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고달사지 승탑

 


[image] '''대한민국 국보 제4호'''
'''여주 고달사지 승탑'''
驪州 高達寺址 僧塔


'''소재지'''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411-1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수량/면적'''
1기
'''지정연도'''
1962년 12월 20일
'''제작시기'''
연대미상(고려전기)[1]
[image]
1. 개요
2. 내용
3. 바깥고리
4. 국보 제4호


1. 개요


驪州 高達寺址 僧塔. 경기도 여주시 고달사지에 있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승탑. 1962년 국보 제4호로 지정되었다.

2. 내용


여주 고달사지 승탑은 전형적인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승탑으로 높이 4.36 m에 이른다.[2]
고달사지 승탑의 정확한 제작 시대는 알 수 없지만 고달사지(高達寺址)에 같이 남은 원종대사의 승탑보다는 오래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일설에는 신라 말의 고승 원감대사(圓鑑大師)의 승탑이라고도 하나 자세한 기록이 전해지는 것이 없어 확실치는 않다. 다만 신라 말 고려 초 양식을 따르므로 고려 초에 만들었으리라 추정할 뿐이다.
1962년 12월 30일 국보 제4호로 지정됐다.

3. 바깥고리



4. 국보 제4호


고달사터에 남아 있는 높이 4.3m의 고려시대의 승탑이다. 고달사는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23년(764)에 창건된 절로, 고려 광종 이후에는 왕들의 보호를 받아 큰 사찰로서의 면모를 유지하기도 하였으나, 조선시대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바닥의 형태가 8각을 이루고 있으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완전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잘 남아있다.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기단(基壇)은 상·중·하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대의 각 면에는 내부에 꽃 형태의 무늬가 있는 안상(眼象)이 2구씩 새겨져 있고 윗면에는 16엽의 연판이 돌려졌다. 중대는 이 승탑에서 가장 조각수법이 뛰어난 부재로써 거의 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용과 같은 얼굴의 거북은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사실감이 느껴진다. 가운데 거북을 중심으로 총 네 마리의 용이 보주를 쥐고 있으며, 나머지 공간은 구름무늬를 가득 채웠다. 상대석에는 큼지막한 8엽의 앙련이 조각되어 탑몸돌을 받치고 있다.

탑몸돌에는 문비와 자물쇠, 사천왕상(四天王像), 광창(光窓)이 표현되어 있다.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은 꽤 두꺼운 편으로 아랫면에 비천과 구름을 표현하였다. 지붕돌 윗면 각 모서리를 따라 아래로 미끄러지면 그 끝마다 큼직한 귀꽃이 달려 있는데, 일부는 파손된 상태이다. 상륜부에는 둥글넓적한 복발 위로 보개(寶蓋)와 보주(寶珠)가 올려져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승탑의 기본형인 팔각원당형 구조를 잘 따르면서도 조각의 세부수법에서는 고려 특유의 양식을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 전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1]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는 여주 고달사지 승탑의 제작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 기존의 백과사전이나 책에는 3.4 m로 나와있는데, 정밀실측조사보고서에서 4.36 m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