있었지만, 그가 비밀 결사의 수장 자리까지 올라간 것은 강철 같은 의지로 노력한 결과였다. 쉔은 정령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오가며,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위협할 때마다 정확히 개입한다. 쉔이 휘두르는 기의 검은 그 임무를 상징하는 무기이자, 정령들의 세계로 이어진 끈이기도 하다. 쉔이 벌여온 싸움들은 수많은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아이오니아의 물리적 차원과 영적 차원을 종횡무진하며 일곱 악마 일족과 숱하게 맞서 싸웠고, 프렐요드의 검은 평원에 나타난 혐오스러운 피부 포식자들을 무자비하게 처단했다고 한다. 그러나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소문만 무성할 뿐. 아이오니아에 도는 소문들 중 가장 비현실적인 것을 하나 꼽자면, 어느 날 쉔이 녹서스의 궁정 한가운데에 홀연히 나타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적국의 근거지 심장부에 난데없이 출현한 쉔은 무언가 보이지 않는 존재와 혈투를 벌이느라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멀거니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쉔이 허공에서 이리저리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모습, 그의 몸 곳곳에 상처가 저절로 생겨나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그때 녹서스 사람들은 꿈에도 몰랐지만, 쉔은 영계의 침입으로부터 그 나라 전체를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쉔은 이처럼 차원을 넘나들며 고독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늘 혼자인 것은 아니다. 비밀 결사단의 일원들이 쉔을 돕고 있다. 치명적인 그림자 전사 아칼리, 번개처럼 민첩한 요들 케넨은 쉔이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 나설 것이다. 쉔이 동료들과도 나눌 수 없는 것 한 가지는 바로 아버지가 물려준 검이다. 그 검은 오로지 쉔만이 사용하고 책임져야 한다. 아버지의 원수에 대한 분노 역시 오롯이 그가 감당할 몫이다. 쉔의 아버지를 죽인 자는 '제드'라는 이름의 남자로, 한때는 쉔이 친형제처럼 여길 만큼 각별한 사이였다. 쉔은 황혼의 눈으로서 사사로운 격정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지만, 제드에 대한 분노를 다스리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쉔은 인간 세상과 영계의 운명을 모두 짊어지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의 인간적인 감정과 영적인 시야 사이에서도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과연 언제까지 한 인간이 검 한 자루로 두 세상의 균형을 책임질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