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류
고구려 고국천왕 때의 반역자.
왕후[1] 의 친척으로, 패자(沛者)로서 중외대부(中畏大夫)라는 관직에 있었다. 왕후의 권세를 등에 업고는 같은 외척인 평자(評者) 좌가려와 함께 나라의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자 그의 자제들도 좌가려와 어비류의 세력을 믿고는 하나같이 오만무례해져서 함부로 다른 사람들의 자녀와 집을 빼앗아가는 등 갖은 횡포를 부렸기 때문에 고구려의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원망하고 또한 분통해했다고 한다.
190년, 고국천왕은 이들의 죄상을 알고는 크게 노하여 이들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이를 눈치챈 어비류와 좌가려는 연나부(椽那部)의 일부 세력들과 동조하여 모반을 꾀하였다.[2] 좌가려와 어비류의 무리들은 이듬해인 191년에 왕도를 공격하였으나 고국천왕이 기내(畿內)의 병력을 동원하여 이를 평정하였고, 결국 반란은 진압되었고 어비류 역시 목숨을 잃었다.
이후에 어비류와 좌가려는 다시는 나타나지 못하게 됐다.
이들이 나라에 끼쳤던 폐해가 상당히 컸는데, 고국천왕이 이렇게 어려워진 국내 사정을 돌보기 위해 등용한 인물이 바로 그 유명한 을파소였다.
왕후[1] 의 친척으로, 패자(沛者)로서 중외대부(中畏大夫)라는 관직에 있었다. 왕후의 권세를 등에 업고는 같은 외척인 평자(評者) 좌가려와 함께 나라의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자 그의 자제들도 좌가려와 어비류의 세력을 믿고는 하나같이 오만무례해져서 함부로 다른 사람들의 자녀와 집을 빼앗아가는 등 갖은 횡포를 부렸기 때문에 고구려의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원망하고 또한 분통해했다고 한다.
190년, 고국천왕은 이들의 죄상을 알고는 크게 노하여 이들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이를 눈치챈 어비류와 좌가려는 연나부(椽那部)의 일부 세력들과 동조하여 모반을 꾀하였다.[2] 좌가려와 어비류의 무리들은 이듬해인 191년에 왕도를 공격하였으나 고국천왕이 기내(畿內)의 병력을 동원하여 이를 평정하였고, 결국 반란은 진압되었고 어비류 역시 목숨을 잃었다.
이후에 어비류와 좌가려는 다시는 나타나지 못하게 됐다.
이들이 나라에 끼쳤던 폐해가 상당히 컸는데, 고국천왕이 이렇게 어려워진 국내 사정을 돌보기 위해 등용한 인물이 바로 그 유명한 을파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