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 폴록
Paul Jackson Pollock
1912년 1월 28일 - 1956년 8월 11일
1. 개요
잭슨 폴록 - 네이버캐스트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가장 유명한 예술가들 중 한사람. 무시당하며, 삼류라고 인식되던 미국 미술을 오늘날의 지위로 올리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1]
보통 '폴록'으로 더 많이 표기되지만 발음상으로는 '폴락'에 가깝다고 한다.
에드 해리스가 2001년에 잭슨 폴락에 대한 영화 '폴락'를 만들었다.(감독 겸 주연)
2. 생애
미국 중서부 와이오밍주의 농가에서 태어난 폴록은 가족과 함께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 등지로 옮겨 다녔다. 퇴학을 밥 먹듯 당했지만, 1930년에 뉴욕에 정착한 이후로는 미술 공부에 전념했다. 초기에는 표현주의적인 작품을 그렸지만 1930년대부터 추상화로 선회했다.
1947년 마루바닥에 편 화포 위에 공업용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드리핑' 기법을 창안해 하루 아침에 유명해졌다. 잭슨 폴록은 바닥에 천을 놓고 막대기에 물감을 묻힌 뒤에 흩뿌리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렇게 완성된 그림은 어떤 형체는 보이지 않고 마치 실타래가 엉킨 듯한 물감자국만이 남았다. 한스 나무스가 이 방식으로 작업하는 폴록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후대에 '액션 페인팅'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폴록의 작품이 회화의 기본(평면성, 비재현성)을 제대로 드러내 보인다며 극찬했다. 그린버그가 좋아한 회화는 입체적으로 보이지 않고 어떤 자연세계속 대상을 재현하지 않는 그림이었는데,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회화가 딱 여기에 들어맞았던 것.
그 작업방식 때문에 대부분의 작품들 크기가 굉장히 크다. 마침 고층빌딩이 많이 세워지면서 그 빈 벽에 걸 그림이 부족했던 미국 갑부들에게 폴록의 그림은 굉장히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2]
거칠고 파격적인 추상 회화를 통해 20세기 미술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지만, 그에 비례해서 부담감이 컸다고 한다. 후기에는 자기 스스로 작업방식에 매너리즘을 느껴 다시 표현주의로 회귀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선지 폴록은 알콜중독이었고, 44세의 젊은 나이에 애인과 친구들을 태우고 음주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3. 평가
현대미술하면 먼저 떠오르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의 '액션페인팅'[3] 은 흔히, 대중이 인식하는 현대미술(동시대미술)의 난해함을 비꼬거나 조롱하는 작품으로서 많이 활용된다(드리퍼 기법으로 진중권을 속인 장동민)[4]
그러나 현대에는 전혀 파격적으로 다가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당시에 매우 파격적이였다는 것이다. 시대적으로 와닿게 언급하자면, 대표적인 작품인 'No. 31'의 제작년도는 1950년이다. 6.25 전쟁 발발년도 이기도하며, 대한민국이 광복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시기이다. 게다가 그는1912년 출생이다. 21세기도 아니고 20세기 초반에 태어난 작가라는 말이다. 그 당시 액션페인팅 시도는, 누드화의 등장 만큼이나 파격적이었다.
당시 평단에서는 물감을 뚝뚝 떨어뜨리는 그림을 그린다며 잭슨에게 잭 더 드리퍼(Jack The Dripper)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발음이 비슷한 살인마 잭 더 리퍼처럼 지금까지의 미술을 죽여 버렸다는 의미에서 붙인 별명이기도 했다.
회화로서, '우연성'을 개입시켰으며, 새로운 형태의 회화라는 측면에서 당시에, 극찬을 받았다.
애초에, 모든 그림(및 예술작품들)에서 학교 수업시간에 배우듯 무조건 메시지를 찾으려 하면 안된다. 액션페인팅 말그대로 '액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잭슨 폴록이 그려낸 결과물보다, 그것을 흩뿌리며 그려낸 과정에서 더 매력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과물과 물질만을 예술로 인정 받았던 시기에서, 제작의 과정과 의도 역시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의의가 있으며, 개념미술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고 평가 받기도하며, 잭슨 폴록을 기점으로 미술의 시대를 나누는 학자도 존재한다.
[1] 당시 서구사회에서는 미국인을 예술도 모르는 졸부들이 즐비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미술사학적은 물론이거니와, 문화적으로도 오래된 전통을 가진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축적된 문화적 역량도 부족했을 것이다.[2] 당연히 당시 사람들에게도, 그럴 듯해보이기도, 의미심장해 보이기도 하기에, 인테리어 소재로 인기가 많았다.[3] 액션페인팅이라는 말은 작품명이 아니다. 오히려 일종의 회화장르로 인식하는 편이 편하다. 작품명은 딱히 없다고 하는 편이 옳다. No. 1 등 넘버링으로 제목이 지어졌다[4] 심지어 잭슨 폴락 자신조차 드리핑 기법에 회의를 느껴 표현주의 화가로 돌아갔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