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리즈

 

'''지미 리즈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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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a0021>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No.50'''
'''지미 리즈
(Jimmie Reese)
'''
'''본명'''
제임스 허먼 솔로몬 (James Herman Solomon)
'''출생'''
1901년 10월 1일
'''사망'''
1994년 7월 13일 (향년 92세)
'''국적'''
미국
'''포지션'''
내야수[1]
'''투타'''
우투좌타
'''소속구단'''
뉴욕 양키스 (1930~1931)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32)
[image]
지미 리즈는 극히 짧은 메이저리그 선수생활과 특기할 점 없는 코치 생활을 했으나, 말년에 LA 에인절스 구단에서 세운 공을 인정받아 사후 영구결번된 인물이다. 뉴욕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서 LA에서 성장했다. 본명은 제임스 허먼 솔로몬인데, 유태인 야구선수들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피하기 위해 본래 성인 솔로몬 대신 Reese라는 성을 야구인생 내내 사용했다(지미는 제임스의 애칭).
통산 ML 성적은 위 사진처럼 별 것 없다. 선수 생활은 1924년 트리플A 오클랜드 오크스 입단으로 시작했는데, 1927년 팀이 리그 우승을 하던 해에 필딩률 .984로 리그 1위를 차지하기도 했었다. 그 해 9월 양키스로 트레이드된 리즈는 1930년 ML로 콜업되어 백업 2루수 역할을 수행했는데, 양키스 생활을 하며 가장 특기할 만한 점이 베이브 루스와 룸메이트였었다는 것일 정도로(...) 묻힌 커리어였다. 1931년 9월 세인트폴 세인츠로 보내졌다가, 1932년에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6월까지 잠깐 뛰었다. 그 후 트리플A의 에인절스와 샌디에고를 거쳤고, 1938 시즌 후 야구계에서 은퇴했다.
1942년 11월부터 1943년 7월까지 켄터키 주 포트 캠벨에서 군복무를 한 리즈는 2차 대전 후 보스턴 브레이브스에서 스카우트로 일하다가, 1948년 샌디에고의 코치 자리를 제시받아 1960년까지 코치 일을 했다. 1960 시즌 종료 후 팀에서는 리즈에게 감독 자리를 제의했지만, 리즈는 코치 역할을 수행하고 싶어했기에 팀을 떠났다. 1963년부터 1970년까지 하와이, 시애틀, 포틀랜드 등에서 코치직을 수행한 그는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스카웃 일도 했다.
그러다 1972년, 71세의 리즈는 에인절스에 구직 신청을 했고, 컨디셔닝 코치로서 선수들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그의 특기는 펑고 쳐 주기였다. 그는 직접 만든 펑고 배트를 썼는데, 선수들은 그가 원하는 곳 어디로든 펑고를 날려보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심지어는 타자들 타격 연습 때 마운드에서 손으로 공을 던지는 대신 펑고로 공을 날려 주기도 했다고(...) 사람 됨됨이가 너무 좋아서 "the nicest man in baseball"이라고까지 불렸다 한다. 그와 친분이 깊은 놀란 라이언은 그를 기려 자기 아들 한 명의 이름을 리즈로 지었을 정도. 팀에서 무려 22년 동안 묵묵히 일을 수행했고, 1994년 7월 13일, 지병인 폐렴이 악화되어, 캘리포니아 산타 애나에서 9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이듬해 그의 등번호 50번은 당연히 영구결번되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자녀도 없었는데, 평소 가족과는 소원한 사이였다고 한다. 본문에 언급되었듯 베이브 루스와 룸메이트이기도 했고, 놀란 라이언레지 잭슨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또한 93세 시즌에도 코치로서 유니폼을 입고 풀 시즌을 보냈는데 이는 최고령의 기록이'''었'''다, 2016년 레드 셰인딘스트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특별보좌로 임명되어 2018년 9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유니폼을 입고 코치 생활을 하며 이 기록은 깨졌다.
2003년에는 퍼시픽 코스트 리그(트리플 A)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