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승

 


신한승(辛漢承)
(1928년 ~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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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이 신한승, 우측은 송덕기
1. 개요
2. 생애
3. 송덕기와의 이론 대립
4. 신한승식 택견 정립
5. 평가


1. 개요


국가 무형 문화재 76호인 태껸의 초대 예능 보유자. 호는 송암(松菴).

2. 생애


태껸을 처음 접한건 어렸을 때 자신의 집에서 기거하던 태껸꾼들에게 한두 수 정도 배운 것이라고 한다. 이후 당수도 했었고 레슬링 국가 대표 선발전에도 나갔으나 최종 선발전에서 탈락.
그 후 어렸을 때 보았던 태껸을 어떻게든 배우고 알리고 싶어서 자료를 찾던 중 송덕기의 존재를 알고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고 한다. 구리개 태껸의 명인이라는 김홍식에게도 배웠다고.[1] 다만 거리도 있고 또 태껸의 다른 흔적을 더 찾고 싶은 마음에 한 사람에게만 진득하니 배운 것보다는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으며 다른 전통 무술과도 연관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결련택견협회 도기현 회장의 저서를 보면 선무도 설적운 스님과의 에피소드도 나와 있다. 그러나 선무도 계열에서 적운 스님의 이야기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수제자는 정경화, 박만엽이다. 1995년 정경화는 2대 택견보유자로 인정받고 1996년 박만엽은 전수조교로 인정되지만 이후 전수조교를 반납하고 충북도 무형문화재를 신청한다.
자녀는 아들만 3명이지만 신한승이 택견정립에 몰두하느라 집안살림을 돌보지 않아 세명 모두 택견을 전수하지 않았으며 조카인 신종근이 전수하였다.
수벽치기라는 태껸과는 또 다른 무예를 찾아 다니기도 했다. 그 수벽치기 계통을 잇는 것이 신한승의 제자 육태안의 수벽치기 단체다.

3. 송덕기와의 이론 대립


꽤 유명한 일화로는 부산에서 열린 1회 태껸 대회가 끝난 후 태껸의 경기에 불만을 가진 송덕기에게 태껸스럽게 하려면 (김홍식 스타일의) 활개짓을 더 잘해야 된다고 했다가 송덕기가 '''"태껸은 품만 잘 밟으면 돼!! 왜 없는 동작을 자꾸 만들려고 해!!!"'''라는 일갈을 받아 머쓱했다던 적이 있다.
송덕기 입장에서는 화가 날 법도 한데, 자신한테 태껸을 배운 제자가 자신이 단 한번도 배우거나 가르친 적도 없는 이론을 들고 나와 단순히 "이렇게 해야 멋있다." 수준을 넘어 아예 '''"이렇게 해야 태껸스럽다."'''라고 스승을 역으로 가르치려 든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해당 일화가 사실이라면, 신한승은 사실상 '''"스승님이 가르치는 태껸보다 제 태껸이 더 태껸다워요."'''라고 일종의 하극상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도 활개짓의 동작을 포기하지 않은 것을 보면, 정말 그런 동작을 김홍식에게 배운 것인지 아니면 그냥 고집인지는 지금 와서는 알 수가 없다.[2]
또한 그는 태껸 특유의 기합(?)을 '''"이크 에크"''' (대한 택견, 충주 택견 협회) 라고 하였는데, 송덕기는 '''"이크"'''(결련 택견에서 쓴다)라고만 하였고, 도기현 회장은 저서에서 이에 대해 '맞다, 틀리다'라고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송덕기 자신은 좋아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3]

4. 신한승식 택견 정립


송덕기태껸의 부드러운 몸짓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이는 송덕기로부터 진득하게 원형 그대로 배운 것이 아니라 전국을 떠돌면서 태껸꾼을 찾아다니며 태껸을 연구하면서, 태껸꾼 개인의 변형된 독자적 스타일이나 혹은 다른 지방의 무술 형태가 유입된 탓일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서 무도가들은 사상의 차이에서 나오는 몸동작의 다름이라고 보기도 하고, 또는 그냥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하는 두가지 의견이 있다.
태껸이 기술이 적어서 문화재 지정이 난감하다고 하자 다른 무술의 기술들을 일부 도입하고 투로인 본때뵈기 12마당을 만들었다. 일단 신한승의 이러한 노력 덕에 태껸이 문화재 지정이 되었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우선 태껸의 기술 수가 적다는 것 자체가 이미 틀린 말이다. 택견의 기술 수는 과연 적은가? 참조. 또 본때뵈기 12마당의 진행이 품을 아래로 밟는 굴신동작이 아니라 위로 몸을 움직이는 구조라서 기본적으로 굼실거리며 아래로 밟으며 기술이 나가는 송덕기의 태껸과는 전혀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다. 송덕기는 품을 밟으며 중심을 낮추는데 이 본때뵈기 마당에서 걸음을 나아갈 때는 오히려 중심을 높여버린다는 문제점이 있다.
결련택견을 '결연 택견' 이라고 해석하여 '결연하게 하는 태껸' 즉 싸움수까지 포함한 무술 태껸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고 이는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대한 택견 연맹에서 문화재 관리국에 질의를 보내 결연 택견은 오류가 확실하다는 답변도 얻었다. 결련 택견은 마을에서 주거니받거니 하는 택견의 방식이다. 헌데 정작 이 영상을 보면 송덕기가 '호신술로 하던 택견을 결련택견이라 했다'라고 하는 부분이 나온다. 진실은 저 너머에..

5. 평가


동영상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송덕기태껸과 다른 점들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 있어야 태껸계의 갈등도 줄고 더 한발 나아갈 수 있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그러한 비판과는 별도로 태껸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이며 신한승이 열심히 뛰지 않았다면 태껸은 오늘날 서울에서만 간신히 목숨을 이어나가는 작은 유파에 불과하거나 심하면 태권도에 흡수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지방의 모 태권도장에서는 '옛날 태권도인 태껸을 수련함으로 경기에 치우친 태권도에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어쩌고 하는 말을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신한승이 '''가산을 날려가면서까지''' 열심히 뛴 결과 태껸은 중요 무형 문화재가 되었고 이에 감격해 신문을 보며 엉엉 울었다고 한다. 하도 고생해서 그런지 대장암에 걸렸고 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송덕기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에 먼저 사망하고 말았다. 태껸은 태권도와 전혀 다른 한반도의 전통 무술이라는 점에서 신한승의 발로 뛴 역사는 어찌됐든 평가받아 마땅하며 현대 태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라는 것도 확실하다.
또한 대한택견회와 결련택견협회가 각각 이용복이 독자적으로 정립한 택견의 우수성과 송덕기 원형 택견의 전승을 선전하며 각자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신한승을 '공적'처럼 취급하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폄하된 감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결련(결연)택견에 대한 설명은 신한승이 옳았음이 명백히 밝혀졌음에도, 양 단체는 여전히 신한승은 물론이고 송덕기까지 깎아내리면서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활개짓 문제만 해도 도기현은 본인에게 한 말 다르고 나중에 공개적으로 한 말 다르다며 신한승을 사기꾼처럼 몰아갔는데, 태권도 선수들의 상단 발차기를 막기 위한 실용적인 필요성에 따라 자신이 예전에 김홍식이란 택견꾼에게 배운 것을 적용해 보았다고 본다면, 앞뒤가 안 맞을 것도 전혀 없다. 송덕기 택견에 대해서라면 직접 배웠으니 할 말이 많겠지만 신한승이 송덕기 말고도 이 사람 저 사람 찾아가며 귀동냥한 것에 대해서는 도기현이 무작정 비판만 할 입장은 아니다. 더구나 신한승이 어렸을 때 택견을 제대로 전수받았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다른 사람들 하는 걸 좀 보고 따라도 해봤다는 얘기조차 못 미덥다는 식으로 증거가 없느니 하는 것도 지나친 감이 있다.
본때뵈기 열두 마당처럼 원형에 없던 요소를 추가한 것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비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언제 신한승이 그런 것을 숨겼던 것도 아니고, 송덕기가 보여준 거랑 다르면 '날조', 문헌이 안 나온 얘기 하면 '거짓말'이라는 식으로 무작정 몰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통합을 운운하려면 그 정도 기본적인 존중은 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1] 현대 태껸의 역사 설명을 보면 구리개 태껸의 명인인 김홍식에게 활개짓을 배웠다고 나오는데, 정작 도기현 회장의 칼럼을 보면 김홍식에게 배운 것이 아니라, 태권도 수련생들과 대련시 태껸 수련생들이 거리가 떨어졌을 때 자꾸 얼굴을 맞길래 위로 크게 돌리는 활개짓을 만들었다는 말이 나와서 정보가 어떻게 잘못 전달된 것인지 궁금증을 유발시킨다.[2] 도기현의 회상에 따르면 신한승에게 '송덕기 스승님은 활갯짓을 어깨 위로 올리지 말라고 하셨는데 선생님은 왜 그렇게 하느냐' 고 물었더니 '태권도 수련생 vs 택견 수련생' 겨루기를 시켜 볼 때마다 택견하는 아이들이 붙으면 태권도 수련생들을 곧잘 잡아 넘기지만 거리가 떨어지면 태권도 수련생의 돌려차기 등의 공격에 얼굴을 자주 맞아 이에 얼굴 방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전통을 떠나 자기 나름대로 실전 진화한 스타일일지도..?[3] 이크라는 기합의 용례에 대해서는 택견의 기합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