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우에 겐자부로
井上源三郎. 양력 1829.04.04 ~ 1868.01.29. 신센구미의 6번대 조장.
무사시 국의 히노에서 막부 하급병사를 돌보는 이노우에 도자에몬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겐자부로의 형제는 장남 헤이스케, 차남 마츠고로, 사남 요시로, 오남 겐타로, 여형제 5명까지, 총 10형제이다. 장남 헤이스케는 안자이 가문의 양자로 들어갔으나, 후사가 없어 동생 요시로를 자신의 양자로 들였다. 결국 차남 마츠고로가 가문을 이어 이노우에 가의 당주가 되었다.
그 뒤 마츠고로는 다마 지역을 순회하면서, 당시엔 별로 유명하지 않았던 검술 유파인 천연이심류를 가르치던 곤도 슈스케(近藤周助) 밑에서 검술 수련을 하였다. 이 때 겐자부로도 형을 따라 입문하였고, 만엔 원년(1860년)에 천연이심류를 전부 전수받는다. 가에이 2년(1849년), 촌장 사토 히코고로가 천연이심류에 입문하였는데, 그는 자택의 일부를 개조하여 도장을 개설한다. 이 도장에서 검술 지도를 맡은 사람이 마츠고로와 겐자부로. 후에 신센구미의 부장이 되는 히지카타 토시조도 사토 도장에서 수련하였던 것으로 미루어, 아마 이때부터 이노우에 형제와 친분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분큐 3년(1863년), 겐자부로는 낭사조의 상경의 움직임이 있자 히지카타 토시조 등과 함께 상경한다. 낭사조에는 히노 출신 바바 헤이스케, 나카무라 다키치로, 오키타 린타로 등이 있었다. 교토에 잔류하게 된 곤도 이사미, 히지카타 토시조 등을 중심으로 하여 반(反)막부 낭인부대인 신센구미가 결성되었고, 겐자부로는 6번대 조장으로 임명되었다.
겐자부로는 세리자와 일파가 숙청되자 부장보좌(副長助勤)가 되었고, 겐지 원년(1864년), 신센구미가 존왕양이파를 습격한 이케다야 사건 때에는 히지카타 부대의 분대 지휘를 맡아 8명의 낭인들을 포박하는 성과를 올렸다. 같은 해 7월에 있었던 덴노산(天王山) 공격에서는 발가락에 총탄을 맞으면서도 산 정상에 있는 적을 과감히 공격하는 용맹함을 보였다. 겐자부로는 전투에서뿐만 아니라 교토 지역 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가 교토 시중을 순찰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그의 독실한 성격 덕에 상인들에게 높은 신망을 받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곤도와 히지카타와는 친가족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매우 친했고 인품은 온화한 사람이었다고 한다.[1] 그리고 오키타가 20세에 면허 전수까지 했던 것에 비해 그 때 당시의 겐자부로는 목록이었다. 게다가 자신보다 연하인 곤도 이사미가 천연이심류를 상속받았기 때문에 사제인데도 선생님이라고 불러야만 했지만 본인은 딱히 마음에 두지 않았다. 게다가 곤도, 히지카타, 오키타와는 유대감이 돈독했는데, 중요한 일은 4명 등이 모여 의논하고 결정하곤 했다.
게이오 원년(1865년) 6월, 조직 개편으로 인해 6번대 조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게이오 3년(1867년) 6월에는 신센구미가 막부직속 부대가 되어 자연스레 막신이 되었다. 메이지 원년(1868년) 정월, 도바 · 후시미(鳥羽 · 伏見) 전투에서 가슴에 총탄을 맞아 39세의 나이로 전사.[2] 그의 묘석은 히노 시 호센지(宝泉寺)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