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복

 

任福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둔기교위로 225년 6월에 이성군에서 병사 채방 등이 군을 점령하고 반란을 일으켜 서질을 살해하자 보병교위 단소와 함께 청주자사 왕릉과 협력해 토벌하고 평정했다.

1. 창작물에서


소설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조조가 여남의 황건적인 유벽을 평정할 때 허저와 함께 민병을 이끌어 조조에게 합류했으며, 조조가 장수를 공격하는 것에 종군했다. 조조가 장수군의 기습을 받고 도망치면서 단소, 조안민, 10여명의 병사들과 함께 조비, 조진을 보호하면서 빠져나가는데, 육수에서 장수가 추격하자 병사들을 모아 장수에게 맞서려다가 순식간에 병사 다섯이 죽고 단소는 창에 다리를 베여 깊게 패인 상처를 입었지만 장수가 조비, 조진 쪽에 신경을 써서 무사히 살 수 있었다.
조조가 조비, 조식의 임기응변을 시험하기 위해 두 사람의 수찰을 주어 밖으로 나갔다가 업의 성문을 지나가게 했는데, 성문의 문지기에게는 그 누구도 성문 밖으로 보내지 말라고 했다. 조식은 양수의 말을 듣고 승상의 명을 받들었다면서 문지기를 베고 지나갔는데, 조비는 그냥 돌아갔고 임복은 조비를 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비가 이를 눈치채고 무슨 내막이 있다고 여겨 임복에게 물었으며, 임복은 조조에게 입단속을 받은 터라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임복의 사촌누이가 조비의 아내라서 조비라는 연줄을 잡기 위해 위공께서 수찰까지 내려주셨는데 어찌하여 끝까지 성문을 나가지 않았냐고 했다. 조비가 내막을 알아채고 조조에게 사과하러 가려고 하자 위공께서 야심한 시각이니 모두 관저로 돌아가 쉬라면서 밤늦게 취침을 방해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