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평
吳平
생몰년도 미상
후한 초기의 인물. 자는 군고(君高).
월절서에 편집에 관여했고 월절서에 쓴 편서외전기를 통해 파자로 이름, 미어로 출신을 밝히고 있으며, 상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구천 이래로 경시(更始)에 이르도록 5백여 년이 흘렀다는 말이 나온 것을 통해 그가 있던 시기를 밝히고 있다.
그의 이름은 글의 문장을 확정한 것은 나라의 현인으로부터 나온 것이니, 나라의 현인이란 구(口)자로 성을 삼고 이를 천(天)자로 이어받았으니 초나라 재상 굴원이 그와 같은 이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고금에 밝았고 원강이 그 덕이 안연과 같다고 평가했으며, 당시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해 숨어살다가 신(申), 유(酉) 연간에 도를 품은 채를 세상을 떴다고 한다. 또 원강이 오평의 저술에 대해 춘추가 날카롭게 요순을 정확히 기술하고 주문왕의 뜻을 내려주었듯이, 천지와 짝을 이루고 오경에 드러나며, 그 덕은 일월과 나란히 하고 그 지혜는 음양과 함께할 정도라고 칭찬했다.
생몰년도 미상
후한 초기의 인물. 자는 군고(君高).
월절서에 편집에 관여했고 월절서에 쓴 편서외전기를 통해 파자로 이름, 미어로 출신을 밝히고 있으며, 상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구천 이래로 경시(更始)에 이르도록 5백여 년이 흘렀다는 말이 나온 것을 통해 그가 있던 시기를 밝히고 있다.
그의 이름은 글의 문장을 확정한 것은 나라의 현인으로부터 나온 것이니, 나라의 현인이란 구(口)자로 성을 삼고 이를 천(天)자로 이어받았으니 초나라 재상 굴원이 그와 같은 이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고금에 밝았고 원강이 그 덕이 안연과 같다고 평가했으며, 당시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해 숨어살다가 신(申), 유(酉) 연간에 도를 품은 채를 세상을 떴다고 한다. 또 원강이 오평의 저술에 대해 춘추가 날카롭게 요순을 정확히 기술하고 주문왕의 뜻을 내려주었듯이, 천지와 짝을 이루고 오경에 드러나며, 그 덕은 일월과 나란히 하고 그 지혜는 음양과 함께할 정도라고 칭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