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반 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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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an Berg(1885.2.9.~1935.12.24.)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 안톤 베베른과 함께 2차 빈악파를 주도, 12음 기법을 사용해 낭만적 음악을 작곡했다.
1. 생애
베르크는 빈에서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에는 음악보다는 문학에 더 관심이 많아 정식 음악교육을 받지 않았다. 15살때부터 작곡을 시작했고, 이후 쇤베르크의 제자가 되어 그의 12음 기법의 기수로 앞정선다.[1]
쇤베르크의 제자가 되면서, 그에게 음악이론과 작곡법을 배우면서 작곡 활동을 시작하게 되고, 이 때 작곡한 가곡, 소품들은 연주회에서 연주되기도 했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면서 졸업 작품격으로 낸 '피아노 소나타 1번'은 이후 그의 작품 경향을 엿볼 수 있는 그의 작품번호 1번이 되었다.
이후 그는 관객들의 반대를 무릅쓰면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하는데, '현악 사중주'나, '관현악을 위한 세 개의 소품', '서정 모음곡'과 같은 곡들은 그의 특징인 '''낭만적인 12음 기법'''[2] 을 잘 보여준다.
이후 1915년에서 1918년까지 군에서 복무, 틈틈이 오페라 '보체크'를 작곡한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다시 빈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생활한다. 한편, 그의 오페라 '보체크'가 발췌되어 공연된 것이 성공, 대중적인 인기도 얻게 된다.[3]
그러나 1935년, 그의 역작 중 하나인 '바이올린 협주곡'을 완성한지 얼마 안 돼 그는 벌레에 물려 생긴 패혈증으로 인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오페라 '룰루'를 미완성으로 남긴 채 숨을 거둔다.
쇤베르크와 베베른, 그리고 그를 묶어서 제2 빈 악파라고 부른다.
조지 거슈윈과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진지한 음악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거슈윈이 그를 상당히 존경했던 듯. 인간적으로 상냥하고 매력이 있었던 모양인지, 그를 기억하는 음악가들의 증언들은 그의 좋은 성품에 대한 언급이 많다.
2. 작곡 성향: 조성적 12음렬
조성적인 12음렬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케이스이다. 예를 들면 인위적으로 음렬을 장3도씩 진행시킨다거나, 그로 인해서 한 음으로 뭉쳤을 때 여러 화음이 나도록 음렬을 설계한다거나. 이러한 작품들은 후대의 아방가르드 작곡가들에게 철저하지 못하다고 저평가되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는 그 자체로 독특한 결과물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성향은 알반 베르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잘 나타나며, 그로 인해 곡의 전반적인 면에서 후기 낭만주의, 또는 색채를 중요시 여겼던 인상주의 시절의 곡 느낌이 나기도 한다.
3. 주요 작품
3.1. 피아노
- 피아노 소나타 Op.1
- C장조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3.2. 실내악
- 현악 4중주 Op.3
-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4개의 소품 Op.5
- 현악 4중주를 위한 '서정 모음곡'
3.3. 관현악
- 실내협주곡
- 관현악을 위한 3개의 소품 Op.6
- 바이올린 협주곡
- 파사칼리아 (일부만 남음)
3.4. 가곡
- 7개의 초기 노래
- 가곡 "4개의 노래" Op.2
3.5. 오페라
- 보체크 Op.7
- 룰루
[1] 하지만 쇤베르크는 베르크를 제자라고 하면서도 실은 '''셔틀'''로 밖에 생각하지 않은듯한 느낌을 준다. 오만 잡일을 다 시켜놓고 한다는 소리가 '''"그래, 너 작곡좀 하냐?"''' 이따위 소리였으니...[2] 이는 알반 베르크의 12음렬이 매우 조성적이다, 라는 이유에서 기인한 것 이다. 예를 들자면, D, F, A, G#, B ,D#, C, E, G, F#, A#, C#, 이런 식으로 12음렬을 짜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3화음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역행, 전위를 해도 이는 마찬가지. 쇤베르크의 바이올린 곡 중에도 이러한 음렬을 쓴 곡이 있다.[3] 여담이지만 쇤베르크는 보체크의 작곡에 대해서 '''그거 절대 작곡하면 안 돼'''라고 팔걷고 반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베르크는 '''쇤베르크 평전을 쓰는척 하면서''' 몰래 보체크를 완성시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