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이심류

 



1. 역사
2. 수련
3. 미디어
4. 관련 문서


1. 역사


天然理心流(てんねんりしんりゅう(텐넨리신류)
18세기 초반, 일본의 도토미(지금의 시즈오카 현) 하마나 호반의 향사, 곤도 구라노스케(近藤内蔵之助 또는 近藤内蔵助)가 창시한 유파이다. 곤도 구라노스케는 가시마신토류(鹿島新當流)를 배운 후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행하며 여러 유파를 상대한 것을 집대성해 천연이심류를 만들었다고 한다.
주로 전파되었던 지역은 무사시 지방의 다마(多摩)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역이며. 무사들의 전유물이 된 타 유파와는 달리, 그 지역의 부농들이 제자들의 대부분인 유파다.[1] 곤도 이사미도 이런 부농의 자식들 중 하나이다.
신센구미를 만든 곤도 이사미히지카타 토시조, 오키타 소지, 이노우에 겐자부로의 유파. 흔히 신센구미에 관심있는 사람은 천연이심류란 단어를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신센구미 인물들이 주로 나온 곳이라 가끔 유명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당시 천연이심류는 에도 3대 도장[2]에 밀려서 듣보잡 취급을 받던 시골도장이었다. 당시엔 죽도술이 주류를 이루었고, 천연이심류 자체가 사족 중심의 검술이 아닌 서민 중심의 검술이었기 때문이다.[3]
종가였던 곤도 이사미가 후계를 남기지 않고 사망했으므로, 현재 일본에서는 계보가 많이 꼬여 있다고 한다. 아니, 그 전에 2대인 곤도 산스케가 제자를 가르칠 수 있는 指南免許나 면허개전에 해당하는 認可 자격을 제자들에게 주지 않고 일찍 죽어서 남은 제자들은 자격 없이 제자를 두거나 방계유파에서 새로 배워 자격을 얻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미 복잡한 상황이었다. 가문 자체는 곤도 이사미의 조카이며 양자이자 사위인 곤도 유고로가 이었지만 곤도 이사미가 불의의 죽음을 맞이한 탓에 구전으로 전승되는 천연이심류 종가의 무술은 실전됐다.
곤도 가의 도장이던 試衛館(しえいかん(시에이칸)과 같은 이름의 도장이 현존하지만, 이는 방계유파에서 수련하던 사람이 곤도 이사미의 유지를 잇는다며 이름을 빌려 신설한 것이다.

2. 수련


천연이심류는 우선 이아이(居合)를 가르친다. 총 4본으로 되어있다. 제1본은 일반적인 정면 베기, 제2본은 낮은 자세에서 상대 허벅지를 베는 기술, 제3본은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왼편의 적을 쳐내리는 기술, 제4본은 앞뒤의 적에 대비하는 공격법이다. 이 4본이 어느 정도 손에 익으면 대나무, 짚단을 베는 타메시기리(시험 베기)를 행한다.
이아이 수련을 마치면 목검을 들고 하는 카타(形)를 배우게 된다. 천연이심류의 가타는 오모테(表)카타, 카게(陰)카타로 나뉘어져 있다.
오모테 카타는 손잡이가 아주 두껍고 무거운 목검을 들고 하는 형이다. 단순하지만 기백, 담력, 팔의 힘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기술은 간단하지만 실전에 강한 천연이심류의 근간이 되는 가타이다.
이때 쓰는 목검은 약 1.8kg 정도로 진검과 비슷한 무게이며 손잡이로 갈수록 굵어져서 손목에 상당한 힘이 들어간다. 일반인은 손가락으로 감아쥘 수 없을 정도의 굵기로, 이 때문에 손목만으로 행하는 작은 기술을 하기 힘들다. 언제나 배에 힘을 주고 허리를 편 상황에서 온몸을 사용해서 휘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목검을 갖고 단순한 형을 큰 기합과 함께 수백 번 반복하는 사이 천연이심류 특유의 우직하고 강한 검풍이 양성되는 것이다. 오모테 카타는 5본으로 되어 있으며, 곤도 이사미는 '''검이란 기술보다는 기력'''이라고 자주 강조하였다 한다. 힘이 다 떨어질 정도로 극도의 긴장을 요구하는 진검 승부에서는 끈질긴 근성을 가진 사람이 유리하며, 이런 근성은 오모테 카타 같은, 단순하지만 강한 수련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모쿠로쿠(目錄) 단계까지 오모테 카타를 연마하고 난 다음에는 카게 카타 수련에 들어간다. 카게 카타는 오모테와는 다르게 일반 목검을 사용하며 세밀하고 실전적인 도법을 수련한다. 전부 7본이며, 정밀하고 예리한 형이다. 이외에도 상대의 검을 맨손으로 빼앗는 유술 3본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기술로는 비스듬한 정안의 자세인 평정안[4]의 자세와 카게 카타 7본의 용미검(龍尾劍)이 유명하다. 정안의 자세를 취한 상대에 팔상(八相)[5]의 자세로 접근하여 가사베기로 베어내리고, 이에 상대가 물러나면, 역가사베기로 베어올려서 상대가 검을 상단으로 올리게 한다. 그 사이에 머리를 쳐서 제압하는 기술이다. 이외에 먼거리에서 타돌하여 서로의 두꺼운 목검을 부딪혀서 근성과 상대의 힘을 받는 법을 기르게 하는 수련법도 유명한 편이다.
즉, 천연이심류는 기술보다는 검을 다루는 인간의 투쟁 본능을 키워주는 심신의 기본 만들기 작업에 비중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죽도와 호구를 사용하는 대련에서는 실력이 형편없었지만 진검을 사용하는 승부에서는 강했던 실전적 유파다.

3. 미디어


용과 같이 유신!에서는 천념이심류[6]로 등장하는데, 사실 정체는 미토텐구류를 이름만 바꾼 거였다.

4. 관련 문서



[1] 다마 지역은 에도와 가까우면서도 배타성이 강하고, 사람들이 무(武)를 좋아하는 호방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다마 지역은 옛부터 무사보다 부농이 이끄는 촌락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천연이심류의 제자들은 대체로 이런 부농의 자식들이었다. 무사의 품위가 배어나오는 에도의 신류들과 달리 천연이심류는 농민과 토지를 배경으로 자란 유파이며, 다마 지역 농민의 장남들은 거의 모두 이 유파에 속했다고 한다. 즉, 이 곳에선 검술이란 무사의 전유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곳은 한 다이묘에 소속된 번이 아니라 쇼군 직할령이어서 상민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은 쇼군의 직속 백성이라는 자부심이 강하였다. 농토를 기반으로 한 이들의 강직하고 소박한 지방 정서와 쇼군과 막부를 향한 충성심이 천연이심류를 에도 말기 일본 역사의 장으로 끌어내었다.[2] 幕末江戸三大道場. 북진일도류(北辰一刀流)의 현무관(玄武館), 신도무념류(神道無念流)의 연병관(練兵館), 경심명지류(鏡心明智流)의 사학관(士学館). 모두 막부 말기를 대표하는 명검객을 배출해 이름을 떨쳤다.[3] 다만 이런 이유로 문하생도 많고 도장도 상당히 넓게 퍼졌던 모양.[4] 비록 정안의 자세보다는 공수 연계가 유연하지 못하지만, 상대의 공격을 받아 흘리기 유리한 자세로, 천연이심류의 트레이드 마크로 유명하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에서 신센구미 대원이 비스듬한 자세로 상대의 칼을 받으면서 제압한 자세면 평정안의 자세를 표현한 것이다. 물론 평정안은 다른 유파에도 있는 자세다.[5] 검을 오른쪽 어깨 앞에 수직으로 올린 자세.[6] 그러할 연(然)을 일본어에서 발음이 동일한 생각할 념(念)으로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