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토 산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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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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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카무이전 촬영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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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白土三平[1] 1932.02.15 ~[2]
일본의 만화가. 일본 시대극, 닌자만화의 선구자 쯤으로 볼 수 있다. 반강 떨구기도 이 사람이 창시한 것이다.
1932년에 도쿄도 히가시타마군[3] 에서 태어나 1957년부터 아카혼[4] 전문 작가로 데뷔하여 1959년에 닌자무예장을 냈다. 60년대만 해도 닌자만화는 허무맹랑함의 대명사였지만 어지러운 당시 일본사회를 대변하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소재로 넣음으로서 닌자만화를 알렸다고 볼 수 있다.
그가 한창 활동할 당시 일본 사회의 보편적인 정서는 시라토의 만화를 용납하지 않았다. 잔혹성이 있는 만화를 추방하자는 운동의 발단은 1959년 야마나시현 독서보급조합이 당대 인기를 끌었던 극화 만화잡지 <카게(影)>와 <마치(街)>의 내용을 분석하여 <만화 실태백서>를 발표한 것이었다. 해당 백서에는 "선과 악의 규범을 무시하는 창작 극화가 날로 늘고 있다"며 "악질적인 내용이 많아지고 있으며, 마약 및 살인 묘사도 다수 등장하는 실정이다. 특히 사토 마사아키의 만화 <브로닝 32구경>은 소년 범죄를 부추길까 우려되는 수준"이라 고발하였다.
이 보고서가 몰고 온 파장은 일본 언론과 보수적 기성세대들의 관심을 증폭시켰고, 급기야는 시라토 선생의 사무라이 만화들이 "잔혹한 표현을 일삼고 있다"며 그를 성토하는 글들이 연일 매스컴을 오르내렸다. 그러나 이는 민간 차원에서의 성토에 그쳐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그렇게도 표현할 수 있겠다"는 많은 이들의 옹호를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코지마 고세키(아들을 동반한 검객의 작화가)가 이 사람 어시스트였다. 하지만 시라토 자신도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극화풍 그림체를 지니게 되었다. 최근에는 카무이전 2부 중단뒤 구상(사실상 휴재)에 들어간뒤에 미식기행록이나 쓰고있다. 하지만 영화화 기념으로 단편을 연재하기도. 아무튼 영향을 많이 주었다. 참고로 사회주의 사상때문에 한국에는 전혀 들어온 적이 없다. 주로 시대극만 연재한다.홈페이지는 여기.
본래 시라토 산페이는 공동필명이다. 형제가 그림을 같이 그렸고, 멤버는 유동적이었다. 코지마 고세키도 그 중 한명으로, 단순 어시스턴트는 아니었다.
리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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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카무이전 촬영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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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 개요
白土三平[1] 1932.02.15 ~[2]
일본의 만화가. 일본 시대극, 닌자만화의 선구자 쯤으로 볼 수 있다. 반강 떨구기도 이 사람이 창시한 것이다.
2. 생애
1932년에 도쿄도 히가시타마군[3] 에서 태어나 1957년부터 아카혼[4] 전문 작가로 데뷔하여 1959년에 닌자무예장을 냈다. 60년대만 해도 닌자만화는 허무맹랑함의 대명사였지만 어지러운 당시 일본사회를 대변하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소재로 넣음으로서 닌자만화를 알렸다고 볼 수 있다.
그가 한창 활동할 당시 일본 사회의 보편적인 정서는 시라토의 만화를 용납하지 않았다. 잔혹성이 있는 만화를 추방하자는 운동의 발단은 1959년 야마나시현 독서보급조합이 당대 인기를 끌었던 극화 만화잡지 <카게(影)>와 <마치(街)>의 내용을 분석하여 <만화 실태백서>를 발표한 것이었다. 해당 백서에는 "선과 악의 규범을 무시하는 창작 극화가 날로 늘고 있다"며 "악질적인 내용이 많아지고 있으며, 마약 및 살인 묘사도 다수 등장하는 실정이다. 특히 사토 마사아키의 만화 <브로닝 32구경>은 소년 범죄를 부추길까 우려되는 수준"이라 고발하였다.
이 보고서가 몰고 온 파장은 일본 언론과 보수적 기성세대들의 관심을 증폭시켰고, 급기야는 시라토 선생의 사무라이 만화들이 "잔혹한 표현을 일삼고 있다"며 그를 성토하는 글들이 연일 매스컴을 오르내렸다. 그러나 이는 민간 차원에서의 성토에 그쳐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그렇게도 표현할 수 있겠다"는 많은 이들의 옹호를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코지마 고세키(아들을 동반한 검객의 작화가)가 이 사람 어시스트였다. 하지만 시라토 자신도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극화풍 그림체를 지니게 되었다. 최근에는 카무이전 2부 중단뒤 구상(사실상 휴재)에 들어간뒤에 미식기행록이나 쓰고있다. 하지만 영화화 기념으로 단편을 연재하기도. 아무튼 영향을 많이 주었다. 참고로 사회주의 사상때문에 한국에는 전혀 들어온 적이 없다. 주로 시대극만 연재한다.홈페이지는 여기.
본래 시라토 산페이는 공동필명이다. 형제가 그림을 같이 그렸고, 멤버는 유동적이었다. 코지마 고세키도 그 중 한명으로, 단순 어시스턴트는 아니었다.
3. 작품 목록
시라토 산페이의 대본소 닌자만화. 역시 민중이 어쩌구 저쩌구하는 사회주의적 변증법이니, 유물론등이 알게 모르게 들어가 있다. 나중에 오시마 나기사에 의해 영화화되었으나, 풀애니메이션식으로...그 흑백만화를 그대로 카메라찍고 성우기용해 대사를 넣는등 좀 성의가 없다. 그래도 이덕에 유명해졌으니 축하할만하다. 사람 팔다리 사지 절단이 기본이고,임산부도 봐주는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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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카게마루는 사실,한두명이 아니고 카게일족이라고도 불리는 일족이다. 9명이 한명의 카게마루를 연기한다. 그래서 불사신인척 상대들을 속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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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카게마루는 사실,한두명이 아니고 카게일족이라고도 불리는 일족이다. 9명이 한명의 카게마루를 연기한다. 그래서 불사신인척 상대들을 속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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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외부링크
[1] 본명은 오카모토 노보루(岡本 登 / おかもと のぼる).[2] 2020년 현재 88세.[3] 현 스기나미구.[4] "빨간 책"이라는 의미. 우리나라에선 빨간 책이라 하면 에로물을 가리키지만, 아카혼은 옛날 어린이용 싸구려 만화를 가리킨다. 인쇄에 붉은색 계열의 잉크를 많이 사용해 책이 전반적으로 붉으스름하다. 여담으로 우리나라 은어인 빨간책에 해당하는 일어 은어는 "비닐책"(비니루본)이다. 빨간책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사장된 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