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코프 호텔 화재사고

 


Winecoff Hotel Fire
1. 개요
2. 호텔 건물
3. 화재
4. 사상자와 생존자, 그 외
5. 화재 이후
5.1. 당시 현장 취재와 퓰리처상 수상작


1. 개요


1946년 12월 7일, 미국 조지아애틀랜타에 있던 와인코프 호텔(Winecoff Hotel)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 119명의 사망자를 낸 큰 화재사고이다.
화재의 확산 과정에서 유사점이 많기 때문에, 한국의 대연각 화재사건과 많이 비교되는 사건이다.
2017년 6월, 영국에서 흡사한 사건이 터졌다.

2. 호텔 건물


와인코프 호텔 건물은 1913년에 지어진 것으로, 15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건물 중앙에 엘리베이터가 2대 있었고, 계단은 개방되어 있었다. 콘크리트 건물이었지만, 화재에는 많은 취약점을 드러낸 건물이었는데, 내장재가 대부분 가연성인데다 스프링클러가 없었고, 계단이 개방되어 있던 데다 비상계단도 없었다. 또한 화재 경보도 수동으로 울리게 되어 있었다. 이렇게 화재에 취약하게 지어진 이유는, 건축 당시 법률의 취약점 때문이었다. 5,000평방피트 이상의 건물에만 소방시설을 의무화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와인코프 호텔은 4,386평방피트였기 때문에, 소방시설을 의무화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3. 화재


화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깊이 잠든 시간인 새벽시간에 일어났기 때문에 희생자가 더욱 많았다. 화재는 침대와 나무의자가 쌓여 있던 3층 서쪽 복도였는데, 계단이 가까운 곳이었다. 화재 원인은 담뱃불로 추정되고, 화재가 일어난 시각은 새벽 3시 15분경으로 추정된다. 처음 화재를 발견한 것은 5층에 올라갔다 내려오던 호텔 보이였는데, 화재 경보를 울린 것은 3시 42분이었고, 이미 불이 크게 번진 후였다.
불은 개방된 계단과 건물 곳곳에 있는 개구부를 타고 위로 올라갔고, 마침내 꼭대기 층인 15층까지 불이 붙어 타올랐다. 유일한 탈출구인 계단은 불이 타올라오는 통로가 되어서, 탈출구가 꽉 막힌 상태였다.
물론 소방대가 출동했지만, 화재 신고가 너무 늦게 들어갔기 때문에, 현장에 도착했을 때 호텔은 전 층에 불이 번진 상태였다. 당시 고층까지 닿는 사다리차가 없었기 때문에, 양옆에 붙어 있는 12층 건물과 6층 건물 사이에 사다리를 놓아 사람들을 구출했다. 그러나 도로 쪽에 면해 있는 쪽의 방에 묵고 있던 사람들은 달리 구출할 방도가 없었다.

4. 사상자와 생존자, 그 외


화재 당일, 304명의 투숙객들이 있었는데, 119명이 죽었고, 65여명은 부상을 당했지만 구출되었고, 120여명은 별 상처 없이 구출되었다. 호텔의 소유주였던 윌리엄 플레밍 와인코프(William Fleming Winecoff, 76)는 아내인 그레이스 스미스 와인코프(Grace Smith Winecoff, 76)와 함께 이 호텔의 스위트룸 1011-1012호실에 31년간 살았는데, 남편은 근처 홀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으며, 아내는 호텔이 있던 피치트리(Peachtree)의 인도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32명은 추락사였는데, 화재를 피해 건물 밖으로 뛰어내린 사람도 있었지만, 침대 시트 등을 묶어 만든 줄로 탈출하다가 떨어진 사람도 있었다. 투숙객들 중에는 조지아주립 YMCA가 후원한 청소년 정부 입법 체험 프로그램(a state youth-in-government legislative program)[1]에 참석한 중고생들도 있었는데, 그중 32명이 사망했다. 그중에는 당시 14살의 패트리시아 앤 그리핀도 있었는데, 926호실에서 다른 학생과 보호자 한 명과 함께 질식사한 채로 발견되었다. 학생들은 대부분 인도에 접한 호텔의 뒤편의 방에 두 명씩 투숙했었는데, 문제는 그쪽의 창문은 투숙객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미늘창 형태의 셔터로 막혀있었다는 것. 그렇게 막힌 방들 중 5층 위의 방에 투숙한 사람들은 모두 화재 때 죽었다.
당시 3백~4백만 달러에 달하는 소송이 호텔 소유주에게 제기되었지만, 화재로 나온 보험금은 전부 약 35만 달러에 불과했다.

5. 화재 이후


이 화재 사건은 1946년의 라 사르(La Salle) 호텔 화재 사건[2]과 더불어, 고층 빌딩의 화재 취약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둘 다 개방된 계단이 불과 연기가 번져 올라가는 통로가 되었다는 점이 지적되었고, 결국 소방 관련법이 개정되는 큰 계기가 되었다. 연방의회는 화재예방법을 1947년에 개정하였고, 안전장치가 없는 계단 통로 문제의 개선이 강조되었다. 이는 라 사르 호텔 화재 때는 연기의 확산 통로, 와인코프 호텔 화재 때는 불의 확산 통로가 되었고, 대피 통로를 막아버리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와인코프 호텔은 전소(全燒)되었지만, 콘크리트 건물이었기 때문에 골격은 그대로 남았고, 건물을 수리하여 1951년 4월 피치트리 호텔(Peachtree Hotel)로 재개장했다. 재개장한 호텔은 건물 외부에 비상계단을 마련하고, 전 층에 화재경보 시스템을 채택하는 등 안전장치를 최대한 갖췄다. 이후 건물이 너무 오래되자, 2006년 4월부터 리모델링을 하여, 2007년 10월 1일 엘리스 호텔(Ellis Hotel)로 재개장했다.

5.1. 당시 현장 취재와 퓰리처상 수상작


[image]
이 화재 사건은 1947년 퓰리처 상을 수상한 이 사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조지아 공과대학에 다니던 24살의 아놀드 하디는 당시 파티에서 집으로 가던 중에,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를 듣고, 소방서에 전화해 화재현장이 어디인지 물어보고는 현장으로 갔다. 애틀란타 저널 사진기자 잭 영은 당시 늑막염으로 고통 받다가, 12월 7일, 새벽 3시 30분에 그래디 메모리얼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는데, 많은 사상자가 난 화재사고 소식을 듣고는, 후닥닥 차려입고 현장으로 바로 갔다고 한다. AP 사진기자 루디 페어클로스와 호레이스 코트 또한 현장에 도착했다. 화재 이후, 하디가 AP 사무실에 나타났다. 하디가 찍은 사진들 중 세 장은 쓸 수 없었고, 한 장만이 괜찮게 나왔는데, 그게 바로 저 사진으로, 호텔에서 불을 피해 아래로 떨어지는 데이시 매쿰버(Daisy McCumber)라는 여성이 찍힌 것이다. 이 여성은 3층 창문에 있던 차양에 떨어졌고, 이게 충격을 완화시켜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당시 AP 통신은 그의 사진에 300달러를 지불하고 사들였으며, 이 사진은 1947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 미국 YMCA의 프로그램들 중 하나로, 청소년들이 가상으로 지역, 주, 국가, 국제적 규모로 만들어진 행정부에서 입법부를 체험하게 하는, 일종의 현장 학습.[2] 1946년 6월 5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라 살르 가와 매디슨 가 북서쪽에 위치한 라 셀르 호텔에서 난 화재. 61명이 사망하였고, 그중 어린이들이 많았다. 호텔 내부의 실버 그릴 칵테일 라운지에서 불이 시작되었는데, 여기 위치가 계단통, 즉 계단으로 이뤄진 우물 모양의 수직공간과 그 기둥 앞이었다. 시카고 소방서에 따르면, 화재는 오전 12:15경에 그 라운지의 벽이나 지붕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오전 12:35까지 신고를 받지 못했다. 불은 라운지와 로비가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의, 듬뿍 니스칠이 된 목재 벽을 타고 위로 치솟았다. 희생자들 대부분은 불에 타죽거나, 연기로 인해 질식사했고, 900여명 정도는 스스로 탈출할 수 있었으나, 150여명은 소방대원들과 몇몇 영웅적인 시민들에 의해 구조되었는데, 그때 선원 두 명이 저 화재 당시 27명을 구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시카고 시의회는 관련법규를 개정했는데, 자동경보장치의 설치와 객실 내부 화재안전장치 등이 중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