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렬(독립운동가)

 


성명
우병렬(禹炳烈)
생몰
1856년 8월 30일 ~ 1929년 7월 20일
출생지
황해도 평산군 용산면 석탄리
사망지
황해도 평산군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우병렬은 1856년 8월 30일 황해도 평산군 용산면 석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5년경 훈련원 판관직에 있다가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후진 교육에 힘썼다. 그러다 1907년 8월 1월 대한제국군이 해산되자, 그는 8월 7일 황해도 평산군 도평산에서 의병을 일으킨 목천 부사 박정빈의 의병대에 가담하여 중군장을 맡았다.
이후 박정빈이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 큰 손실을 입은 뒤 9월 4일 우병렬에게 대장 직을 넘겨줬고, 우병렬은 사위 이진룡과 함께 일본군을 상대로 유격전을 전개했다. 그는 1908년 8월까지 1년간 일본군과 싸웠지만 전세가 어려워지자 해외에서 재기를 도모하고자 1911년 10월 의병의 지휘권을 한정만에게 위임하고 조맹선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연해주로 망명하였다.
이후 최재형, 이범윤의 의병대에 합류한 그는 1910년 6월 21일 류인석이 13도의군을 조직할 때 참가해 도총소참모(都總所參謀)를 맡았다. 그러다가 류인석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자 1912년 4월 결별하고 러시아에서 나와 중국 봉천성 관전현 청산구 소아하구로 가서 항일 투쟁을 이어갔다. 그리고 의병밀영을 초막으로 짓고, 그 부근에 훈련장도 만들었다. 1922년 가족들을 데리고 본계현, 흥경현 등지로 전전하면서 유랑생활을 하다가 1929년 고향으로 돌아왔고, 그해 7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우병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