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전신전화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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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NR (CCL BY-SA 2.1)
전기통신성 시절부터 민영화 직전인 1985년까지 사용했던 로고
1. 개요
2. 시작은 창대하리라
3. 덴덴은 무엇을 하였는가
3.1. 전화 사업
3.2. 데이터 통신 사업
3.3. 기타 전용사업
4. 역대 임원
4.1. 총재
4.2. 부총재
5. 덴덴의 멀티, 류큐덴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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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日本電信電話公社にほんでんしんでんわこうしゃ / Nippon Telegraph and Telephone Public Corporation: '''NTTPC'''
일본의 통신을 지배하고 있는 지배적 통신공기업이였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KT의 전신인 한국전기통신공사에 해당하는 공기업. 1985년에 민영화되어 NTT가 된다. 약칭은 '덴덴코샤'(電電公社, 전전공사)이다.[1] 전신은 전기통신성이다.

2. 시작은 창대하리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9년, 전기통신성이 발족하여[2] 전신전화의 확충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으나, 전신전화는 미래로 갈수록 수요는 더 늘어나는 사업이여서 기업적 효율성을 도입하기 위해 1952년, 그 이름도 찬란한 일본전신전화공사가 창설되게 된다.

3. 덴덴은 무엇을 하였는가


일본전신전화공사법 제 3조에 의거, 덴덴의 업무는 "공중 전기통신 업무 및 부대 업무" 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크게 전신, 전화의 보급 및 유지 관리로 요약 할 수 있다.

3.1. 전화 사업


1953년 이후 "전신전화 확충개량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실시하였다. 이 계획은 문자 그대로 전신(전보)와 전화의 보급을 위한 계획이였으며 1982년까지 6번에 걸쳐 시행되었다. 특기할 사항으로는 이미 5차 5개년 계획 전에 실시된 조사에 의하면 이미 수요 충족율이 91%를 달성했다는 것이다. 1969년 푸시폰(プッシュホン)이란 이름으로 버튼식 전화기를 도입했다.
다만 '''전화기 규격 자율화'''[3]는 1981년 '전화기 자급제'라는 이름으로 시행한 한국보다 훨씬 늦어서 민영화 직전에야 가능해졌다(위 CF)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구장창 시커먼 옛날 다이얼식 전화기나 투박하게 생긴 흰색 전화기만 나오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3.2. 데이터 통신 사업


1971년 공중전기통신법의 개정에 따라 전용 데이터 서비스[특정], 전용 통신 서비스[특정], 가입 데이터 서비스[불특정]를 하였다.

3.3. 기타 전용사업


고속 팩시밀리, 영상 전송 등 뭔가 '통신'과 관련되었다 싶으면 수요에 의해 사업을 하였다.

4. 역대 임원



4.1. 총재


  • 카지 타케시 (1952~1958)
  • 오오하시 하치조 (1958~1965)
  • 요네자와 시게루 (1965~1977)
  • 아키쿠사 토쿠지 (1977~1981)
  • 신도 히사시 (1981~1985)

4.2. 부총재


  • 우츠보 츠토무 (1952~1958)
  • 요코다 노부오 (1958~1962)
  • 요네자와 시게루 (1962~1965)
  • 아키쿠사 토쿠지 (1965~1977)
  • 키타하라 야스사다 (1977~1985)

5. 덴덴의 멀티, 류큐덴덴


류큐전신전화공사 항목 참조


[1] 한국의 KT가 '한국전기통신공사'→'한국통신'으로 중간에 바뀐것과 달리 일본은 공기업 시절 내내 덴덴코샤 통칭을 계속 유지했다.[2] 2차대전 패전 직후 체신성이란 이름으로 전화와 우편업무를 동시에 취급했으나, 얼마 안가 우정성과 전기통신성으로 분리되었다.[3]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이나 일본이나 개인이 직접 사는 형태가 아니라 전화국에서 규격으로 정해진 형태의 전화기를 '''임대해서''' 쓰는 방식이었다.[특정] A B 기업체의 수요에 의해[불특정] 다수의 수요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