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전술기지

 


1. 개요
2. 특징
3. 장점
4. 단점
5. 대중매체에서의 중대전술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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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대전술기지(中隊戰術基地: Company Tactical Base)'''

국군은 베트남 전에서 기본 전술 단위 부대인 대대보다 작은 중대 단위로 진지를 구축하는 중대전술기지 개념을 발전시켰다. 6.25 전쟁 기간 동안 국군 최초의 유격 부대인 백골병단을 지휘하며 풍부한 게릴라전 경험을 쌓은 채명신 장군은 게릴라전에서는 중대 단위 작전 수행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세부적인 기지 설계안을 마련하였다. 지름 150 ~ 300m 크기의 원형 구조 중심에는 관망대와 헬기장이 배치되었고, 외곽에는 철조망을 설치하였다. 철조망 안쪽에는 산병호와 공용화기 진지를 구축하였고, 이들은 교통호를 통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철조망 바깥쪽에는 지뢰 지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러한 구조의 중대전술기지는 사주 방어 (앞뒤 좌우 360도 방향에서 방어)가 가능하였다. 중대 전술기지는 최소 3일 분량의 식량과 탄약을 비축할 수 있었고, 아군 포병의 지원 사정권 안에 진지를 구축해 화력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으므로 적 연대 규모의 공격에도 48시간 이상 버틸 수 있었다.

''전쟁기념관 공식 설명문''

대한민국 국군이 베트남전 당시 운용한 야전 축성 및 장악 교리로써 채명신 장군이 고안하여 도입한 것이다.
개개의 중대 전술기지 자체는 보방식 요새와 별반 다를 게 없으며, 그저 성벽 대신 참호와 철조망을 깔아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나마 유의미한 차이점이라고는, 요새포 대신 기관총과 박격포가 사용되는 정도? 그나마도 결국 별 모양을 한 것으로 유명한 보방식 요새의 기본 설계 사상인, 공격자가 사방에서 두들겨 맞게 만드는 구조에 기반한 것이므로, 결국 중대 전술기지 자체는 그냥 현대화된 보방식 요새이다. 실제로 이것 때문에 미군은 중대 전술기지 개념을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였다.
물론 보방식 설계의 핵심적인 장점은 여전해서, 깡으로 중대전술기지를 밀려고 하면 지옥을 맛보게 된다. 또한 미군의 우려대로, 요새란 게 늘 그렇듯이, 빼앗길 경우 '''답이 없다.''' 특히 상대가 이 중대 전술기지를 단순히 뺏어 쓰는 게 아니라 시설과 교리를 이해하고 활용하기 시작한다면 정말로 괴로워진다. 대표적인 예시가, 짜빈동 전투를 역으로 돌려받은 꼴인, 안케패스의 638 고지 전투이다. 베트남전을 넘어, 국군 역사상 최악의 졸전으로 꼽히는 전투로, 이전에 안케패스의 638 고지에서 철수하면서, 거기에 설치했던 중대전술기지를 제대로 철거하지 않고 버려둔 것이 치명타로 작용했다. 월맹군은 중대전술기지 교리의 원리를 상당히 잘 파악하고, 안케패스의 638 고지에 방치된 중대전술기지를 역으로 써먹었는데, 이것이 중대 단위 작전에서 무려 '''사단"들"'''이 갈려나가는 단위로 확대되는 참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중대전술기지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며, '''교리''' 단위의 개념이다.
운영 당시 기지는 2중으로 구성되며, 2개 소대는 기지의 외곽(바깥쪽 원)에 배치되고 1개 소대는 기지의 내곽(안쪽 원)에 배치하였으며, 경우에 따라 3개 소대를 모두 외곽에 배치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 내곽은 중대본부 요원이나 화기소대 요원들이 담당하였다.

2. 특징


중대전술기지 개념의 1차적 성공은 완벽한 경계로 적이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는 것이고, 2차적 성공은 기지를 중심으로 대민지원 및 민사심리전을 전개하여 책임지역 내 양민과 베트콩을 분리시키는 한편, 베트콩을 섬멸 후 지역 평정을 완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경계와 함께 대민지원을 통한 민사심리전을 전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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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신, <베트남전쟁과 나>, 팔복원, pp 202~203

사단의 중대전술기지는 이러한 적정의 광활한 지역에 적절히 배치되어 있었으므로, 적과 아군의 관계가 전선과 후방, 적측과 아군 지역이 따로 분리되지 않고 상호 얽혀, 적 지역과 아군 지역을 명확히 구분하는 그런 전장 배치가 아니다.

따라서 중대전술기지 어느 방향에서 적이 기습할지 모르기 때문에 맹호 장병은 전면 방어 형태를 24시간 계속 유지해야 했다.

중대전술기지 개념은 우리만의 독특한 것으로, 미군이나 월남군에게는 매우 생소하여, 한국군의 중대전술기지가 언젠가는 적에게 유린될 것이라는 우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까지 최소 대대단위는 되어야 적의 공격에 버틸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인데, 내 고집 하나로 중대단위로 분산해서 배치했으니 한국군이 언젠가는 크게 다칠 것이라는 위험천만한 일로 외국인의 눈에 비쳤던 것이다. 나는 6.25 전쟁을 통해서 적지에 들어가 게릴라전을 전개했으므로 거기에서 얻은 경험에 의거, 중대가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모든 중대전술기지가 사단 포병화력의 지원사격 거리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 확인은 더 굳어졌었다. 간혹 보병대대가 지원 거리밖에 배치되었던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경우는 1개 포대의 포병과 4.2인치 중박격포 소대로 묶은 직접 지원 화력으로 감당하게 하였다.

그렇게 포병화력을 운용함에 따라 사단 전술 책임지역 어느 중대전술기지도 포병 지원 사격권 밖에 버려두는 경우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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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신, <베트남전쟁과 나>, 팔복원, pp 267~268

중대 전술기지는 진정한 의미의 요새 (Fortress)가 아니며, 그저 평범한 야전 축성물에 불과하다. 굉장히 공들여서 만들어야 하는 물건이긴 해도. 어쨌든 중대 전술기지는 절대로 Fort로 분류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철조망이랑 야삽 가지고, 공격자가 공격을 포기하고 싶을 수준의 강력한 요새를 구축하라 하면, 어느 나라를 가든지 반드시 보방식 요새 형태를 띠게 되어있고, 중대 전술기지도 개개의 기지 자체는 보방식 설계의 일종이다. 하지만, 중대 전술 기지는 진짜로 요새로 쓰라고 나온 물건이 아니며, 이건 앞서 강조했듯 '''교리'''다.
중대 전술기지 "교리"의 핵심은 매우 간단명료하다. "섹터" 단위로 전역을 나누고, 그 "섹터"에서 적이 활동할 수 없게 방해물을 깔아놓는 것이다. 이것은 게릴라전 세력이 현지 주민과 협력해야만 유지될 수 있는 것을 노려, 이 협력 관계의 성립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자는 발상에서 나온 개념이다.
하지만, 특정 목표물을 아예 뚫지 못하게끔 틀어막는 개념인 요새(Fortress)와 달리, 중대 전술기지의 기능은 오히려 고대 로마의 Lime에 가깝다. 하지만, 그런 Lime과도 다르게, 중대 전술기지는 '''선방어 교리가 아니다.'''
물론 고대 로마도, 이름부터가 limit인, Lime을 국경선에 늘어놓고 선방어 교리로 쓴 게 멍청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때는 정말 그것 말고는 적이 종심으로 들어오는 것을 늦출 방법이 없었고, limetes와 commentatus로 조기 대응 체계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로마 제국의 서부가 싹 날아가고, 동부마저도 어지간한 제국은 그냥 사라질 수준의 여러 위기를 겪으며 박살이 나고 난 이후에는, 좀 더 적을 진짜 "종심"안으로 들어오게 허용하는 형태로 교리를 바꿀 수밖에 없었고 [1] 이건 나중에는 테마 제도로 정립되게 된다.
기본적으로 고대 로마의 lime과 다를 게 없는 중대전술기지가 lime과는 다르게 작동할 수 있는 것은, 현대전에는 '''포병/공군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보방식 요새와 중대 전술기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요새포가 외부(!)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고대 로마의 lime과 테마로 돌아가 보면, 결국 중대 전술기지는 과거의 '''기병'''의 역할(공중강습과 근접항공지원)[2]과 보방식 설계의 "요새포" 역할을 '''외주'''로 때운 축성물이다.
물론 기병 역할을 진짜로 기병에 대응할 수 있을 리가 없는 포병과 항공지원으로 때운 것은, 당시 전장 상황상, 병력 규모의 한계로 인해, 중대 전술기지들의 간격이 너무 넓어서 제대로 상호 지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길이의 전선을 봐도, 휴전선에 박힌 사단 수랑 베트남전에 쓰인 사단 수랑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중대 전술 기지 교리는, 오랜 과거의 lime이나 테마 같은 교리와도 다르게, "보방식 요새처럼 더럽게 단단한" 야전 축성물에 기반하게 된 것이다. 각 주둔 부대당 간격이 너무 넓기 때문에, 중대 전술기지는 48시간 동안 적의 전면적 공세를 버틸 수 있게끔 축성되어야 했다. 하지만 중대 전술기지는 진짜 "요새"는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기지가 터지기 전에 증원을 받아야 한다.''' 또한, 48시간을 버티는 것도 앞서 설명한 대로 "외부 화력 지원"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이것 때문에 외부 화력지원은 과거의 기병과 요새포 역할을 같이 담당하는 중대한 요소이다.

3. 장점


일단 "교리"를 제대로 적용하거나 말거나, 그 자체로도 이미 보방식 설계란 시점에서 답이 안 나오는 끔찍한 야전 방어시설이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수비 측이 작정하고 축성하면 중대 전술기지랑 비슷한 보방식 축성물이 나오고, 이걸 뚫으려면 미군처럼 "공군!"을 외치거나 작정하고 포병을 끌고 와서 기지 째로 날려버리는 것 말곤 답이 없는데, 하물며 그 미군이 상대의 공군과 대규모 포병을 억제해주는 상황이라면 도저히 견적이 나오지 않는다.
또한, "교리"로써 중대 전술기지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중대 전술기지 교리는, 각각의 야전 축성물들이 아군의 상황이 개선되어 증원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자체적 내구성을 갖추고, 그 내구성을 보장하기 위해 요새포 역할을 외부에서 담당하여 지원하고, 궁극적으로는 증원을 통해 적이 공세를 포기하게 만드는, 매우 정석적인 방어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중대 전술기지 교리를 통해 통제되는 지역은 손 쓸 방법이 없으며, 상대가 깔아놓은 중대 전술기지들을 '''탈취'''하여 역으로 빅엿을 선사하는 것 말곤 답이 없다. 강대국 군대라면 막강한 화력으로 기지 전체를 지워버리거나 아니면 엄청난 기동력으로 우회해서 대처하겠지만, '중대' 전술기지 따위에 대처하려고 그런 자원을 투자하는 것 자체가 낭비다.

4. 단점


'''교리'''인 만큼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전장의 쓰레기다. 미군이 우려한 상황이 그대로 벌여지며 서로마 멸망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짜로 "요새"로 쓸려고 만든 게 아니더라도, 그 내구성이 "요새"에 준하는 만큼, '''빼앗기는 순간 헬게이트가 개방된다.'''
개별 기지만 빼앗긴 경우라도, 보방식 설계가 어디 가진 않는다. 정말 괴롭다. 이거 다시 되찾으려면 정말 고통을 받게 된다. 그리고 안케 페스의 사례처럼, 적이 아예 중대 전술기지 "교리" 자체를 모방하는 상황이 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안케 페스 전투라는 참사가 제대로 보여준 바가 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현대에서 요새 개념이 반쯤 사장된 이유 그대로, 상대가 중대 전술기지를 통째로 치울 능력이 된다면 그걸 지으려고 씨름하는 것 자체가 멍청한 짓이다. 물론 축성 자체에 필요한 자원과 비교하면 치우는 데 드는 자원이 낭비일 수는 있는데, '시간'으로 따지면 몇 달을 굴러가며 지은 요새가 한순간에 지워지는 수모를 당할 수 있다.
또한 중대전술기지는 진정한 요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옥쇄"를 각오하고 설치하는 시설이다. 내부 참호들이 아군과 적 모두에게 미로와 다를 게 없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탈출로는 '''없다.''' 만약 중대전술기지가 터져버리는 경우, 이는 거기에 주둔한 병력이 완전히 전멸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모순적인 특징으로 인해, 미군이 firebase 개념을 개편할 때 중대 전술기지 교리를 참고하긴 했어도 중대 전술기지는 베트남 전쟁 이후 다시는 재현되지 못했다.
사실 중대전술기지 교리의 결정적 문제점은 공세를 거부하고 지역 봉인(?)에 치중하는 매우 '''소극적'''인 교리라는 것에 있다. 미군이 중대전술기지 교리를 보고 어처구니없어하며 비판한 것은, 축성물 설치가 가지는 근본적 문제뿐만 아니라, "기껏 파병 왔으면서 안 싸우겠다는 거냐?"는 당연한 불만도 큰 이유였다. 이 교리를 고안한 채명신 장군 본인부터가, 국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 소극적으로 작전을 펼칠 수 있게 할 목적으로 이 교리를 고안했다. 즉 베트남 전쟁이 미군이 제대로 공세를 펼칠 수 없는, 처음부터 정치/외교적으로 망한 전쟁이란 점을 정확히 간파한 것. [3]
즉 "방어자 입장에서 총력전이면서, 방어자의 전쟁 지속 의지 및 유격전 방면 사기가 강력하면서, 공격자 입장에서 공세는 하기 싫은" 베트남전이라는 기괴하기 짝이 없던 특수한 환경이 재현되지 않는 한은 다시 볼 일은 없을 듯하다. 중요한 점은 바로 그 점으로, 현재 미군이 싸우고 있는 이라크와 아프간이 이런 꼴이기에 현대에도 줄기차게 쓰이고 있다...
물론 여기서 '방어자'는 북베트남이다. 반대로 어쨋든 미군과 한국군을 비롯한 다국적군의 파병 명분이었던 남베트남을 주어로 둔다면 분명 '''방어자 입장에서 총력전이면서, 막상 그 방어자의 전쟁 의지와 사기는 개판이고, 오히려 지원온 해외 파병 동맹군이 의지와 사기가 충만한 공격자 상대로 멱살캐리'''했다는 더욱더 기괴한 전쟁이 된다는걸 알 수 있다(...)
결국 중대전술기지 교리가 전설로 회자되면서도 실질적으로 다시 활용된 일이 없는 것은 이 교리가 "공격자의 입장에서 공세를 최대한 안 하려고" 나온 교리이기 때문에, 방어자 입장에서 부적합한 교리일뿐더러, 공격자도 당연히 쓸 일이 없어야 정상인 교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전진 축성물의 중요성을 재조명했다는 점에서는 큰 의미가 있으며, 이는 미국의 파이어 베이스 및 FOB 개념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5. 대중매체에서의 중대전술기지


[1] 예전에는 러시아의 광활한 동토 마냥, "진짜 종심"과는 거리가 먼 온갖 똥땅(?)이 많았기에, 적이 깊이 들어와도 별 문제없었지만, 이제는 땅 자체가 줄어들어버렸으니 어쩔 수 없이 좀 더 핵심적인 영역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2] 로마 제국에서, 고대의 레기온 형식(미식축구형 땅따먹기)이 점점 오리엔트식 기병 교리로 교체되어간 것은 이곳저곳을 들쑤시는 적들을 느려 터진 보병으로는 다 틀어막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3] 애초에 베트남전 파병 이유 중 하나가 미국이 주한미군을 베트남에 전용하려는 걸 막기 위함이었는데, 구정 공세 이후로 제코가 석자가 된 미국이 또 주한미군을 빼니 마니 하면서 한국 입장에서도 불만이 상당했고, 적극적으로 싸울 정치/외교적 이유도 약해지니 갈수록 공세에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구정 공세 이후에는 미군도 충격으로 한동안 매우 소극적, 방어적으로 변했기에 이걸 가지고 한국군을 비판하는 건 거의 어불성설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