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Confessio Augustana'''[1]
1. 개요
2. 내용
2.1. 하나님
2.2. 원죄
2.3. 하나님의 아들
2.5. 설교
2.6. 새로운 귀의
2.7. 교회
2.8. 교회의 의미
2.9. 세례
2.10. 성만찬
2.11. 고백
2.12. 거듭남
2.13. 전례
2.14. 교회 조직
2.15. 교회법
2.16. 세속 권력과의 관계
2.17. 심판
2.18. 자유
2.19. 죄의 원인
2.20. 신앙과 선행
2.21. 성인에 대한 경배


1. 개요


종교개혁 시기 1530년 신성로마제국 아우크스부르크 회의에 제출한 루터파 제후세력과 제국도시의 신앙고백.
필리프 멜란히톤이 작성하고 마르틴 루터가 감수했다. 당연히(?) 최초 작성시에는 신성로마제국 제국회의에 제출될 내용이라 라틴어로 작성됐고 독일어로 번역된건 몇 년 후이다. 이를 루터가 작성한걸로 돼있지 않은 이유는 그가 1520년 보름스 회의에서 제국추방령을 받은 상태라 저자로 발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530년 아우크스부르크 회의에 제출한 것도 역시 루터가 아니라 멜란히톤.
16세기 초반 종교개혁으로 루터를 따르는 독일의 복음주의자들이 탄압을 받자 자신들이 이단이 아니며 기존 가톨릭과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위해 제출한 것으로 내용은 기존 가톨릭 교회에 대한 비판보다는 공통점을 강조하는 상당히 온건한 내용이다.
루터 사후 멜란히톤이 수정한 수정본도 있다. 이는 멜란히톤이 1548년 슈말칼덴 전쟁에서 개신교 지역이 초토화되고 개신교 제후들이 일시적으로 패망하자 이단 논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심끝에 어느정도 가톨릭에 순응하는 수정안을 발표한 것이다. 멜란히톤이 저명한 신학자이긴 했으나 루터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나 영향력이 별로 없던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멜란히톤이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을 수정할 당시엔 기존에 패망한 작센 선제후에 폐위된 요한 프리드리히 1세를 따르지 않고 가톨릭과 동맹을 맺은 새 선제후 모리츠에게 충성해버렸고 이에 많은 인물들이 멜란히톤에 실망했으며, 여기에 더 나아가 신학적 수정에 반발하여 루터파 내부가 분열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루터교회에선 1530년판만을 인정한다.

2. 내용



2.1. 하나님



2.2. 원죄



2.3. 하나님의 아들



2.4. 의인(義認)



2.5. 설교



2.6. 새로운 귀의



2.7. 교회



2.8. 교회의 의미



2.9. 세례



2.10. 성만찬



2.11. 고백



2.12. 거듭남



2.13. 전례



2.14. 교회 조직



2.15. 교회법



2.16. 세속 권력과의 관계



2.17. 심판



2.18. 자유



2.19. 죄의 원인



2.20. 신앙과 선행



2.21. 성인에 대한 경배



[1] 영어로는'''Augsburg Conf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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