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간

 



楊暕
(585 ~ 618)
수나라의 인물. 수양제의 아들.
593년 2월 17일에 예장왕이 되었고 599년 6월 3일에는 내사령이 되었으며, 606년에 제왕에 책봉되었고 태자인 양소가 죽자 태자가 되었다. 607년 8월 26일에 하남윤이 되었고 양소의 관리, 군사 2만여 명이 그에게 예속되었으며, 수양제가 그를 위해 소속 관리를 잘 선발하고 유건지를 그의 장사로 삼았다.
수양제가 양간을 총애하는 것이 융성하자 그에게 달라붙는 백관들이 많았으며, 양간이 이로써 교만하고 방자해져 소인들을 가까이 해 불법적인 행위를 많이 했다. 부하들을 시켜 음악과 여자들을 찾게 했으며, 그의 부하들도 방종해져 양간의 명령을 사칭해 미녀에게 음탕한 짓을 했다가 양간에게 보거나 여러 호족들을 죽여 명마를 보내기도 했다.
수양제에게 낙평공주가 유씨 집안의 딸이 미녀라고 했지만 대답하지 않았는데, 낙평공주가 유씨 집안의 딸인 것을 미녀라고 하자 양간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수양제가 후에 낙평공주에게 유씨 집안의 딸이 있는 곳을 물었는데, 제왕의 처소에 있다는 것을 알고 기뻐하지 않았다. 양간은 수양제처럼 분양궁에 행차해 큰 사냥을 했는데, 수양제가 양간에게 조서를 내려 1천의 기병을 거느려 수렵장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양간은 큰 사슴과 사슴을 많이 포획했지만 수양제는 포획한 것이 없어 관리들에게 화를 냈는데, 모든 사람들이 양간 주위의 사람들이 막고 있어서 짐승들이 앞으로 나올 수 없었다고 했다.
수양제는 화가 나서 양간의 죄상, 과실을 찾았는데, 당시 법령에 현령은 아무런 이유 없이 경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양간 휘하의 황보후가 현령을 지내면서 금령을 위반했으며, 이를 토대로 신하들이 수양제의 뜻에 영합해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양간은 양소에게 세 명의 자식이 있었으므로 태자로 세워질 수 없음을 두려워해 사술에 의지해 주술을 했지만 모두 발각되었다.
양간 휘하의 관리들은 처벌당했고 양간의 총애는 날로 쇠해져 하남윤이었어도 당시의 정사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으며, 호분랑장의 감시를 받아 양간의 과실이 수양제에게 모두 보고되었다. 610년에 도적 수십 명이 미륵불을 자칭해 동도로 들어와 그들이 변란을 일으키자 양간이 그들을 공격해 목을 베었으며, 615년에는 동돌궐에서 시필가한이 그를 습격하려 하자 후군을 이끌고 곽현을 지켰다.
618년에 우문화급이 사람을 시켜 양간을 죽이게 했는데, 양간은 수양제가 잡아들인 것으로 생각해 죽기 직전에 자신의 아이를 가리켜 이 아이는 국가에 죄를 짓지 않았다면서 아이만을 살려달라고 했다. 양간은 끝내 자기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살해당했다.
자식 관계로는 양간은 양정도를 비롯한 세 명의 아들이 있으며, 자신의 비인 위씨가 일찍 죽자 그의 언니 원씨 부인과 통해 딸 한 명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