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알 유희
이런 명랑성은 시시덕거림도 자기만족도 아니라네. 그것은 최고의 인식이자 사랑이고, 온갖 현실에 대한 긍정이며, 모든 심연과 나락의 절벽 끝에 서서도 정신 차리고 깨어 있는 일이야. 성인과 기사의 덕이지. 어지럽힐 수 없는 것이며, 나이를 먹고 죽음에 가까이 갈수록 한층 더해 가는 것이야. 그것은 미의 비밀이며 모든 예술의 본체라네.
위험이 닥쳐 모두에게 분명해지는 것은 그 뒤의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비단 저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러한 평온은 양심을 편하게 해 주지 않습니다. 아니 , 우리처럼 비정치적인 인간도 세계사의 일원이며 세계사가 형성되는 것을 돕는다는 점을 기억해 내야만 할 것 같습니다.
1. 개요
Das Glasperlenspiel
헤르만 헤세가 1943년에 발표한 책이며, 헤세는 1946년 2차 대전 종전 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예술 창작 행위가 중단된 시대의, 종교와 음악을 위주로 한 속세와 분리된 영재 교육 및 연구 시설 카스탈리엔을 배경으로, 가공의 지적 유희이자 유사 예술 활동인 유리알 유희의 명인인 요제프 크네히트의 일생을 그 후대 사람들이 기록하는 전기 형식으로 씌어졌다.
만년의 헤세가 심취한 고대 중국 철학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특히 공자의 예악사상에 짙은 영향을 받았고, 많은 요소가 여기에 모티브를 두고 있다. 동양문화권의 사람들이 살펴보면 유리알 유희 작품 구성은 유가의 예악사상을 서양식으로 옮겨놓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사실상 중국인에 가까운 '노형'이라는 캐릭터도 등장하며 주인공 크네히트도 중국어와 중국 사상에 능통해진다. 헤르만 헤세의 다른 책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서, 황야의 이리보다 술술 읽히는 편은 아니다. 서로 다른 세계속에서의 개인의 고뇌와 성장을 서술한 것은 다른 책과 유리알 유희는 같으나, 예술 쪽 분야의 서술이 늘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뒷부분의 유리알 명인의 유고가 실려있는데, 앞부분을 읽고나서 뒷부분으로 가기때문에 무슨 내용인지는 이해하겠지만 앞부분보다 추상적임으로 난해한 면이 없지 않다.[1] 종장에 이르러서는 물 속에 뛰어들어 사라지는 대목은 거의 우화등선하는 모습으로, 도가적인 느낌도 없지 않다.
유리알 유희는 2권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유리알 명인의 어린시절 - 카스탈리엔의 발트첼 영재학교의 입학후 - 다른 수도원으로의 이동 - 카스탈리안으로의 복귀- 속세로의 탈출 순의 구성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2. 읽기 전에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와 비슷한 플롯인데 결국 속세와 그와 반대지점을 대표하는 인물이 등장하고 그 인물을 통해서 그 사회의 특성을 보이며 그 속에서 고뇌하는 인물을 나타내고 결국 '''그걸 절충하거나 , 다 장점이 있구나!'''라는 전개.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유리알 유희라는 걸 알아야 하는데, 유리알 유희라는 것은 어떤 철사줄에 유리알을 주어진 유희의 명제에 따라 마치 음악에서 악보와 음표가 조화를 이루어 계속해서 음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변주되는 과정이라고 어느 정도 해석되고 있다. 작품 내에서도, 유리알 유희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정의되어있지 않다. 그러나 해석이라든지 묘사라든지 유리알 유희자들이 행하는 유희의 정도가 높아질수록 유희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놀라는 반응이 더 격렬해지는 것 등등을 통해 유희가 무엇인지를 암시하게 만든다. 결국에는 정신적으로 우월한 집단(여기서는 주로 카스탈리안)끼리 모여서 지적으로 유희하면서 결국 유희의 끝, 신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다. 즉 예술분야의 고전에 대한 객관적 분석과 정리, 그리고 예술 분야의 통합을 통해서 그걸 연관지어가며 유희를 즐기는 것이다.
재밌는 점은 카스탈리엔이라는 속세와 떨어진 세계인데 민중들이 참혹한 전쟁과 참혹한 사회를 겪다보니 '아 이대로는 안되겠구나! 우리 사회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순수하게 지적으로만 돌아가는 세계가 존재해 우리 사회를 정화시켜주는 역할을 해줘야 겠구나!'라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즉,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동같은 것은 하지않으며 오직 지적인 활동만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다.
3. 줄거리
유리알 명인 요제프는 성장하면서 부터 영재적 기질을 보이다가 결국은 유리알 명인의 자리까지 올라가는데 사람을 이끌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행운의 자질을 타고났다. 요제프가 유리알 명인으로 성장하기 까지 도움을 준 인물은 크게 두명인데 한명은 음악명인이며 다른 한 사람은 야코부스 신부다.
음악명인은 요제프가 어릴때부터 명인이 될때까지 명인이 각성하도록 이끌어 준 사람이며, 헤세의 유리알 유희라는 책에서 가장 위대하게 묘사 되는 인물이다. 맑은 눈과, 따스함, 총명함, 그리고 명랑함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며 후반에 죽어갈 수록 마치 모든 것을 통달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야코부스 신부는 요제프가 다른 수도원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만난 인물인데, 역사에 최고권위자이며 기독교에 대한 믿음, 역사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갖고 있으며, 신성한 세계 즉 카스탈리엔에서 온 요제프와 토론을 벌인다. 하지만 둘은 결국에는 토론을 통해 서로 절충하며 타협점을 찾아간다. 야코부스 신부와의 토론을 통해 요제프는 카스탈리엔에 문제점에 각성하며 카스탈리엔을 옹호하면서 학창시절 데시뇨리와의 논쟁에서도 행했던 카스탈리엔의 대리 변호의 역할을 하였다. 야코부스와의 토론후에 요제프는 전임명인의 죽음으로 혼란한 분위기에 젊은 나이에 유리알 유희 명인에 오르며 임무를 잘 수행하다 예전친구였던 플리니오 데시뇨리를 만나고 다시 속세와 카스탈리엔에 대한 고찰에 절정으로 들어간다. 원래부터 카스탈리엔의 문제점에 고뇌하던 요제프에게 불을 지핀 것.
결국 요제프는 청원서를 넣은 후 유리알 유희 명인자리를 그만두고 속세를 경험하러 친구 아들의 교사가 되어 속세로 돌아가지만, 친구의 아들을 각성시키고는 수영을 하다 사망한다. 친구의 아들은 속세와 신성성과의 완전한 조화를 이룰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었는데 요제프의 가르침에 의해 완전히 각성한 것으로 보이며, 속세와 카스탈리엔의 균형을 완전히 터득하여 사회의 방향을 잡아줄 것으로 묘사된다.
[1] 민음사 해설본에서는 뒷부분부터 읽고 앞부분을 읽으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울 것이라고 하는데 딱히 그러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