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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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東旭 1917 ~ 2008
황해도 봉산군 출신으로 1941년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하고 1947년 대학선배인 설산 장덕수 선생의 주선으로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동아일보 편집국 조사부장, 논설위원, 이사, 주필 등을 지냈고, 부사장과 사장을 거쳐 1981년부터 1983년까지 동아일보 회장으로 재직했다. 이후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동아꿈나무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6.25전쟁 당시 서울에 남아 동아일보 전시 호외를 발행했던 몇몇 기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피난 갈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결국 피랍돼 압록강까지 끌려갔다가 극적으로 탈출해 복간호 제작에 참여했다. 1977년 사장에 취임한 뒤 주간 스포츠동아를 창간하고, 동아방송 지방국과 TV국 설치 허가를 요청하는 등 사세를 확장하기 위해 애썼다. 1980년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보안사령부 지하실에 끌려가 동아방송 포기각서에 서명을 강요당하며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이동욱은 냉정한 현실 진단과 앞을 내다보는 경제논설로도 유명했다. 특히 1997년 말 외환 위기를 경고한 칼럼은 화제를 모았다. 1983년 동아일보 회장에서 물러난 뒤 정계 산업계 등에서 여러 차례 자리를 제의받았지만 물리치고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며 여생을 보냈다. 1988년 대만 정부가 주는 국제교류상(International Communication Award)을, 2004년에는 서울언론인클럽이 주는 언론상 한길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미국자본주의론(1948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