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익환(1881)
정운경이 의병을 일으키자 이규현(李圭顯)·강란수(姜蘭水)·강순희 등과 함께 가담하여 의병 모집 활동을 전개하여 단양, 제천, 영춘, 청풍 등지에서 400명을 모았다. 이후 의진의 부서를 정하고 전투 준비를 서둘렀지만, 원주 진위대의 습격으로 정운겸이 체포되는 바람에 해산되고 말았다. 그 후 1907년 7월 7일 이강년이 충북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여기에 가담하여 좌종사(坐從事)로 임명되어 활동하다가 충주성이 일본군에게 공략되자 후퇴한 이강년으로부터 충북 단양 경계를 사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이 명령을 받들어 단양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1908년 음력 6월 4일 충북 청풍의 까치성 전투에서 이강년이 중상을 입고 일본군에게 체포되면서 의병대가 해산되자 자택에 은거했다. 이후 세상과 인연을 끊고 지내다 1930년 2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장익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장익환은 1881년 5월 26일 경상북도 문경군 산북면 흑송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5년 충북 제천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장익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