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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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화가.
한지를 재료로 밀고 눌러서 완성하되,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 한지 그 자체를 회화 작품으로 낸 단색화 화가. '닥종이 화가'라고 불린다.
2. 생애
1927년 청주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순탄하게 컸다. 해방 후 새로 설립된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고 전쟁 중에 배출한 첫해 졸업생이 됐다. 졸업 후 ‘국전’을 통해 등단했고 서울예고에 재직하다 30대 젊은 나이에 모교인 서울대 미대 교수가 되어 정년퇴임까지 제자들을 키워냈다. 대학 졸업 후 그 시절 화가 거의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대한민국전람회’(國展·국전)에 출품했고 1953년에 ‘낙조’라는 그림으로, 이어 1955년 ‘공방’으로 특선을 받으며 화단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초기작은 학교에서 스승에게 물려받은 아카데미즘이 강했고 묘사력과 선이 중심을 이뤘다. 하지만 앵포르멜을 받아들이면서 작품은 점차 형체는 사라지고 거칠고 마른 질감의 화면 그 자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창섭은 서양의 유화기법을 동양의 수묵화처럼 사용하였다. 무심하게 먹 번지듯 펼쳐지던 정창섭의 화풍은 1980년대 한지를 만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작가의 1980년대 ‘닥’ 연작에는 '강렬한 선의 흔적', '접고 구긴 것 같은 주름'이 더욱 두드러진다. 누르스름한 닥종이 색은 볕 스미는 창호지 같고 온돌 뜨끈한 장판지 같으며, 손으로 매만진 흙담 같으면서도 가마솥에 구워낸 누룽지 같기도 하여 정겹다. 그렇게 닥종이를 통해 스스로를 확인하고서야 정창섭은 1984년, 그의 나이는 쉰 여덟에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그는 사각의 엄격한 면 분할과 재료의 질감이 만들어내는 조형적 긴장감, 그리고 단일한 금욕적 색채로 대변되는 그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심화시켰다. 이렇게 추상이라는 서구의 조형원리에 전통적인 미의식을 조화시키려 한 정창섭의 작품은 한국적인 추상회화의 의미 있는 결과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