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척현 전투

 



'''우척현 전투'''
牛脊峴戰鬪

'''시기'''
1592년 8월 16일 (음력 7월 10일)
'''장소'''
경상도 거창 우척현
'''원인'''
왜군의 전라도 진공
'''교전국'''
조선 [image]
일본 [image]
'''지휘관'''
'''김면'''
정인홍
황응남
이형 †
<^|1> 고바야카와 다카카케
'''병력'''
의병 2000명
별군 1500명
'''피해'''
피해 규모 불명
피해 규모 불명
'''결과'''
일본군의 패배
'''영향'''
일본군의 전라도 진출 좌절
1. 배경
2. 전개
3.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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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


고바야카와 다카카케는 임진왜란 당시 제 6군의 사령관을 맡아 전라도를 함락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에 고바야카와 다카카케는 병력을 나누어 본인은 이치로, 부하 안코쿠지 에케이는 웅치로, 그리고 별군은 거창을 지나 지례로 진군케 하였다. 하지만 이치에서 고바야카와의 본진은 패했으며 웅치에서는 조선군을 격파했으나 전주성 인근의 조선에게 패퇴하며 전라도 함락에 큰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하지만 지례로 진군하던 병력이 남아있었기에 김성일은 급히 김면에게 연락을 넣어 일본군을 막을 것을 명했다.
김면은 4,5일동안 병력 2000을 모았고 김성일 역시 황응남과 이형을 포함한 관군을 보내어 이들을 지원했다. 김면은 병력 2천을 인근 요소마다 배치하고 전투를 기다렸다.

2. 전개


일본군은 지례를 공략하고 거창으로 향하던 중 공격을 받자 금산방면으로 퇴각했다. 그러고는 금산에서 거창으로 가는 방면인 우척현으로 향하다 김면군이 다시 기습하자 크게 놀라 패주하였다. 이 때에 황응남의 용맹이 으뜸이었다고 하며 이형은 산척을 이끌고 돌격하다 전사했다.

3. 결과


이 이후 김면은 거창에 병력을 매복시켜 적의 동태를 살피자 적이 더이상 진군하지 못했다. 이 이후 일본군은 더 이상 전라도로 진군하지 못했고 김면은 이후 병력을 이끌고 정암진으로 향해 곽재우와 적을 막았다.
  • 참고문헌
송암 김면의 의병활동(최효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