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나이트 스토커

 



The Original Night Stal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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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가 공개한 몽타주 3개 중 하나. 나머지 2개는 여기서 볼 수 있다.
1. 소개
2. 범죄
3. 검거
4. 생애


1. 소개


미국연쇄살인범. 주로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범죄를 저질러 '골든 스테이트 킬러'라는 별명이 붙었고, '오리지널 나이트 스토커'라는 별명도 있다. 최소 살인 12건, 강간 50건, 절도 및 강도 100여 건을 저질렀다고 추정된다.
이 자가 악명 높은 이유는 범죄가 흉악하기도 하지만, 마지막 사건 이후 무려 42년 동안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로 마스크를 쓰고 범행을 해서 얼굴을 제대로 본 피해자들은 하나도 없었다. 오리지널 나이트 스토커라고 불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참고로 '오리지널'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똑같이 '나이트 스토커'라는 별명이 붙은 리처드 라미레즈와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그가 라미레스보다 먼저 살인을 개시한 점과 그 규모가 더 크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외에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1]
이 일련의 사건은 1970년대 미국에서 범죄의 경각심을 크게 높인 대표적 사건이다. 이전에는 미국에서도 이런 흉악 범죄에 대한 경계심이 낮았는데 70~80년대 오리지널 나이트 스토커를 위시한 엽기적 연쇄살인범들의 행각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야간 외출을 삼가고 문단속을 강화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등 미국 사회에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2. 범죄


공식적인 최초의 범죄는 1976년 6월이고, 주로 새크라멘토 동쪽 부촌과 군 기지 부근을 타깃으로 삼았다. 희생자는 주로 13세~41세 사이의 젊은 남녀들이고 부유한 주택가에 침입하여 절도, 강도, 강간, 살인 등을 저질렀는데 2년 사이에 수십 건의 강력 사건이 발생했다. 1978년부터는 샌프란시스코로 활동 지역을 옮겼고 캘리포니아 남부에서도 범행이 이어졌다. 1978년부터는 살인도 저지르기 시작해 1986년까지 범행이 이어졌다.
범행 수법은 주로 젊은 독신 여성 또는 의사, 변호사, 군인 가족 등이 거주하는 부유층 주택에 야간에 마스크를 쓰고 침입하여 침실에서 피해자를 묶고 강간한 후 둔기로 살해하는 등 수법이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하게 매우 엽기적이라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2]

3. 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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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FBI가 사건 재수사를 진행하던 중 사설 DNA 검사 서비스 업체의 DNA 데이터베이스에서 범인과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샘플을 발견하였다. DNA 샘플을 분석해 자신의 집안의 족보와 혈통을 알려 주는 서비스에 용의자의 먼 친척이 DNA 샘플을 의뢰한 것이다. DNA 샘플을 바탕으로 60여 명의 친척들을 용의자에 포함시킨 후 한 명씩 일일이 추적하여 DNA를 대조하며 용의자 범위를 좁혀 나갔다. 이렇게 수사를 진행하다 결국 2년 만에 DNA가 일치하는 남자를 발견해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 성공한다. 그의 DNA를 얻기 위해 추적한 지 8개월 만이었다.
그리고 2018년 4월 25일, 마지막 사건 발생 후 42년 만에 캘리포니아의 새크라멘토 경찰은 로스앤젤레스 인근 벤추라 카운티에서 72세의 '''조셉 제임스 디앤젤로(Joseph James Deangelo Jr.)'''를 체포하였다. 타인의 DNA를 이용하여 친척들을 추적하는 방법으로 용의자를 체포한 최초의 사례이다.

4. 생애


조셉 제임스 디앤젤로(Joseph James Deangelo Jr.)는 1945년 11월 8일, 미국 뉴욕 주의 바스에서 조셉 제임스 디앤젤로 시니어(Joseph James Deangelo Sr.)와 캐슬린 보상코(Kathleen Bosanko; 처녀 성씨는 Degroat)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위로는 3살 연상의 누나 레베카, 아래로는 3살 연하의 여동생 콘스턴스와 4살 연하의 남동생 존이 있었다. 아버지 조셉 디앤젤로 시니어는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참전 용사로서, 퍼플 하트 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는 공군으로 복무하며 가족들과 함께 독일에서 체류하기도 하였다.
디앤젤로의 자세한 가정사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며, 현재 디앤젤로의 조카 제시 라일랜드(Jesse Ryland)의 인터뷰만이 공개된 상태다. 제시 라일랜드에 따르면 디앤젤로의 여동생인 콘스턴스는 죽기 전 자신이 7살 때(1955년) 공군 기지 창고에서 군인 2명에게 강간당했고, 이 때 자신과 함께 놀던 디앤젤로가 이를 목격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제시 라일랜드는 또한 조셉 디앤젤로 시니어가 아내 캐슬린을 습관적으로 구타해 기지 내에서 경고를 받았으며, 캐슬린도 아이들을 상습적으로 학대했다고 주장했다.[3]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제시 라일랜드의 증언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일반적인 연쇄살인범의 특성과 비교해 볼 때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4]
1964년 디앤젤로가 19세가 되었을 때 조셉 디앤젤로 시니어와 캐슬린은 이혼했다. 같은 해에 여동생 콘스턴스는 16세의 나이로 결혼했고, 디앤젤로는 캘리포니아의 폴섬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곧바로 해군에 입대하여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1968년 전역한 디앤젤로는 캘리포니아의 시에라 대학교에 입학하였고, 이 곳에서 보니라는 여성을 만나 1970년에 약혼했지만 모종의 이유로 파혼했다. 같은 해 12월 시에라 대학교에서 경찰학 학위를 취득한 디앤젤로는 1971년 새크라멘토의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에 입학하여 1972년에 형사 사법 학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1973년 5월 디앤젤로는 엑세터(Exeter)라는 지역의 경찰관이 되었으며, 경사로 승격해 세쿼이아 대학교의 경찰 교육 기관에 입학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샤론이라는 여성과 결혼을 했고, 샤론은 이후 법대에 입학했다.
한편, 이 시기 엑세터에서는 엑세터 절도범(Exeter Ransaker)이라는 범죄자가 활동하고 있었다. 엑세터 절도범은 디앤젤로가 전역한 직후인 1968년 4월 2일 빈집털이를 시작으로 1975년 11월 18일까지 61건의 연쇄 절도 사건을 일으켰고, 대부분 단순 빈집털이였지만 안에 사람이 있을 경우 폭행과 강간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개중에는 엑세터 경찰서 주변에서 경찰차를 훔치고(...) 달아난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1973년 6월, 엑세터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디앤젤로의 거주지와 가까웠던 비살리아(Visalia)라는 지역에서 비살리아 절도범(Visalia Ransacker)이 등장했다. 비살리아 절도범은 이후 2년 동안 118건의 연쇄 절도와 1건의 살인, 1건의 살인 미수를 저질렀고 역시 대부분이 빈집털이였으나 강도와 강간 사건도 일부 있었다. 1975년 9월 11일, 비살리아 절도범은 클라우드 레이 스넬링의 집에 침입하여 딸 베스 스넬링을 납치하려 시도하였으나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깬 클라우드 씨가 자신을 보고 달려들자 권총을 발사하여 우발적으로 살해하였다.[5]
클라우드 스넬링을 살해한 후에도 비살리아 절도범의 범행은 계속되었다. 한 달이 지난 1975년 12월 10일 새벽, 비살리아 절도범은 그의 118번째 범죄였던 빈집털이를 마치고 집 뒷문으로 나오던 중 우연히 지나가던 행인에게 목격되었는데 그가 바로 비살리아 절도범 사건을 수사하던 빌 맥고웬 형사였다. 목격자들이 진술한 범인의 인상착의를 외우고 다니던 맥고웬 형사는 단번에 그를 알아봤고, 추격전이 벌어졌다. 비살리아 절도범은 도주 중 권총을 발사하였고, 총탄은 맥고웬 형사가 들고 있던 랜턴을 맞혔다. 랜턴 파편이 눈에 튀어 큰 부상을 입은 맥고웬 형사는 불행히도 범인을 체포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만다. 이 사건을 끝으로 엑세터 절도범과 비살리아 절도범은 범행을 중단하고 종적을 감추게 된다.
1976년, 디앤젤로는 엑세터에서 오번(Auburn) 경찰서로 이직했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18일 공군 기지 주변에서 전직 공군 군무원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살던 20대 여성이 강간을 당한 사건을 시작으로 동부 지역 강간범(East Area Rapist, E.A.R.)이 활동을 시작하였다.[6]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묘사한 범인은 얼굴에 발라클라바를 뒤집어 쓰고 어두운 색 셔츠와 장갑을 착용했다. 키는 약 5.9피트(177cm) 정도에 몸매는 말랐으나 운동을 한 것처럼 보였고, 근육질의 다리에는 마치 면도를 한 것처럼 털이 하나도 없었다. 하의는 아예 입지 않고 있었으며, 목소리는 이를 악물고 의도적으로 변조하였고[7] 피해자들을 칼이나 총 등의 무기로 위협하여 제압한 후 손목과 발목을 뒤로 묶었다. 또 온 집안을 아주 샅샅이 뒤지면서 이상 행동을 하기도 하였다.[9] 여담으로,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진술할 때 공통적으로 언급했던 특징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비정상적으로 작은 성기(...).[10] 또한 짧은 주기를 두고 범행을 저지르다가 갑자기 3~4개월 정도를 쉬는 범행 패턴도 자주 보인다.
1976년에만 E.A.R.과 관련된 10건의 사건이 발생하였고, 1977년으로 해가 넘어가자 E.A.R.의 범행 주기는 더 빨라졌다. 13차 사건이 일어나고 며칠 후, 외출을 하고 돌아오던 레이 밀러와 그의 아들 로드 밀러는 복면을 쓰고 집 안 뒤뜰에 숨어 있는 수상한 남자를 발견하였다. 그들이 남자를 쫓기 시작하자, 남자는 울타리를 넘어 도망치기 시작했고 로드 밀러가 추격하기 위해 울타리를 넘던 순간 남자는 울타리 위에 서 있던 그에게 무자비하게 총을 난사했다. 무려 '''13발'''을 맞은 로드 씨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으나, 병원으로 신속히 옮겨져 수술을 받고 살아났다! 이후 경찰은 범인이 로드 씨의 여동생을 노렸을 것이라고 추정하였고, E.A.R.과 동일 인물인 것으로 가정하고 수사하였다. E.A.R.은 15차 사건까지는 며칠 동안 피해자들을 스토킹하며 성인 남성이 집에 없는 시간대를 노려 철저한 계획에 따라서 범행했지만 로드 씨 사건으로 자신감이라도 생긴 것인지 16차 사건부터는 그동안 선호했던 칼 대신 리볼버 권총을 들고 남성이 집에 있든 없든 그냥 한밤중에 쳐들어가서 자고 있던 여성을 깨우고 총을 들이대며 남성을 묶으라고 지시한 후 여성을 다른 방으로 데려가서 강간하는 식으로 범행 수법을 바꾸었다.[11]
21차 사건이 발생한 후 경찰은 시민들과 기자들을 불러 모은 후 E.A.R.에 대한 공개적인 발표를 하며 공개 수사로 전환하였다. 이 발표가 나간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새크라멘토의 총기와 실탄 가게, 자물쇠 가게들은 모든 상품이 다 떨어졌고, 시민들은 자경단을 조직하였으며 지역의 유지들과 재력가들은 경찰이 제시한 현상금에 자신의 돈을 보탰다. 당시 신문에는 'E.A.R.을 마주쳤을 때 요령과 대처법'이라는 사설이 실리기도 하였다.
1977년 E.A.R.의 범죄는 12월 2일, 28차 사건을 끝으로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1978년 1월 28일, E.A.R.의 새해 첫 범죄가 발생하였다. 이번에는 같은 집에서 10대 자매 2명이 모두 강간을 당했는데, 한 집에서 2명 이상의 강간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은 처음이었다.
4일 후인 2월 2일, 반려견을 산책시키던 공군 병장 브라이언 매과이어와 그의 부인 케이티 매과이어가 야외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이 사건이 E.A.R.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범행 장소가 E.A.R.이 자주 스토킹하던 집 앞이었고, 그 집에 살던 세 자매 중 막내인 10살 여아가 2층에서 범행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12] 또 사건 현장 주변에서 E.A.R.의 시그니처 매듭법으로 묶여 있던 파란색 신발끈이 발견되었고, 범인을 목격한 사람들의 교차 검증을 거쳐 만들어진 몽타주의 모습이 E.A.R.과 유사하였으며[13] 그리고 E.A.R.이 스토킹하던 다른 집들도 모두 그 날은 전화가 오지 않았다고 했던 반면 사건이 벌어졌던 집은 밤 8시까지 전화가 계속 왔다고 하였다. 경찰은 매과이어 부부가 산책시키던 개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집을 다음 타깃으로 잡고 숨어서 기회를 엿보던 범인을 화나게 하였고, 범인이 충동적으로 개에게 폭력을 가하자 매과이어 부부가 항의하면서 이웃 집에서 복면을 쓴 낯선 남자가 나온 것을 수상하게 여겨 추궁하자 그들을 우발적으로 살해한 후 총성으로 동네가 시끄러워지고 개들이 짖기 시작하자 원래 계획했던 범행을 포기하고 도주했을 것이라고 사건을 재구성하였다. 이 사건을 통해 경찰은 범인이 차량이나 자전거 등 자가용이 아니라 도보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을 골라 다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43차 사건을 마지막으로 1978년 범죄는 마무리되었고, 1979년에는 자주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첫 범행이 4월 4일이었고, 7월 5일까지 범죄를 5건밖에 저지르지 않았을 정도로 주기가 눈에 띄게 길어졌다.
1979년 7월, 디앤젤로는 엉뚱하게도 가게에서 개 퇴치용 스프레이와 망치[14]를 훔치다 적발되어 8월 경찰 직위에서 파직되었다. 이후 디앤젤로의 범죄는 더욱 잔인해졌고, 폭력적인 성향까지 띠게 되었다. 그로부터 약 2개월이 지난 10월 1일 49차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묶여 있는 남성의 머리를 권총으로 수차례 내려치는 등 처음으로 피해자를 완전히 제압한 후에도 불필요한 폭력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였고 여성을 제압하고도 강간에 실패하기까지 하였다. 이후 E.A.R.과 유사한 형태의 범죄는 발생하지 않았다.
1979년 12월 30일, 연인 관계였던 정형외과 의사 로버트 존 오퍼만과 심리학자 데브라 매닝은 E.A.R.의 주 활동 지역이었던 새크라맨토 동부에서 약 490km 가량 떨어진 산타바바라에 있던 오퍼만 씨 소유의 콘도로 연말 휴가를 보내러 갔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그들은 침실에서 총에 맞아 죽은 채 발견되었다.[15] 피해자들의 손목과 발목을 묶은 매듭법이 E.A.R과 유사하였지만, 놀랍게도 콘도에 침입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이들이 오기 전부터 콘도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여담으로, 심리학자였던 데브라 매닝은 경찰에 E.A.R.의 심리 상태에 대한 정보를 주어 수사를 도왔다고 한다.
1980년 3월 13일, 산타바바라에서 조금 떨어진 벤츄라 카운티의 하이포인트 드라이브에서 변호사 라이언 스미스와 보석상이었던 그의 부인 샬린 스미스가 집 안에서 둔기에 맞아 죽은 채 발견되었다. 살인 무기는 집 안에 있었던 장작용 통나무였는데, 부서진 나무 조각이 바닥에 널려 있었을 정도로 세게 쳤다고 한다. 샬린은 손목이 묶여 있었는데, 이는 선원들이 짐을 묶을 때 사용하는 '다이아몬드 매듭'이라는 특이한 매듭법이었다.[16] 샬린의 몸에서는 범인의 정액이 발견되었고, 묶여 있던 손목을 비롯하여 온 몸에 심하게 반항한 흔적이 있어 강간을 당한 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1980년 8월 19일, 벤츄라 카운티에서 약 160km 떨어진 데이나 포인트의 카클쉘 드라이브[17]에서 20대 부부 키스 해링턴과 패티 해링턴이 집 안에서 둔기에 맞아 살해되었다. 범인은 그들의 손목과 발목을 묶은 후 패티를 강간하고 두 사람의 몸을 침대보로 덮은 후 밖에서 가져온 통나무로 키스 씨의 머리를 강하게 1회 가격하여 즉사시켰다. 패티가 비명을 지르자[18] 당황한 범인은 필요 이상으로 패티를 여러 차례 내리쳐 살해하였다. 그들의 시신은 며칠이 지난 후에 발견되었기 때문에 범인의 흔적은 전혀 찾아낼 수 없었다. 경찰은 이 흉악한 연쇄 살인범에게 오리지널 나이트 스토커(Original Night Stalker, O.N.S.)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1981년 2월 6일, 캘리포니아 어바인의 콜럼버스에서 4차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곳에서 독일계 미국인 데이비드 위트헌과 결혼하여 살고 있던 독일인 여성 마누엘라 위트헌 씨는 남편이 세균 감염으로 병원에 입원하자 집에 혼자 있게 되었다. 그녀는 침대 위에서 잔인하게 강간을 당하고 머리를 둔기에 맞아 살해당했으며 엉덩이에도 불상의 도구로 심하게 맞은 흔적이 있었다. 경찰은 이를 오리지널 나이트 스토커와 연관시키지 못하고 병원에 있던 남편을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하여 초동 수사에 완전히 실패하였고, 남편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지만 1997년 DNA 대조를 통해서야 마침내 완전히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19] 한편 지난 사건들과는 달리 이 사건은 살인 무기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었는데, 추후 밝혀진 살인 무기는 램프였다. 이번에도 직접적인 살인 무기는 자신이 직접 준비해 오지 않은 도구였다.[20]
1981년 7월 27일, 1차 사건이 발생했던 콘도에서 매우 가까운 톨텍 웨이에서 그렉 산체스와 체리 도밍고가 살해되었다. 이들은 전 연인으로 사건 당시에는 단순한 친구 관계였으며, 그렉이 집을 팔고 이사를 가기 전 체리의 집에 마지막으로 놀러 온 것이었다. 여러 벌의 옷으로 아무렇게나 덮인 채 옷장에 누워 있던 그렉 산체스는 뺨에 총 1발을 맞았으며, 둔기로 머리를 24회 가격당해 사망하였다. 체리 도밍고는 침대 위에서 이불에 덮여 있는 상태였는데, 그녀의 손목과 발목을 묶은 매듭법은 특이하게도 4족 보행 동물을 묶을 때 사용하는 '돼지 매듭'[21]으로 E.A.R.도, O.N.S.도 이전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방식이었다. 체리 역시 사인은 둔기로 인한 두부 외상이었지만, 그렉과 달리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잔인하지는 않았다.
1981년, 큰딸 미샤가 태어난 이후 디앤젤로는 5년간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1986년 저넬 크루즈를 잔혹하게 살해했고, 이후 범행을 멈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것또한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1987년에 디앤젤로가 호주에 갔는데, 그 해부터 1991년까지 호주의 악명높은 아동 강간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일명 미스터 크루얼이라고 불리고, 3명의 여자아이들을 강간하고, 마지막 피해자는 총으로 살해했다. 마지막 피해자의 강간여부는 불명이며 유골은 1년 뒤에 발견되었다. 범인의 특징은 키가 175cm, 얼굴을 마스크로 가림 등으로 디앤젤로의 범행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DNA대조로 서로 별개의 인물로 판명났다. 그래서 현재 미스터 크루얼은 다시 오리무중이 되었다.
디앤젤로는 변호사 아내와의 사이에서 딸 셋을 두었으며 1991년에 이혼했다. 디앤젤로는 로즈빌에서 수리공으로 일했고, 2018년 체포될 당시에는 은퇴한 상태로 큰딸, 손녀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2020년 6월 디앤젤로는 유죄를 인정하고 사형에서 종신형으로 형량거래를 했다.기사
재판 과정에서 힘겹게 유죄를 인정하고 휠체어를 타는 나약한 노인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사실 그게 쇼였음이 폭로된다! 검찰이 폭로한 영상 속에선 독방에서 맨손 체조를 자유자재로 하고, 청소를 하는 모습이 폭로되었다. 게다가 과거에 범죄를 저지를때, 천으로 조명을 가리는 것처럼 독방에서 매트릭스를 밟고 올라 종이로 조명을 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여 분노를 샀다. #
[1] 밤에 집에 침입해서 범행하는 수법은 비슷하고, 실제로 경찰도 두 사람이 동일범이라고 보고 수사를 했지만 라미레즈는 오리지널 나이트 스토커와 비교했을 때 마스크도 쓰지 않고 현장에 각종 흔적을 대놓고 남기는 등 증거 인멸에 관한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았다는 차이점이 있다. 또 그의 자세한 범죄 일지를 살펴 보면 순간적인 충동보다는 피해자를 스토킹하며 나름대로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는 지능범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후술할 내용에 그 이유를 알수 있다.[2] 대중 매체에 등장하는 주거 침입형 연쇄살인범들은 대부분 이 사람을 모티브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3] 이후 피해자들은 디앤젤로가 강간을 하고 나서 갑자기 흐느끼며 엄마에게 용서를 빌거나 엄마를 욕하고 비난하는 등 이상 행동을 보였다고 진술하였다.[4] 특히 훗날 디앤젤로의 범죄 역시 공군 기지 주변에서 많이 발생하였고 피해자나 그 가족들 중에서도 공군이 많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디앤젤로에게 공군 기지는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던 유년 시절을 상징하는 매개체일지도 모른다.[5] 딸의 진술에 따르면 그가 스넬링 씨의 집에 침입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고 한다.[6] E.A.R. 역시 DNA 검사를 통해 디앤젤로와 동일 인물인 것으로 공식 확인되었다.[7] 디앤젤로는 보통 남성보다 높은 목소리에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한다. 스토킹을 당하던 피해자가 녹음한 디앤젤로의 협박 전화도 의도적으로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변조한 것이었다. 작은 성기와 높은 목소리는 디앤젤로에게 본인의 남성성에 대한 불신과 열등감, 성 정체성에 대한 위협과 공포 등을 심어 주기에 적합했을 것이다. 범죄를 저지를 때도 남성성을 강조하려는 듯한 행동을 자주 하였고, 피해자가 반항하거나 해서 당황하면 원래의 높은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였다고 한다.[8] 아버지가 의사였던 피해자에게는 집 안에 마약류가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고 한다.[9] 피해자들 중 일부는 범인이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하며, 침을 흘리거나 흐느끼며 혼잣말을 했다고 한다. 정신 분열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부 피해자들의 진술[8]과 탐지견들이 코카인을 발견했을 때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는 점을 근거로 범인이 마약 중독자일 것이라 추정하는 의견도 있었다.[10] 강간을 당한 피해자가 강간 검사를 받았는데 처녀성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나오기도 하였다(...). [11] 물론 기존의 방식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 범죄에서는 확실히 계획적인 모습보다 즉흥적인 모습이 두드러진다.[12] 이 아이는 범인의 키가 E.A.R.과 같은 5.9피트라고 증언하였다.[13] 옷으로 보이는 것(벗은 마스크나 스타킹으로 추정)을 들고 바지 뒷주머니에 매과이어 부부를 죽인 것과 같은 리볼버 권총을 꽂고 다니던 남자를 봤다고 증언한 사람도 있었다.[14] 전술했듯이 디앤젤로는 개를 매우 싫어하였고, 집에 침입할 때 망치를 자주 사용하였다. 원래 쓰던 게 고장이 났던 것 같다. [15] 오퍼만은 가슴에 1발, 등에 3발을 맞았고 매닝은 뒤통수에 1발을 맞아 즉사했다.[16] 디앤젤로는 해군 출신이므로 이 시기에 익혔을 수도 있다.[17] 범인은 산타바바라에서 점점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18] 당시 그녀의 비명 소리를 한 사람이 들었다고 한다.[19] 그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지병으로 사망하였다.[20] 자신과 살인 무기를 연관시키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피해자들을 묶고 완전히 제압하려면 최소한 칼이나 총은 준비했어야 했을 테니 현장에 있던 도구로 살해한 것은 분명 의도가 있는 행위였을 것이다.[21] 손목과 발목을 묶은 매듭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