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크라머
요제프 크라머 (Josef Kramer)
(1907년 11월 10일 출생 - 1945년 12월 13일 사망)
뮌헨출신인 크라머는 1931년에 나치당에 입당하여 1932년에 친위대 대원이 되었다. 1934년에 다카우 강제수용소의 간수가 된 후 급속히 승진하여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및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의 부소장으로 취임했다. 1940년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루돌프 회스 소장의 부관으로 임명되었다. 1941년 4월에 나쉬바일러 슈트르호프 강제수용소의 소장으로 취임한 크라머는 1942년에 친위대 대위로 승진하여 1944년 5월부터 1944년 12월까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 관리자로 일했다. 1944년 12월부터는 베르겐 베르젠 강제수용소의 소장으로 임명되었다. 베르젠 수용소는 매우 위생상태가 나빴는데 이곳에 수용된 사람들은 대부분이 티푸스 등의 감염 및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안네의 일기로 잘 알려진 안네 프랑크도 그 희생자 중의 하나다. 전후 베르젠에서 해방된 수용자들이 <유대인들이 수용소에서 나갈 방법은 이 굴뚝 외엔 없다>라고 소각로를 가리킨 말은 매우 유명하다. 베르젠의 야수로 칭해졌던 크라머는 종전 후 영국군에 의해 체포되어 다른 44명의 수용소 반원들과 함께 유죄를 인정받아 영국군사법정에서 1945년 11월에 사형선고를 받고는 12월 13일, 하멜른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