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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繰綿機
Cotton gin
목화솜에서 씨앗을 분리하는 기계이다. 1793년 일라이 휘트니가 고안한 것이 현대적인 조면기의 시작이다. 이전까지는 직접 밀대로 미는 원시적인 방식으로 씨앗을 빼내야 했지만, 휘트니의 조면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작업 효율이 수백배 가까이 올라갔다. 초창기의 조면기 한 대로 400명분의 작업량을 해치울 수 있었고, 점차 개선되면서 1000명분의 작업량을 능가할 정도였다.
이것이 발명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목화 플랜테이션은 노동력을 너무나 많이 필요로 했기 때문에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였다. 목화 농장이 많은 남부에서 북부보다 먼저 노예제 철폐를 주장하기도 했을 정도. 하지만 필요 노동력이 획기적으로 줄어들면서 목화 농장주들은 큰 이익을 보게 되었다. 때문에 1793년 당시 6만 킬로그램에 불과했던 목화 생산량이 남북전쟁 발발 직전인 1860년에는 8,260만 킬로그램에 달하게 되었다. 늘어난 생산량만큼 노동력 수요도 크게 늘어서 흑인 노예의 수도 65만명에서 400만명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남북전쟁에도 간접적으로 원인을 제공하게 된 셈.[출처] 정작 개발자인 휘트니는 노예제 자체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고. 그리고 휘트니는 이 조면기 사업에선 크게 성공하지 못했는데, 특허권을 무효화하고 멋대로 기계를 표절하기 위해 노예주들이 내건 소송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출처] 이재규, <역사에서 경영을 만나다>,사과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