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로 애그뉴
1. 개요
미국의 39대 부통령을 지낸 정치인. 그리스계 미국인으로 본래 성은 아나그노스토풀로스(Anagnostopoulos).
2. 상세
1968년 미국 대선에서 리처드 닉슨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상대 후보였던 휴버트 험프리를 이기고 부통령이 되었다. 닉슨 정권에서 공적을 세우며 한때 닉슨을 이어 차기의 대통령이 될 인물로 지목되어 1972년 대선에서도 부통령으로 또 당선되었으나 자신이 모시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몰락할 위기에 처할 뿐 아니라 본인 또한 뇌물수수와 탈세로 곤혹을 겪었다.
미국 역대 대통령과 부통령을 통틀어 가장 부패한 정치인이었으며, 오랜 기간 고위 공직에 몸담으며 자신의 권력을 악용해 여러 개인과 기업들로부터 상습적으로 이권과 재물을 수수해온 악당이었다. 부통령에 취임한 후에도 이를 그만두지 않고 백악관으로 기업인들을 불러 백악관 내에서 뇌물을 수수하는 파렴치함과 대담함을 보이기까지 했다.
애그뉴에 비하면 닉슨의 행각은 애교로 보일 정도인데, 원래대로라면 스피로 애그뉴는 악질 범죄자로 무거운 처벌을 받았어야 했음에도 사실상 거의 처벌을 받지 않고 넘어갔다. 그 이유가 매우 교묘하여 이에 대한 음모론이 있을 정도다.
스피로 애그뉴의 부패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 중에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는데, 이로 인해 닉슨이 탄핵되거나 사임해야 함이 명백해지자 애그뉴의 수사를 서둘러 종결시킬 수밖에 없었다. 닉슨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 부통령인 애그뉴가 대통령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직 대통령을 임기 중에 형사 처벌하는 것이 매우 어렵게 되어 있는 나라이며, 애그뉴가 대통령이 되면 그가 대통령직에 있는 동안 그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공소 시료가 만료될 수 있었기 때문에, 검찰은 어쩔 수 없이 닉슨의 탄핵/사임 전에 애그뉴의 수사와 처벌을 완료해야만 했고 이를 위해 아주 불리한 위치에서 애그뉴와 형량 거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혹자는 워터게이트를 터뜨린 것이 바로 스피로 애그뉴였다는 음모설까지 제기했을 정도.
결국 1973년 10월 10일 부통령직을 사퇴하고[1][2] 공백이 된 부통령직은 당시 하원의원이던 제럴드 포드가 이어받았다. 이때 미국 역사상 최초로 선거로 뽑히지 않은 부통령이 탄생한다. 부통령직 퇴임 이후 자신의 상관이었던 닉슨과 더불어 워터게이트 사건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일어난 일이라는 회고록을 폈다.
1994년 리처드 닉슨의 장례식에서 모습을 보였고, 1996년 그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