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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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 1714년 6월 6일 ~ 1777년 2월 24일(만 62세)
재위기간 : 1750년 7월 31일 ~ 1777년 2월 24일
주제 1세는 포르투갈의 주앙 5세와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안나의 셋째 아이었다. 주제 1세에게는 2살에 죽은 형 페드루와 누나 한 명, 남동생 3명이 있었다. 형이 숨을 거둔 1714년 10월 29일, 주제 1세는 포르투갈의 왕위계승자에게 주어지는 브라질 공(Príncipe do Brasil) 겸 브라간사 공작이 되었다. 1729년 1월 19일, 주제 1세는 펠리페 5세의 딸 마리아나 빅토리아 드 보르본과 결혼했다. 주제 1세는 마리아나와의 사이에서 7명을 낳았는데 그 중 3명은 사산되었고 4명의 딸이 생존했다. 1750년 7월 31일, 주제 1세는 아버지 주앙 5세가 사망하면서 포르투갈의 국왕이 되었다. 그는 맏딸 마리아 프란치스카를 왕가의 공식 상속녀이자 브라질의 공주라고 선포했다.
1755년 11월 1일 리스본 대지진이 발발해 약 10만 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주제 1세는 그가 가장 신뢰하는 세바스티앙 호세 데 카르발류에게 사태의 해결을 위한 전권을 맡겼다. 카르발류는 자신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달성해 리스본의 재건이 빠른 속도로 재건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지진 대비를 위한 재난 대책도 충실하게 집행되었다. 그러나 주제 1세는 대지진 이후 심각한 폐소공포증에 시달려 벽으로 둘러싸인 건물 안에서 생활하는 걸 극도로 기피하고 왕궁에서 벗어나 아주다 언덕에서 텐트를 치고 사는 걸 선호했다.
1758년 9월 3일, 주제 1세와 카르발류를 살해하기 위한 귀족들의 음모가 발각되었다. 이에 주제 1세는 타보라 가문을 추방하고 예수회 활동을 금지했으며 교회 부지를 모조리 몰수했다. 이후 7년 전쟁 시기인 1762년, 스페인이 포르투갈을 공격했다. 포르투갈은 영국으로부터 군대를 지원받았고 스페인은 프랑스의 지원을 받았다. 다만 양국의 전쟁은 국경 지대에서 소규모 접전을 치르는 정도로 그쳤고, 그나마도 1763년 2월에 파리 조약이 체결되면서 싱겁게 끝났다.
1777년 2월 24일, 주제 1세는 리스본에서 붕어했다. 향년 63세. 슬하에 아들이 없이 죽어서 딸 마리아 1세와 '''동생이자 사위인''' 페드루 3세가 포르투갈의 공동 국왕으로 즉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