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라이언

 

'''놀란 라이언의 수상 이력 / 보유 기록'''
[ 펼치기 · 접기 ]

'''메이저 리그 올센추리 팀 일원'''
[ 펼치기 · 접기 ]

'''이름'''
'''놀란 라이언
Nolan Ryan
'''
'''포지션'''
'''투수'''
'''}}}#ffd700 득표수}}}'''
'''}}}#ffd700 992,040}}}'''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1969'''
-






'''명예의 전당 헌액자'''
[image]
'''놀란 라이언'''
헌액 연도
1999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98.79% (1회)

보유 기록
통산 최다 탈삼진
5714개
통산 최다 볼넷
2795개
통산 최다 노히트 노런
7회
통산 최소 피안타율
0.204
9이닝당 최저 피안타
6.56개[36]
최다 300+ 탈삼진 시즌
6회[37]
최다 볼넷왕 시즌
8회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No.30'''
'''휴스턴 애스트로스 No.34'''
'''텍사스 레인저스 No.34'''
'''린 놀란 라이언 주니어
(Lynn Nolan Ryan Jr.)
'''
<colbgcolor=#c0111f> '''생년월일'''
1947년 1월 31일 (73세)
'''국적'''
[image] 미국
'''출신지'''
텍사스 주 리퓨지오
'''신체'''
188cm / 88.5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65년 드래프트 12라운드 (NYM)
'''소속 구단'''
뉴욕 메츠 (1966~1971)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72~1979)'''
'''휴스턴 애스트로스 (1980~1988)'''
'''텍사스 레인저스 (1989~1993)'''
'''수상'''
'''8회 올스타전 출장 (1972-1973, 1975, 1977, 1979, 1981, 1985, 1989)
월드시리즈 우승 (1969)'''
2회 NL 방어율왕 (1981, 1987)
11회 탈삼진왕 (1972-1974, 1976-1979, 1987-1990)
1. 개요
2. 선수 시절
2.1. 초인적인 체력과 내구력
4. 은퇴 이후
5. 피칭 스타일
5.1. BABIP 컨트롤 능력
5.2. FIP의 아웃라이어
6. 가족 관계
7. 연도별 성적
8. 기타
9. 어록


1. 개요


'''1991년의 통산 7번째 노히트 노런 달성 모습'''

'''The Ryan Express.'''

그의 통산 기록

전 메이저리그 선발투수이자 전 텍사스 레인저스의 공동 구단주 겸 사장, 현 사업가. 통산 fWAR 106.7 - 역대 6위.[1] 1960년대에 데뷔한 선발 투수가 오늘날의 특급 불펜 투수들을 능가하는 구속을 유지하며 27년[2]을 현역으로 뛰었다. 최근 메이저리그 추세에 따라 선발투수들의 평균구속도 계속 오르고 이닝소화도 과거보다 떨어지는 추세에서 강속구 투수들이 너도나도 할 거 없이 몇 년 못가고 수술대에 오르고 IL에 가는데 '''라이브볼 시대에 구속, 구위, 이닝소화 어느것도 놓치지 않고 27년동안 정상급에 군림한 선발 파이어볼러 라이언은 진지하게 철강왕을 넘어 강화인간이 아닐지 의심이 될 지경..'''
통산 성적은 324승 292패, 방어율 3.19. '''삼진 5714개로 통산 1위.''' 리키 헨더슨의 통산 도루와 함께 '''사실상 경신이 불가능한 기록'''이다. 2위인 랜디 존슨의 기록(4875개)보다 900개 가량 많다. 1년에 300K씩을 잡아대도 19년을 던져야 세울 수 있는 기록으로, 시즌 300K는 2002년 랜디 존슨이 기록한 이후 2015년 클레이튼 커쇼가 기록하기까지 13년이나 나오지 않은 기록이다. 200K씩 잡아내면 28년하고도 반 시즌이 더 걸리고, 최근 탈삼진왕들이 잡아내는 정도인 250K로는 23번째 시즌 말미에나 가까이 갈 수 있다. 라이브볼 시대 선수 중 통산이닝 2위, 메이저리그 역대 5위이다. 1, 2, 3위는 19세기말과 데드볼 시대의 레전드 사이 영, 퍼드 갤빈, 월터 존슨이고, 4위이자 라이브볼 시대 1위는 너클볼의 황제 필 니크로.[3] 통산 '''역대 최저 9이닝당 피안타수[4]''' 및 '''역대 최저 피안타율[5]''', '''노히트 노런 7번[6]''' 등 각종 누적 기록 최상위 랭킹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7] 은퇴 시 나이는 한국 나이로 불혹을 훨씬 넘겨 지천명을 바라보는 47세.[8][9][10] 시속 160km의 강속구를 던졌으며 이는 야구판에서 독보적이었다. 40이 되었을 때도 구속이 160 가까이 나왔다고 한다! pitch f/x의 기준으로[11] 놀란 라이언의 전성기 시절 기네스 세계기록에 올라간 최고구속은 '''108마일(174km)'''이 된다.
1993년 9월 17일, '''46세'''가 된 라이언의 마지막 투구는 자그마치 '''158km였다.'''[12]
근데 이런 놀란 라이언은 선수생활동안 사이영상은 단 한번도 받지 못했다.

2. 선수 시절


[image]
1966년 뉴욕 메츠에서부터 시작하여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은퇴하였다. 올스타에 8번 선정되기도 했다. 당연히 1999년 쿠퍼스타운에 입성했다. 레인저스, 애스트로스의 34번이 그의 영구결번이며, 에인절스의 30번도 영구결번되었다. 무려 세 팀이 라이언을 기념해 결번하였는데, 재키 로빈슨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구단에서 영구결번된 선수로 기록되었다.[13] 눈물나는 사실은, 데뷔 3년차의 별볼일 없던 5선발 시절인 1969년 어메이징 메츠의 첫 우승이후, 단 한번도 월드시리즈에서 던져본 적이 없다는 것.[14] 확장 프랜차이즈 초기의 신생팀이었던 에인절스, 애스트로스, 레인저스 등을 돌아다니며 역투했지만 디비전 우승을 하면 리그 챔피언쉽에서 번번이 물을 마셨고 때문에 은퇴때까지 다시는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다.

2.1. 초인적인 체력과 내구력


  • 1972년부터 7시즌중 6시즌이나 탈삼진볼넷 1위를 동시에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통산 기록 또한 탈삼진 5714개, 볼넷 2795개로 둘 다 역대 1위이다. 라이언의 통산 9이닝당 평균 피안타 개수가 겨우 6.55[15]였으니, 대부분의 타자들을 삼진이나 사사구로만 처리한 셈이다. 오늘날에 삼진, 볼넷 둘 다 높은 투수라면 투구수 제한에 걸려서 5이닝 정도가 한계지만, 당시엔 딱히 그런 제한이 없었던 시대였다. 라이언은 경기당 140-150구씩 던진 다음에 3일씩 쉬고 다시 등판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커리어 내내 평균 구속이 95마일 이상이였으니 정말로 특별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 30대 중반을 기점으로 이닝당 볼넷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런데 구위는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40세가 되는 시즌부터 탈삼진왕 4번, 9이닝당 K/9 1위를 40세부터 44세까지 5년 연속으로 기록하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보여주었다.
  • MLB에서 공식적으로 투구수 기록을 하기 시작한게 1988년인데, 1989년에 42세의 놀란 라이언의 경기당 평균 투구수는 127구, MLB 1위였다. 오늘날 금강불괴라고 불리는 저스틴 벌랜더의 2012년 (당시 29세) 기록이 114구를 훨씬 앞서는 기록이다.출처.
  • 1974년 6월 14일, 당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소속 놀란 라이언은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13이닝 동안 235구를 던졌다.그날 경기결과 경기는 15이닝까지 가서 에인절스의 승리로 끝났고, 라이언보다 더 고생했던건 상대팀 투수 루이 티안트인데, 무려 14.1이닝을 던지고 완투패를 당하고 만다. 라이언은 그날 13이닝, 19 삼진을 잡았고, 이중에서 레드삭스 1루수 세실 쿠퍼는 6번이나 삼진당한다. 경기 후 3일의 휴식을(...) 취한 그는 6월 18일 경기에서 6이닝을 던졌고, 이어지는 6월 22일, 27일, 7월 1일 경기에는 3번의 완투(완봉 한번)를 했다. 그해 소화 이닝이 332.2이닝으로 그의 커리어 하이였다.[16]
  • MLB 역사상 유일하게 19삼진 경기가 3번 있다. 모두 연장전 경기.
  • MLB 최장 출전 시즌 기록인 27시즌을 현역으로 뛰었다.[17] 더군다나 놀란 라이언은 선발 투수, 그것도 가장 몸에 무리가 가는 유형의 파이어볼러였는데도 던진 이닝 수가 5386이닝으로 역대 5위다.
  • 1986년에 리그에서 6번째로 나이가 많은 선수였고 1990년부터 1993년까지 4년간 리그 최고령 선수였다.
*한 경기당 소화 이닝이 7이닝에 육박한다(!!!)

3. 명예의 전당 통계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놀란 라이언
84
254
256
56
HOF 입성자 평균
40
185
100
50
  • JAWS - Starting Pitcher (31st)

career WAR
7yr-peak WAR
JAWS
놀란 라이언
81.8
43.3
62.6
선발투수 HOF 입성자 평균
73.9
50.3
62.1

4. 은퇴 이후


[image]
은퇴후 마이너리그 팀 구단주도 하고, 2008년에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사장에 취임했으며 2010년엔 파산위기에 직면한 텍사스 레인저스를 척 그린버그와 공동 매입해 레인저스의 구단주가 되었다.
[image]
[image]
'''좌측에서 올란도 세페다[18], 로빈 욘트, 놀란 라이언, 조지 브렛'''
'''동판'''
1999년 98.79%의 득표율로 첫해에 여유롭게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라이언의 득표율은 입성 당시 전체 1위인 톰 시버의 득표율 98.84%와는 단 0.05%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기록이다. 모자는 비록 커리어는 가장 짧았지만 고향팀인 텍사스 레인저스의 모자를 쓰고 입성했다.
[image]
여담으로 2010년 월드시리즈에서 '''환갑을 넘긴''' 라이언이 시구를 했는데 구속은 '''무려 130km 이상'''이였다.[19] 대한민국 현역 프로 투수들의 평균 직구 구속이 141~142km/h를 넘나든다.
[image]
흔한 미국의 65세 할아버지의 시구.. 대충봐도 120km는 넘어 보인다.
올드스쿨에 충실하고 훈련량이 상상을 초월했던 연습벌레답게, 텍사스 레인저스의 구단주가 되면서 자신의 투구 철학을 적극적으로 소속 선수들에게 지도했다. 그 효과인지 현재의 텍사스 레인저스는 과거 1990년대 막장 선발진이 아닌 준수한 5인 선발로테이션을 갖춘 밸런스가 좋은 팀으로 거듭났고 2010년, 2011년 2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우승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전부 다 월드시리즈 준우승이라는 것. 결국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 보고 2013년 10월 17일 CEO 자리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2014년부터는 아들이 일하고 있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자문 역할로 일하게 되었다.
[image]
현재는 자신의 이름을 내세워 소고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홈페이지 예전부터 라이언은 소고기를 무지 좋아하는 걸로 유명했는데 은퇴 이후에는 아예 소고기 사업을 시작했다. 심지어 소고기를 활용한 레시피 북도 출간했다.
사업용 페이스북 페이지도 있는데 틈틈히 자신의 현역시절 사진을 #tbt라는 태그와 함께 올리신다.

5. 피칭 스타일


[image]
30대에 평균 95마일의 패스트볼로 삼진을 잡는 모습.
[image]
만 46세에 패스트볼로 선수생활 마지막 삼진을 잡는 모습.
라이언이 던진 구종은 단 3개이다. 시속 100마일(161km)에 육박하는 포심 패스트볼과 최고 89마일(143km)의 파워커브, 그리고 85마일(137km)의 체인지업이다. 특히 라이언의 커브는 일반적인 커브와 달리 손목을 심하게 비트는 동작이 없어 롱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라이언이 기록한 최고 구속은 1974년의 100.9마일(162.4km). 하지만 위력은 스피드건에 찍히는 것 이상이었다. 한번은 공이 포수 미트의 포켓을 찢고 백스톱까지 날아가 보는 사람들을 깜짝 놀래킨 적도 있었다.
또한 통산 5위에 해당하는 5,386이닝을 던질 정도로 내구력과 체력이 대단했다. 1980년에서 1988년 사이 라이언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8회(94.6마일)가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이 9회(94.5마일)였다. 특히 라이언은 마흔이 넘은 후에도 95마일 이상의 강속구를 뿌렸다. 이러한 꾸준함 덕분에 나이 40이 넘어서도 200이닝을 던지고 노히트 노런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파워피칭의 기반은 단순히 체력과 강한 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강한 키킹 동작부터 피칭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허리와 다리의 유연성과 내구성이 그의 파이어볼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키킹 높이가 필수적으로 높은 그의 투구 동작은 허리에 보통 무리가 많이 가는 편에 속하지만 그것을 버텨냈다는 것은 내구성과 유연성을 모두 갖췄다는 증거다. 라이언 이후 수많은 파워피처들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야구 전문가들이 놀란 라이언처럼 20년 넘게 롱런하면서 힘이 유지되는 강속구 투수가 다시 나오기 힘들다고들 평가하는 것은 라이언 수준으로 탁월한 유연성과 내구성, 강한 어깨의 힘을 모두 가진 선수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파워피처 대부분이 10년 이상 선수 생활하면서 나이를 먹으면 어느 순간부터 구속과 구위가 급속히 떨어지며 컨트롤 위주로 투구 패턴을 바꾼다. 라이언처럼 20년 이상 구위를 유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다가 롱런하는 파이어볼러들은 신장을 비롯한 전체적인 체구가 큰 경우가 많은데[20], 라이언은 당대에도 투수 평균 수준, 현재의 잭 그레인키와 비슷한 체구에 불과했다.
[image] [image]
여기에 정통파 선발투수의 전형답게 근성하면 또 놀란 라이언이었다. 2회에 '''턱에 타구를 맞고 피를 흘리면서도 7회까지 투구를 계속하던''' 모습은 장엄한 분위기마저 자아냈다.
이러한 극단적인 파워피칭 때문에 한번도 사이 영 상을 타본 적 없으며, 73년 2위, 74년 3위, 77년 3위에 들은 것이 최고기록인 전형적인 콩라인 에이스이다. 당대에 짐 파머, 캣피시 헌터 등 뛰어난 에이스 투수가 있었던 이유도 있지만, 통산 볼넷이 9이닝 당 4.71개로 제구력이 불안했다. [21] 또한 그가 소속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텍사스 레인저스는 70년대엔 아직까지 창단 10년 정도밖에 안된 신생 프랜차이즈로 밑바닥 성적을 계속 찍었기 때문에 아무리 2점대 후반 방어율을 기록해도 승수와 비슷한 수준으로 패가 쌓였다. 사이영 상을 못탄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던지면 던질수록 쌓이는 패배 때문.'''[22] 1987년 시즌은 더욱 가관이었다. 라이언은 41세의 나이에 211이닝을 던져 ERA 2.76, 270 탈삼진으로 '''방어율, 탈삼진 2관왕'''에 올랐지만 8승 '''16패'''를 기록했다. 통산 성적에선 전설의 사이 영퍼드 갤빈[23] 다음으로 가장 많은 패배 (292패)를 기록하였다. 때문에 리그 넘버원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었다. 실제로 팀운이 따르지 않았다는걸 증명하는 기록으로 10K 이상 완투패가 무려 통산 27회로 압도적 1위다. 그래도 무려 27시즌이나 현역으로 뛰면서 21시즌을 10승 이상 기록했고 20승 이상은 두 번이다. 그것만 봐도 라이언의 경기운영이 절대로 나쁜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46살까지 현역으로 뛰는 자기관리만 봐도 보통 투수는 아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던진 공은 98마일짜리 강속구인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24]

1989년 통산 5,000번째 탈삼진 동영상. 상대팀은 당시 호세 칸세코, 마크 맥과이어의 강타선을 보유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오클랜드 어슬래틱스였고, 5,000번째 탈삼진의 제물이 된 인물은 대도 리키 헨더슨이었다. [25]
1991년의 7번째 노히트게임 영상.[26] 이때 나이가 무려 44세이다.(...) 전성기보다 속구의 위력이 줄어서 주로 커브로 결정을 짓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위력 떨어진 속구의 구위가 영상으로 보는걸로도 엄청나다는것을 알수있다.

그의 나이 '''45세''' 때 (35초부터):
"어떻게 이렇게 노화하지 않는거죠? 비결이 뭐죠?"
"저도 비결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도대체 어떻게 당신 나이에 95마일을 던지는거죠?"
"(웃으면서) 비결같은 거 없어요. 저도 몰라요."

5.1. BABIP 컨트롤 능력


통산 6번의 300+ 탈삼진 시즌에, 11번의 최다탈삼진 타이틀을 갖고 있는 투수이면서도, 맞춰 잡는 능력도 그 못지 않게 뛰어났던 선수. 톰 글래빈과 함께 BABIP를 컨트롤 할 수 있었던 투수로 평가 받는데, 스트라이크 존의 바깥을 적극적으로 공략한 것도 있지만, 압도적인 구위 덕분이었다.
놀란 라이언의 커리어를 보면, BABIP가 리그 평균에 비해 꾸준히 낮게 나오며, 그의 커리어에서 리그 평균을 넘긴적은 총 4번인데 그 중 2번은 그의 데뷔 첫해와 은퇴하기 전 해이며 나머지 두번은 각각 리그 평균보다 0.003,0.001 높았을 뿐이었다. 그의 통산 BABIP는 0.265이며 가장 낮은 해인 91년에는 0.230을 마크했다. 91년 리그 평균 BABIP가 0.305 였다. BABIP를 통제 할 수 있다고 평가받는 선수인 톰 글래빈이 커리어 통산 0.280이다.
보통 소화 이닝 수가 길면 길수록 수치가 안좋아지고, 때문에 마무리 투수들이 선발 투수보다 수치가 좋게 나온다. 트레버 호프만, 마리아노 리베라는 0.263을 마크 했다.
이러한 맞춰잡는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파이어볼러 임에도 27년간 단 한번의 부상도 없이 롱런했으며, 라이브볼 시대 2위인 5386이닝을 소화[27]하며, 통산 7회라는 압도적인 수치의 노히트노런[28], 역대 최저 9이닝당 피안타 갯수, 최다 1피안타 경기 타이기록(18회), 최다 2피안타 경기(13회)를 기록했다.

5.2. FIP의 아웃라이어


하지만 매우 낮은 BABIP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언의 통산 ERAFIP에 비해 높은 편인데, 그 이유는 FIP가 놓치는 부분인 투구 외의 부분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라이언의 수비력은 최악이었다. 2차대전 이후 500이닝 이상 던진 투수 중 최다 실책(90개), 최저 필딩율(.895)기록자이다. 또한 2차대전 이후 최다 폭투(277개)를 기록했으며, 통산 757개의 도루를 허용할 정도로 주자 억제력이 최악이었다. 도루 저지율은 25%에 불과하다.
그리고 루상에 주자가 있을 때의 피 OPS가 주자가 없을 때에 비해 11.7% 높다.
요약하자면 라이언은 역대 최고의 안타 억제 능력을 가진 동시에 수비력 면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할 수 있다. 최다 실책, 폭투, 도루허용 같은 경우 누적기록이기 때문에 27시즌이나 활동한 라이언이 나쁠 수 밖에 없다.
라이언의 경우 워낙 오랜기간 활동했기 때문에 현대 투수로 오해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라이언은 60년대 말에 데뷔한 투수 분업화 이전의 투수다. 이 시절 에이스들에 대한 혹사는 극심하여 200이닝은 물론이고 300이닝 이상, 40경기를 선발 등판한 경우도 많았다. 당연히 투구 수 관리도 되지 않았다. 일례로 1974년 6월 14일 경기에서 라이언은 무려 235구를 던졌다. 때문에 철저한 투구 수 관리와 체계화된 불펜진의 지원을 받는 현대 투수들과 달리 경기내적 요소 전반이 현대 투수들과 비교되기 어려우며 현대 투수들을 기준으로 라이언의 수비력 등이 평가되기도 어렵다. 27시즌, 5000이닝을 뛴 선수가 고작 90개 정도의 통산 실책[29]을 범했다는 이유로 수비력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아웃라이어들은 1945년부터 1980년대 말 투수분업화가 자리를 완전히 잡을 때까지 많은 수가 나타났으며 라이언 정도의 괴리를 보여주는 인물로는 워렌 스판이 있다. 이러한 괴리의 원인을 정확히 알기는 힘들며 결과만 가지고 평가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6. 가족 관계


  • 린 놀런 라이언 (부)
    • 쥬디 라이언 (첫째 누이)
    • 린다 라이언 (둘째 누이)
    • 매리 루 라이언 (셋째 누이)
    • 진 라이언 (넷째 누이)
    • 로버트 라이언 (형)
  • 마르타 리 행콕 (모)
  • 루스 홀도르프 (처)

7.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1966
NYM
2
0
1
0
0
3
15.00
5
1
3
0
6
2.667
28
-0.1
-0.2
1967
메이저 기록 없음
1968
21
6
9
0
0
134
3.09
93
12
75
4
133
1.254
98
0.5
0.9
1969
25
6
3
1
1
89⅓
3.53
60
3
53
1
92
1.265
104
1.5
0.5
1970
27
7
11
1
0
131⅔
3.42
86
10
97
4
125
1.390
118
1.0
1.5
1971
30
10
14
0
0
152
3.97
125
8
116
15
137
1.586
86
0.5
-0.3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1972
CAL
39
19
16
0
0
284
2.28
166
14
'''157'''
10
'''329'''
1.137
128
5.4
6.4
1973
41
21
16
1
0
326
2.87
238
18
'''162'''
7
'''383'''
1.227
123
8.7
7.7
1974
42
22
16
0
0
'''332⅔'''
2.89
221
18
'''202'''
9
'''367'''
1.272
118
6.3
5.9
1975
28
14
12
0
0
198
3.45
152
13
132
7
186
1.434
102
2.4
2.6
1976
39
17
'''18'''
0
0
284⅓
3.36
193
13
183
5
'''327'''
1.322
99
5.3
3.5
1977
38
19
16
0
0
299
2.77
198
12
'''204'''
9
'''341'''
1.344
141
6.6
7.8
1978
31
10
13
0
0
234⅔
3.72
183
12
'''148'''
3
'''260'''
1.411
98
5.0
2.6
1979
34
16
14
0
0
222⅔
3.60
169
15
114
6
'''223'''
1.271
113
5.1
3.8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1980
HOU
35
11
10
0
0
233⅔
3.35
205
10
'''98'''
3
200
1.297
98
4.3
1.5
1981
21
11
5
0
0
149
'''1.69'''
99
2
68
1
140
1.121
'''195'''
4.2
5.1
1982
45
16
12
0
0
250⅓
3.16
196
20
'''109'''
'''8'''
245
1.218
105
3.4
3.1
1983
29
14
9
0
0
196⅓
2.98
134
9
101
4
183
1.197
114
3.0
2.1
1984
30
12
11
0
0
183⅔
3.04
143
12
69
4
197
1.154
109
3.8
1.7
1985
35
10
12
0
0
232
3.80
205
12
95
9
209
1.293
91
4.3
1.5
1986
30
12
8
0
0
178
3.34
119
14
82
4
194
1.129
107
2.9
2.0
1987
34
8
16
0
0
211⅔
'''2.76'''
154
14
87
4
'''270'''
1.139
'''142'''
6.0
4.8
1988
33
12
11
0
0
220
3.52
186
18
87
7
'''228'''
1.241
94
3.0
1.7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1989
TEX
32
16
10
0
0
239⅓
3.20
162
17
98
9
'''301'''
1.086
124
7.0
5.1
1990
30
13
9
0
0
204
3.44
137
18
74
7
'''232'''
'''1.034'''
114
5.2
3.5
1991
27
12
6
0
0
173
2.91
102
12
72
5
203
'''1.006'''
140
4.9
5.2
1992
27
5
9
0
0
157⅓
3.72
138
9
69
12
157
1.316
103
3.5
2.0
1993
13
5
5
0
0
66⅓
4.88
54
5
40
1
46
1.417
86
0.7
-0.6
<color=#373a3c> '''MLB 통산'''
(27시즌)
807
324
292
3
1
5386
3.19
3923
321
'''2795'''
158
'''5714'''
1.247
112
104.5
81.3

8. 기타


  • 박찬호가 발차기로 인해 ESPN 선정 역대 벤치 클리어링 순위권 영상 10위 안에 올랐을 때, 놀란 라이언은 1위에 올랐다. 당시 시카고 화이트 삭스 선수였던 로빈 벤추라[30]에게 빈볼을 던져 벤추라가 달려나오는데, 벤츄라의 머리를 간단히 붙잡아 헤드락을 걸고 해머링을 수차례 날렸다. 무서운 점은 당시 놀란 라이언은 은퇴하던 해인 46세였고, 벤추라는 26세의 팔팔한 청년이었다[31] 이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빈볼을 맞은 벤추라가 화가나 투수에게 뛰쳐나가긴 했는데 메이저리그 전설 중의 전설이자 최고참인 라이언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이에 헤드락이 걸렸다. 이 소스가 꽤 감명 깊었는지 불암갑도 웹툰에서 소재로 사용한 적이 있다. 사실 라이언 본인에게 대단히 위험한 장면이였던게, 몰려든 시삭스 선수들에게 깔려 실신직전까지 갔었다. 위험한 순간에 상대팀 화이트삭스의 외야수 보 잭슨[32]이 선수들을 떼어내 그를 구해줬다. 경기후 라이언이 그에게 따로 감사의 전화를 했다고 한다.
워낙에 '유명한 난투극'이라 요즘도 랭킹쇼를 하면 심심치않게 나오는 장면이기도 하다. 가장 최근인 2016년 호세 바티스타 vs. 루그네드 오도어 난투극 때 ESPN Sports Center Top 10 - 역대 최악의 난투극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 그 후 20년이 지난 2012년 로빈 벤츄라가 시카고 화삭의 감독이 되어 팀을 이끌고 텍사스 레인저스의 홈구장에 원정오자 라이언은 구단주자격으로 쿨하게 덕아웃으로 찾아가 행운을 기원했다는 훈훈한 미담을 선사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텍사스 홈구장인 알링턴 구장에서는 그 패드립 장면을 전광판으로 틀어주어 벤츄라에 대한 야유를 유도했다나...
  • 선수시절 불같은 강속구와 성실성으로 워낙 유명하다보니 올드 스쿨 투 피치 투수들에게 절대적인 존경을 받는다. 비록 비율 스탯 상으로는 라이언에 견줄 수 있거나 뛰어넘은 투수들이 MLB에 있었고 현역 시절에도 사이영상을 못받았지만, 강속구와 성실함과 꾸준함이 어우러져서 소위 말하는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투수로 꼽힌다. 젊은 시절 박찬호가 놀란 라이언 특유의 하이키킹이나 하체단련 프로그램[33]을 통해 강속구 투수로 거듭난 것이나 공만 빠른데 영점 못잡고 헤매던 랜디 존슨을 굇수로 각성시키게 한 것 등의 이야기로 유명하다.
  • 박찬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각주에서도 나오지만 박찬호는 놀란 라이언의 투구폼을 참고하였었고, 여러 차례 놀란 라이언을 가장 존경하는 투수로 꼽았었다. 박찬호가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 놀란 라이언을 직접 만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놀란 라이언은 박찬호에게 "무조건 많이 뛰라."는 조언을 해줬고, 이후 박찬호는 러닝 매니아가 되었다.[34]
  • 1981년 9월27일 34세 328일의 나이로 역대 최초의 노히트노런 5회 달성자가 됐다. 경기 후 라이언은 "이제는 나이 들어서 더 이상은 못 할 거 같다"고 소감을 밝혔지만 1990년(43세 131일)과 1991년(44세 90일)에 두 번을 더 추가했다. 통산 노히트노런 기록은 총 7회.
  • 그의 별명 '라이언 익스프레스(Ryan Express)'를 직역하면 라이언 특급으로 생각하면 될 듯. 이후 몇 년간 강속구 투수들에게 'OO 특급'이란 별명이 붙은 것은 이 별명의 영향이다. 1980년대의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궈타이위엔 등이 있지만, 역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위에 설명된 코리안 특급.
  • 2004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주인공 감사용(이범수 분)이 동경하는 대상으로 나온다. 감사용은 마루에 누워서 놀란 라이언 포스터를 보고 허공에 공을 던지며 최고의 투수가 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9. 어록


'퀄리티 스타트'라... 제가 현역일 때 겨우 6이닝을 던지고 3실점을 했다면 전 바로 강판당했죠. 감독이랑 단장의 곱지않은 시선은 덤이고요. 전 제 스스로의 마무리투수였어요."[35]


[1] 1위는 로저 클레멘스, 2위는 사이 영, 3위 월터 존슨, 4위 그렉 매덕스, 5위 랜디 존슨이다. 로켓맨은 133.7이라는 넘사벽 수치를 찍었지만 약쟁이고, 사이 영과 월터 존슨은 데드볼 시대 투수이다. 즉 fWAR로 볼 때,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과 함께 삼대장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얘기하면 93년도 라이언의 은퇴시점에서 기록은 사이 영과 월터 존슨 다음이었다는 얘기이다. bWAR은 역대 20위. ERA보다 FIP가 0.3이나 낮게 나와서 bWAR과 fWAR의 괴리가 매우 큰 편이다. 메이저리그 Elo 레이팅 1911 - 33위. 로저 클레멘스,아모스 루이스와 공동 33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득표율 98.79% - 전체 4위, 투수 3위. 그렉 매덕스나 랜디 존슨도 이 기록을 깨지 못했다. 투수 1, 2위는 마리아노 리베라톰 시버.[2] 66년도에 콜업돼서 탈탈 털리고(...) 67년을 마이너에서 보낸 뒤 68년에 메이저에서 본격적으로 뛰게 된다.[3] 그러나 퍼드 갤빈의 경우는 내셔널리그만 있던 시절, 아메리칸 리그 전신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소속이었던 시절의 700이닝 기록을 포함한 것이라 순수 메이저리그 기록으로 인정되는 내셔널 리그 성적만 보면 라이언보다 적다. 그렇게 치면 라이언이 4위가 된다. 참고로 퍼드 갤빈은 체인지업의 원조라 불리기도 하며 내셔널리그가 생기기 직전부터 야구 선수 생활을 했던 레전드이다. 내셔널리그 최초 300승도 갤빈이 달성했다. 그러니까 사이 영보다도 훨씬 선배이며 사이 영이 데뷔할 때쯤 은퇴했다. 윌 화이트와 함께 메이저리그 통산 1시즌 최다 투수 선발출장 기록인 75회 를 가지고 있다. 작은 체구에도 강한 공을 던져서 별명이 '작은 증기기관' 이었다고 한다. [4] '''6.6''' 그의 커리어가 27년임을 생각하면 정말로 엄청난 기록이다. 현대의 최강 투수로 뽑히는 페드로가 통산 7.1이다. 약물 시대를 통과했긴 하지만 놀란의 이닝 이팅이 페드로의 2배에 가까운 것을 감안한다면…[5] 통산 '''2할4리'''이다. 2위는 2할5리의 샌디 쿠팩스이지만 샌디 쿠팩스는 2300이닝을 조금 넘긴 것에 비해 놀란 라이언은 5300이닝을 훌쩍 넘게 던졌다. '''3천 이닝'''이 넘는 어마어마한 커리어 차이이다. 그런데도 피안타율이 더 낮다.[6] '''당연히 역대 최고 기록.''' 2위인 사이 영이 3번에 불과(?)하다. 메이저리그 전체를 두고도 2위와 기록 차이가 이렇게 큰 경우는 드물다.[7] 덤으로 2795 볼넷으로 통산 최다 볼넷ㆍ최다 볼넷왕 시즌 기록도 가지고 있다. 2위 스티브 칼튼의 1833개와는 역시 넘사벽의 차이(...)에 볼넷왕을 라이언 다음으로 많이한 맥도웰은 5회이다. [8] 물론 더 많은 나이까지 오래한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기록도 종종 있지만, 다들 레전드로 인정되는 선수가 아니었다. 마이너리그 경력이 중간중간 많던지 해서 대체로 라이언의 누적성적에 비교도 못하는 수준.. 단, 레전드 중에 딱 두 명이 있는데, 첫 번째는 라이언 은퇴 나이보다 2살 더 먹고 은퇴한 메이저리그 사상 최강의 너클볼러 필 니크로다. 이 역시 라이언보다 롱런했다고 하기는 애매한 게 니크로는 20대 후반까지 10년 가까운 오랜 기간 마이너리그에 있었던 후보급 선수 출신이어서 라이언보다 메이저리그 주전생활 기간이 오히려 꽤 부족하다. 한국나이 22살부터 주전생활이 시작되어 26살부터 규정이닝을 채웠던 라이언에 비해 니크로는 10년 가까운 마이너리그 생활 끝에 한국나이 29살이 되어서야 겨우 주전이 되고 그때부터 롱런해서 레전드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관절에 가는 타격 차이를 봐도 너클볼러로 롱런하는 것보다 파워피처로 롱런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건 누구나 아는 사실.. (너클볼 자체는 누구나 며칠 안에 쉽게 익힌다고 알려져 있지만, 엄연히 실전에서 수많은 프로 타자들을 공략할 정도로 익히는 건 많은 시간이 걸리는 다른 문제다. 쉽게 배팅볼 투수로 전락할 수도 있는게 너클볼러다.) 탈삼진, 방어율, 다승 등 대부분의 기록도 놀란 라이언이 조금씩은 다 앞선다. 그러나 필 니크로가 말년에 꾸준한 성적으로 결국 라이언의 메이저리그 통산 소화이닝을 20이닝 정도 넘은 것도 사실이고, 더 많은 나이까지 메이저리그 선수로 버텼기에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까지는 아니다.[9] 두 번째는 제이미 모이어이다. 모이어는 성적에서는 놀란 라이언이나 그 다음으로 언급되는 필 니크로와는 비교가 되지 않으나 그래도 그 근성과 철저한 관리는 50대가 되도록 메이저리그에 있게 한 힘이었다.[10] 그 외에 사첼 페이지가 있다. 페이지는 MLB 커리어는 놀란 라이언이나 그 다음으로 언급되는 필 니크로, 심지어 제이미 모이어와도 비교가 되지 않으나 이건 그의 전성기가 하필이면 MLB가 흑인 선수들을 받아들이지 않던 시절이라 그렇고 니그로리그에서 수많은 전설을 쌓았던 미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이다.[11] 2008년을 기준으로 pitch f/x는 투수판에서 60피트 6인치(18.44m) 떨어진 곳에서 스피드를 측정했다. 이후 2015년부터 투수 손에서 나오는 순간을 기준으로 하는 스탯캐스트의 기준이 탄생하였다.[12] Baseball's Top 100: The Game's Greatest Records, p.32, Kerry Banks, 2010, Greystone Books, Vancouver, BC, ISBN 978-1-55365-507-7 / 안타깝게도 그 투구는 만루홈런으로 이어져 라이언은 강판. 남은 시즌의 일정상 두 경기 정도 더 등판하려고 했으나 22일에 인대가 끊어져 바로 은퇴했다. 이날 출전해서 아웃카운트 하나도 못 잡고 안타 한개와 사구 4개를 허용한 후, 그랜드슬램을 (통산 10번째) 얻어 맞었으니, 그의 27년 프로통산 최악의 등판이였다. [13] 7년 가까이 뛰기도 한 에인절스 레전드기도 해서 라이벌 팀인 레인저스의 구단주가 된 라이언을 초청하여 시구를 맡기는 대인배적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존경받는 선수라는 것.[14] 1969년 월드시리즈 3차전에 출전해서 2.1이닝 1세이브를 거두었다.[15] 메이저리그 역대 1위. 2위는 6.74의 클레이튼 커쇼. 참고로 라이언은 9이닝당 피안타 갯수 단일시즌 1, 3위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두 기록이 각각 1972년과 1991년으로 19년이나 차이가 난다. 커리어 내내 매우 적은 안타를 허용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16] 결국 이 혹사가 탈이 나서 다음해에 198이닝에 그쳤으나(?), 바로 다음 해부터 284.1이닝으로 페이스를 되찾았다. [17] 오직 그와 캡 앤슨만이 가진 기록.[18] 베테랑 위원회로 입성했다.[19] 그 전 ALCS에서도 시구를 했는데 더 편한 복장이어서 그런지 86마일(138km/h)이 나왔다. 그리 힘들이고 던지지도 않았으니 몸 좀 풀고 전력 투구하면 아직도 145가 나올지 모른다.[20] 랜디 존슨은 말할 것도 없고, 로저 클레멘스도 193cm의 키에 110kg에 육박하는 거구였다. 지금의 저스틴 벌랜더 또한 196cm에 105kg 정도.[21] 다만 이건 젊은 시절 너무 볼넷을 많이 내서 그렇다. 캘리포니아 시절까지 9이닝당 볼넷은 6점대를 마크 했지만 휴스턴 이적 이후 평균 3.8을 기록했다. 물론 이 수치도 사이영 상을 수상한 투수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22] 현 시대의 세이버매트릭스 도입과 야구의 인식변화덕에 많이 희석되었긴 하지만, 여전히 사이영상 투표에서 고려를 하는 중요한 요소가 승률이다. 이 때문에 '비슷한 방어율로 적게 던지고 승패없음을 기록하는 투수'보다 '많이 던지고 완투패하는 선수'가 팀 공헌도가 더 높음에도 사이영 상에선 매우 불리한데, 과거엔 이러한 경향이 훨씬 더 강했다.[23] 동물 고환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든 약인 Brown-Séquard elixir를 선수 말년기인 1889년에 주사맞으며 사용했던 것을 언론에 말했다고 한다. 물론 이 시대는 '금지약물'이란 걸 따로 지정하지 않던 시대이니 깎아내릴 이유는 없지만.[24] 위에서도 말했듯이 그의 마지막 패스트볼의 종착지는 좌측담장이었다. 그것도 주자 만루 상태에서. 이 홈런을 쳐냈던 댄 호이트의 93시즌 성적은 2홈런 8타점(...)이었고, 그의 선수 시절 마지막 홈런이었다.[25] 다만 이때 일부러 헨더슨을 상대로 5000K를 달성하기 위해 사포를 이용한 '''부정투구'''를 사용했단 뒷이야기가 있다.[26] 나이도 많고, 무릎과 등의 통증도 있었던데다 경기 전 불펜피칭에서도 불안한 모습을 보여 당시 텍사스의 투수코치였던 톰 하우스가 바비 발렌타인 감독에게 이번 경기는 위험하니 빨리 계투를 준비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했다는 내용이 소개되었다. 발렌타인은 이 경기가 혹시나 라이언의 마지막 경기가 될까 노심초사했다고. 물론 결과는 보이는 바와 같이... 그 경기는 당대 AL 최강팀으로 꼽히던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경기였고, 마지막 순간에 삼진으로 아웃되는 타자는 토론토 최고의 프렌차이즈 스타였던 2루수 로베르토 알로마.[27] 라이브볼 시대 1위는 필 니크로다. 니크로 옹이 너클볼러임을 감안한다면...[28] 참고로 원히터는 12회 기록했으며 이 중 9회 노히터 무산은 5회[29] 시즌 평균은 3.33 정도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등판횟수, 소화이닝이 지금보다 훨씬 길었다.[30] 2012시즌 부터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신임감독으로 선임됐다. 첫 경기가 레인저스전이었는데 라이언이 벤추라에게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31] 두 사람의 생년은 딱 20년 차이다. [32] 본업은 미식축구 선수고 겸업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뛴 걸로 유명한 선수다.[33] 라이언은 달리기 뿐만 아니라 오프시즌에 사이클링으로 하체를 단련했다고 한다.[34] 실제로 투수들의 러닝에 심폐지구력 유지 이외에는 그리 명확한 효과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강속구 투수들에게 러닝은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수많은 강속구 투수들이 꾸준한 러닝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 야구사상 최고의 마무리라고 불리우는 강속구 투수 오승환선수는 러닝을 거의 맨날 해서 스케줄상 기본운동을 쉬는 날도 개인적으로 러닝 하나만은 무조건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35] https://www.mlb.com/angels/news/nolan-ryan-threw-235-pitches-in-one-g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