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학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학원'''
'''鄭鶴源'''

<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94년
충청도 면천군 합북면 운곡리
(현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운산리)
<color=#fff> '''사망'''
1933년 10월 7일
충청남도 당진군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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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공산주의자. 한국의 항일운동가.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정학원은 1894년생이며 충청도 면천군 합북면 운곡리(현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운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5년 공주농업학교(현 공주대학교 산업과학대학)를 졸업한 후 미곡상으로 일했고, 사립보통학교 교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던 1924년 3월 당진소작조합(唐津小作組合)에 가담하여 상무이사가 되었다.
1924년 4월 당진소작조합 대표 자격으로 서울에서 개최된 조선노농총동맹(朝鮮勞農總同盟) 발기회에 참가해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조선노농총동맹은 최소임금 보장, 1일 8시간 노동, 소작료 인하 등을 위해 기관지를 발행할 것을 결정하였다. 충남 당진은 물론 서울, 경기 지역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 가던 정학원은 일경에 붙잡혔지만 불기소로 석방되었다.
1925년 8월 경기도청년연합회(京畿道靑年聯合會) 발기준비회에 참여하며 청년운동을 전개하고 1927년 조선농민총동맹(朝鮮農民總同盟)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고, 그해 12월에는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1928년 조선공산당 충남북도당 간부를 맡은 정학원은 평양에서 일경에 붙잡혔고,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등을 빌미로 징역 2년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1년 12월 충남에서 조선공산당재건공작위원회(朝鮮共産黨再建工作委員會) 등을 조직하여 활동하던 중 또다시 일경에 붙잡혔다.
예심과정 중 옥중에서 중병을 얻은 그는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1933년 10월 7일 끝내 사망했다.

3. 기타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정학원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