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빙돈 성서 주석 사건
1. 개요
1934년, 장로회와 감리회의 신학자들이 개신교 선교 50주년[1] 을 기념해, 당시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출판사였던 아빙돈[2] 의 ‘아빙돈 단권 성경 주석’[3] 을 번역한 일이 있었다. 이 책은 다소 진보적인 고등비평을 수용했지만 당시로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성경 주석서였다. 그런데 한국의 장로회[4] 가 이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는 당시 이 책이 한국 장로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기 때문인데, 아빙돈 주석은 성서무오설 기반의 근본주의 성서 이해를 전적으로 수용한 한국 장로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 책을 이단서로 규정한 것이다. 이 번역에 참여한 이들은 감리회의 유형기 양주삼 변홍규, 장로회의 김관식, 김재준, 송창근, 조희염, 채필근, 한경직 등 이었다. 박형룡 목사는 아빙돈 성경주석의 구매, 열람, 참고를 금지시켰고, 이 책의 번역에 참여한 장로회 소속 목사들을 심문하면서 그들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일부는 사과했지만 송창근, 김재준 박사 등이 이를 거절하였다. 감리회에서는 문제시되지 않았으나 장로회에서는 총회적 사건으로 비화되었다. 이에 장로회는 김재준, 송창근 목사를 제명하였고[5] , 대한예수교장로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가 분열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6]
[1] 선교사 호러스 언더우드, 헨리 아펜젤러, 메리 스크랜턴 등이 조선에 입국한 1885년을 한국 개신교 선교의 시작으로 본다.[2] Abingdon Press.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출판사.[3] 감리회의 류형기 목사가 편집/발행하였다. 고등비평을 지지한 주석이었다.[4] 길선주 목사와 황해노회의 헌의에 의해 문제가 제기되었다.[5] 이들은 총회의 징계로 더이상 "신학지남"에 글을 기고할 수 없었다.[6]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신학을 가르치는 신학교인 장로회신학대학교와 총신대학교가 설립되는 배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