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여
應余
(? ~ 218)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자정(子正).
남양군 사람으로 의연한 외모를 가졌고 의리를 존중했으며, 218년에 공조가 되었고 그 해 겨울 10월에 완성에서 후음이 사람들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켰는데, 동리곤이 성 밖으로 탈출하면서 후음이 추격할 기병을 보내면서 성 밖의 10리 지점에서 동리곤을 향해 화살을 날리자 응여는 동리곤 앞을 막아서서 7곳의 상처를 입었다.
응여가 막아서면서 통곡하자 군사들은 그의 충렬을 보고 동리곤을 놓아주었지만 응여는 사망했다.
219년에 조인이 후음을 토벌한 후에 이 일을 상소하면서 응여를 제사지냈으며, 조조가 그 말을 듣고 오랫동안 탄식했다가 그의 고향에 표창해 식량 천 곡을 하사했다. 258년에 조모가 그의 충렬을 기리면서 손자인 응륜을 사도에 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