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원

 

1. 중국 삼국시대의 인물
1.1. 개요
1.2. 정사
1.3. 미디어 믹스
2. 고려의 인물


1. 중국 삼국시대의 인물



1.1. 개요


郭援 (? ~ 202년)
후한 말의 군벌인 원상의 장수로 종요의 외조카.
경력과 출신지나 자도 불명이지만 종요도 영천군 출신이고 영천에 곽씨가 꽤 많았기에[1] 곽원 역시 영천군 출신으로 추측하는 경우도 있다.

1.2. 정사


202년 6월에 원소가 죽고 원상이 그 지위를 승계하자 원소의 조카였던 청주자사 원담[2]은 이에 반발하여 군사를 이끌고 여양에 주둔하고 거기장군을 자칭하며 원상과 대립하나, 이를 틈탄 조조는 대군을 일으켜 원담이 있던 여양을 공격한다.
원상은 원담과의 분쟁을 멈추고 직접 원담을 구원하여 여양을 방어하는 한편, 곽원을 하동태수로 임명하고 관서 지역으로 파견하여 조조 세력권의 측면을 공격했으며 사촌형인 병주목 고간에게 이를 지원하게 한다.
원상의 관서 공격은 나름대로 공들여 준비한 전략인지 먼저 남흉노의 선우 호주천을 부추겨 조조를 공격하게 했고 호주천은 평양현을 점거하고 사례교위 종요의 주력병력을 묶어두었고 이 사이 곽원과 고간은 인근의 군현들을 공략해 모두 함락시키며 하동으로 향해 그 위세가 관서 전체를 진동시켰다고 한다.[3]
또한 마등을 비롯한 관서의 군벌들도 원상과 밀약을 맺어 공조하고 있었기에 이는 심대한 위협이 되었다. 종요가 아직 호주천을 격파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에서 곽원이 평양 인근까지 당도하자 그 전력은 매우 강해졌고 장수들은 모두 두려워해 하동을 버리고 도망치자고 진언했으나 종요는 여기서 약하게 보인다면 관서의 제장들이 모두 원상에게 돌아설 것이라 하여 거부하였다.
한편 곽원은 하동에 도착하자마자 분수[4]를 도하하여 종요를 공격하려 했으나 이때 마등이 장기의 설득에 따라 원상과의 연합을 파기하고 조조에게 돌아섰으며 장남인 마초에게 1만의 군대를 주어 종요를 지원했기에 상황이 반전된다.
결국 강을 채 반도 건너기 전에 마초군의 공격을 받는다. 당시 대장이었던 마초가 화살을 맞아 부상을 당하고도 선진에서 독려했던 상황을 봤을때 곽원의 반격은 상당히 격렬했던 것으로 보이나 결국 곽원군은 철저히 궤멸되었으며 곽원 본인은 난전중 마초의 부장이었던 방덕과 싸우다 전사한다.
이때 방덕은 자신이 죽인 자가 장수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설마 곽원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머리를 잘라 화살통에 넣어두었다. 전투가 끝나고 종요가 곽원의 생사를 확인하자 곽원이 죽는 것은 봤으나 수급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제보가 계속 들어왔고, 나중에 방덕이 곽원의 머리를 꺼내자 종요는 이를 보고는 곽원임을 밝히고 자신의 조카라며 통곡하였다. 미안해진 방덕이 종요에게 사죄하자 종요는 "나는 조카가 죽어 슬프지만 한편으론 나라의 적일 뿐이니 사죄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고인드립은 아니고 공과 사를 구분한 것.
곽원군의 전멸에 따라 평양에 고립되어 있던 호주천은 조조에게 투항했다. 고간은 이미 그 지위상 곽원의 지휘를 받을 레벨이 아닌 데다 곽원과 같이 도하한 것으로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별군을 따로 운용한 것으로 보이나 정확히 어떤 역할이었는지는 불분명하며 곽원군의 전멸을 알자 그대로 달아났다고 한다. 한편 별군을 보내 조조의 측면을 공격하는 원상의 전략은 실패했지만 장장 6개월 이상에 걸친 길고 긴 대치끝에 본대싸움에서 조조를 격파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직후 원담의 공격을 받았다.(...)
곽원의 삼촌인 종요는 곽원을 천성이 괴팍하며 호승심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상당한 전투와 행군을 거쳐 하동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도하작전을 펼쳤던 것으로 봤을때 상당히 급하고 저돌적인 성격이었던 모양.. 가규전에는 가규가 곽원에게 붙잡히자 곽원이 직접 그를 회유했으나 통하지 않자 대노하여 무기를 잡고 가규를 죽이려는 모습까지 보인다. 물론 곽원의 측근들이 만류해서 가두는 데에 그쳤지만 이런 일화를 봐도 매우 다혈질적이고 어딘가 비뚤어진 성질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성격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곽원의 맹공은 조조 세력을 뒤흔들만한 기세가 있었고 실제로 마등의 이탈과 마초의 참전으로 인한 곽원 격파가 아니었으면 조조는 사례, 관서 방면 측방에서 큰 위기에 처했을 것이다. 심배가 원담에게 쓴 편지에서도 곽원에 대해 잠깐 언급하는데 이 시점에서 곽원은 이미 고인이었지만 심배는 곽원을 자군의 명장으로 평가하고 있다.
곽원은 원상의 집권 직후에 전투에 패하고 죽었으니 명장으로 평가받을 정도의 활약이 있었다면 분명 원소 시절이었을 것이고 마초에게 꺾이긴 했으나 하동 공격의 포스만 놓고보면 같이 원소의 명장으로 평가받았으나 관도에서 연진, 백마에서 나오자마자 사망한 안량, 문추보다 훨씬 화려한 전적이다. 이는 그만큼 하북에서 원소가 가지고 있던 명장이라고 불리는 인재풀이나 그들의 알려지지 않은 실제 실력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3.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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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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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3 PK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쭉 등장이 없었으나 삼국지 11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일러스트가 상당히 휴고스럽게 나왔다(...) 종요와의 관계는 일절 언급되지 않고 혈연관계도 설정되지 않았을 뿐더러 나이까지 비슷하게 나와서 삼덕들에겐 자주 욕을 먹었다. 하지만 애초 연의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라 압박스러운 일러스트만 종종 회자될 뿐 별 인지도가 없다.
삼국지 12에서는 짤렸다가 삼국지 13 PK에서 재등장했다. 삼국지 11 시절과 비슷하면서도 기존의 휴고스러운 이미지는 버리고 전형적인 맹장 스타일로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러스트가 도검을 들고 맞서려는 모습을 하고 있다. 능력치는 맹장과 거리가 좀 있지만. 능력치는 통솔력 66/무력 73/지력 36/정치력 33으로 특기는 훈련 1, 분전 3, 일기 1이고 전수특기는 분전이다. 그냥 C급 무장 수준이지만 그 대신 전법이 같은 세력의 S급 무장인 '''문추''', '''장합''', 또 다른 S급 무장인 위연도 보유하고 있는 '''불굴강장'''이다. 그래서 실제 역사속 포지션대로 문추, 장합을 대신하는 역할 정도로 그냥저냥 굴릴 만하다. 거기다 기병적성은 A급이다. 원소 세력에서 특히 통솔력이 높은 편인 안량이나 장합이 중신특성으로 기마조련을 갖고 있어서 이들이 군무중신으로 있으면 기병적성 S급까지도 나올 수 있다. 낮은 지력이 발목을 잡지만 좋은 전법과 높은 기병 적성으로 부장(문관계열) 만 적당히 채워주면 1인분 이상을 할 수 있는 무장이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6, 무력 73, 지력 36, 정치 33, 매력 45이며 개성은 맹자, 저돌, 경솔, 주의는 아도, 정책은 추행강화 Lv 3, 진형은 봉시, 추행, 전법은 급습, 교란, 친애무장은 고간, 혐오무장은 없다.
창천항로에서는 엑스트라. 마초방덕이 나란히 말을 달리면서 서로 얘기하는 동안 마초의 손에 목덜미가 붙들려 겁에 질린 채 끌려다니는 아주 비참한 역으로 나왔다. 체구도 왜소하고 찌질하게 생겼다. 마초가 방덕에게 전공 좀 세우라고 하자 방덕이 감사히 받겠다며 그대로 곽원의 머리를 자른다. 안습....
하지만 삼국지연의에 따른 인식으론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은 마초가 조조군의 인기 무장들과 힘을 합쳐 적을 격파한다는 소재가 꽤 자극적이라 그런지 삼국전투기와 화봉요원 등에서는 분수 전투에 상당한 비중을 할애하고 있고, 여기서는 곽원도 용장에 가깝게 그려진다.
화봉요원에서는 군사들을 이끌고 허현 방향으로 향하다가 양무 본진이 불에 탔다는 정보를 전해듣자 군사들에게 관도에서 대승을 거둬 조조가 목숨을 잃었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연진으로 회군을 지시한다.
장현을 공격하러 가서 병사들이 저항 없이 투항해 무혈입성을 했으며, 예전부터 원소 사후부터 종요에게 여러 차례 투항을 권고받는 서신을 받다가 곽원은 투항할 마음이 없음에도 종요에게 거짓으로 항복할 마음이 있는 편지를 계속 주고 받았다고 한다.
곽원은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이득이 오도록 행동한 것으로 만약 불리하다면 여태껏 한 행동은 조조에게 이득이 되도록 일한 것처럼 보여서 전쟁에서 승리하면 그 공로를 가지려 했는데, 사마의는 이를 간파해 마등에게 장기를 보내 계략을 봉쇄했다. 결국 사마의를 통해 장왕이 보낸 선박을 지원받아 낙양으로 향하다가 배 안에서 방덕에게 죽는다.
삼국전투기에서의 등장은 최유기의 사오정. 외삼촌이 현장 삼장으로 패러디된 종요이기 때문인 듯하다. 창정 전투 (3)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면서 선행 등장했다. 원본이 원본이라서인지 간간이 호색한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 특징.
평양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심배의 명을 받아 고간과 함께 대군을 이끌고 북서쪽 방면인 평양-하동 방면으로 진군했다. 고간과 더불어 나름 안량-문추, 장합-고람을 잇는 3세대 에이스들로 언급되면서 압도적인 군세로 저항세력을 싸그리 밀어버리며 진군을 이어간 것으로 묘사된다. 가규가 강현과 피씨현에 거점을 잡고 곽원군의 발목을 잡아 살짝 시간을 잡아먹게 됐지만, 워낙 기본적인 병력 차가 압도적이라 나름대로 선전했음에도 가규군을 압도적으로 털어버리는 데 성공하고 가규를 생포했다. 이후 가규를 회유해 보려 했지만, 가규가 곽원군을 도적단이라 부르면서 협력을 거절하자 분노해서 가규를 죽이려 하지만, 모사 축오가 가규를 죽이면 그의 부하들이 들고일어날 것이고, 어차피 몇 개월만 지나면 잊혀질 것이니 그 동안 잠깐 유배만 시키자고 주장하여 가규를 호관으로 압송해 보냈다.
아무튼 그렇게 강현과 피씨현을 완전히 점령한 뒤 곽원은 평양을 향해 진군했으며 평양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작은 강인 분수를 건너고 있었는데, 부하인 축오가 강을 건너는 동안 기습을 받으면 위험하리라 말하지만 그럴 때를 대비해 흉노를 불러서 견제하게 한 거라고 말하면서 축오를 안심시킨다.
그러나 강을 건넌 직후 곽원군을 맞이한 건 다름아닌 마초였고[5], 마초가 축오를 일격에 순살시키는 것을 본 뒤 자신들이 감히 누군 줄 아냐며 분노해서 마초에게 덤벼들지만, 그 직후 방덕에게 1합만에 썰려서 죽게 되었다. 사후 그의 목은 방덕에 의해 종요에게 전달됐다.
다만 분수 전투를 저렇게 공들여 그리고서 정작 본 매치인 여양 전투 + 조조의 하북원정은 생략했기에 원빠들은 분노하였다.

2. 고려의 인물


(郭元, ? ~ 1029년)
벼슬은 참지정사(參知政事)에 까지 올랐고 본관은 청주이다. 성종 때 입사 하였으며 현종까지 양대에 걸쳐 조정에 있었다. 대요 강경파였으며 송나라와 연합하려 하였다. 발해부흥운동의 하나인 대연림흥료국요나라 땅에서 일어나서 원병을 요청하자 곽원은 이렇게 말했다.

'''"압강(鴨江)의 동쪽 땅을 거란이 차지해 막고 있습니다. 지금 가히 기회를 타 취해와야 합니다."'''

그리고 독단적으로 군사를 이끌고 출병하였으나 요나라에서 보낸 발해태보(渤海太保) 하행미(夏行美)에게 막혀 실패하였다. 이후 수치심에 화병을 얻어 얼마안가 등창이나서 분사(憤死)한다.

[1] 곽도, 곽가 등이 영천 출신이다.[2] 원래는 원소의 장남이었지만 방자한 성격으로 원소의 미움을 산 데다 원상의 총애가 맞물렸기에 이복형 원기의 양자로 입적시키는 형태로 폐출되어 후계구도에서 제명되었다.[3] 가규도 이때 포로로 붙잡혔었다.[4] 황하의 지류이다.[5] 곽원이 말한 대로 흉노는 종요의 견제를 잘 하고 있었으나, 장기가 원상과 맹약을 맺었던 마등을 회유해버리면서 종요가 마등의 지원을 받게 되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