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하구

 


성명
양하구(梁河龜)
생몰
1882년 ~ ?
출생지
함경북도 경흥군 노서면 굴포동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양하구는 1882년생이며 함경북도 경흥군 노서면 굴포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만주로 망명했고, 1912년 중국 지린성 훈춘현에서 순치동제당(脣齒同濟黨) 발기인을 맡았고 기독교 교우회에 가담해 황병길의 군자금 모집을 도와줬다. 이후 1915년 12월 훈춘현 황구에서 대한광복군(大韓光復軍) 임시군정부(臨時軍政府) 대대군수관(大隊軍需官)으로 활동하며, 북일학교(北一學校) 교장을 역임했다. 1919년 3월엔 훈춘현에서 김약연, 정재면 등과 함께 3.1 운동이 한반도를 넘어 만주에도 벌어지도록 노력했으며, 4월에는 훈춘영사관 소속 일제 순사를 응징했다가 체포되어 중국 재류금지 3년을 선고받았다.
1924년 11월 지린성 왕청현에 설립된 한신정부(大韓新政府)의 임시중앙(臨時中央) 재무부장(財務部長), 1925년 한국혁명위원회(韓國革命委員會) 중앙집행부 집행위원ㆍ참모ㆍ집행부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독립군 무기 구입과 독립운동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던 중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 관헌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양하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삼촌인 양하청 역시 독립운동가였으며,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