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쿠라 도모미
무념 절치(切歯)[1]
가 끊이질 않는다.
이번 사건, 실제로 꿈인지 현실인지 어렵고, 어떤 숙연(宿緣)의 결과인지 조금도 납득할 수 없다
- 성격은 대체로 냉정, 침착하였으나 간혹 물불 안가릴 때가 있었다고 한다. 멘탈도 은근히 약한 편이라서 자주 삐지기도 했다고 한다.
- 이와쿠라 사절단으로 서구를 여행하면서, 철도에 크게 감명을 받았는지 귀국 후 일본 철도를 설립 하는데 크게 힘을 쓴다. 후에, 이 철도 노선은 JR히가시니혼으로 통합되어 오늘날까지 이용되고 있다.
- 이와쿠라 사절단으로 미국을 방문할 때까지, "일본인의 혼"이라고 주장하며 상투를 자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먼저 미국 유학 중이던 셋째 아들 이와쿠라 도모사다에게 설득당하여 시카고에서 잘랐다고 한다. 그래서 유신 시절 인사들을 기록한 그림을 보면 다른 이들은 서양식 군복이나 정장을 입는데 이와쿠라 혼자만 상투에 일본 전통 관복을 입고 있다.
- 의사에게 암 선고를 받은 최초의 일본인이다.
[1] 가만히 있어도 위아래 이가 서로 맞부딪치는, 그러니까 '''이가 부득부득 갈리는 상황'''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