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교
左校
(? ~ 193?)
죄수의 노역장을 뜻한다고 한다, 황룡(黃龍), 평한(平漢) 등과 함께 병사를 일으켰다. 큰 자는 무리가 2. 3만에 작은 자도 무리가 수천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독자적인 세력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원소에게 토벌 당한다. 기록으로 보았을 때 좌자장팔과 비슷한 시기에 털린 듯 하다.
소설 삼국지 원굉전에서는 아하소과와 같이 황룡과 묶여 황룡좌교(黃龍左校)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남로군의 사령관으로 이시점에는 이미 사망한 동로군의 유석과는 앙숙지간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유석의 참패 소식을 들을 때 마다 크게 비웃었다고 한다.
유석이 죽자 황룡좌교는 원가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업 공략을 나섰는데 유석의 휘하에서 살아돌아온 두령들이 이런 황룡좌교를 말렸다. 한 두령이 원굉과 싸우려는 황룡좌교를 말리며 말하니
황룡좌교는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두령을 보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황룡좌교는 화를 내며 두령에게 창대로 찍혔다. 그러자 다른 두령들이 침묵하자 황룡좌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황룡좌교는 출정하여 원굉과 전투를 벌였는데 결국 패하여 격퇴 당했다.
(? ~ 193?)
1. 개요
죄수의 노역장을 뜻한다고 한다, 황룡(黃龍), 평한(平漢) 등과 함께 병사를 일으켰다. 큰 자는 무리가 2. 3만에 작은 자도 무리가 수천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독자적인 세력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원소에게 토벌 당한다. 기록으로 보았을 때 좌자장팔과 비슷한 시기에 털린 듯 하다.
2. 창작물에서
소설 삼국지 원굉전에서는 아하소과와 같이 황룡과 묶여 황룡좌교(黃龍左校)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남로군의 사령관으로 이시점에는 이미 사망한 동로군의 유석과는 앙숙지간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유석의 참패 소식을 들을 때 마다 크게 비웃었다고 한다.
유석이 죽자 황룡좌교는 원가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업 공략을 나섰는데 유석의 휘하에서 살아돌아온 두령들이 이런 황룡좌교를 말렸다. 한 두령이 원굉과 싸우려는 황룡좌교를 말리며 말하니
황룡좌교가 다시 묻자 두령들은 이렇게 말했다.원굉은 평범한 자가 아닙니다. 비록 유석 같은 놈이 총지휘를 했다지만, 열 배가 넘는 아군을 상대로도 승리를 거둔 인물입니다. 게다가 그의 밑에는 장합이나 곽원 같은 용장들이 즐비한 바, 결코 가볍게 칼을 맞대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을 들은 황룡좌교는 도적들을 불러들여 성문을 굳게 닫아 농성하니 원굉은 이에 감탄했다. 허나 원굉은 이를 대퍼해 황룡좌교와 남로군 사령부 두령들을 당황하게 했고 황룡좌교는 화가 치밀어 버럭 소리를 질렀고 두령 한 명이 이를 말리자 창대를 휘둘러 두령은 넘어 뜨렸다.보루를 단단히 하고 성벽 뒤에 몸을 숨기고 있으면 됩니다. 어차피 수확은 끝났고, 병주의 겨울은 매섭습니다. 굳게 지킬 뿐 나가 싸우지 않으면 한 달을 못 가 적은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황룡좌교는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두령을 보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황룡좌교는 화를 내며 두령에게 창대로 찍혔다. 그러자 다른 두령들이 침묵하자 황룡좌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황룡좌교는 출정하여 원굉과 전투를 벌였는데 결국 패하여 격퇴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