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트바토로크 조약

 

1606년 11월 11일 오스만 제국합스부르크 군주국 간에 체결된 조약.
1591년부터 크로아티아헝가리에서 15년간 지속된 양국간의 전쟁을 종결하는 조약이다. 전쟁은 초반에 소규모 회전에서 합스부르크 군대가 선전하다가 1526년 모하치 전투 이래 합스부르크와 오스만의 최대의 대규모 회전이었던 1596년 케레츠테스 전투에서 오스만군이 승리했다. 그러나 이 케레츠테스 전투에서 오스만이 승리하기는 했으나 결정적인 승리는 아니었고, 오히려 합스부르크군의 신형 무기의 위력을 체감한 오스만군은 적극적인 공세를 주저하게 된다. 한편 합스부르크는 대규모 회전 대신 요새 탈환 중심의 중규모 전투로 전술을 바꾸었고 이후 전쟁은 10년간 지리하게 지속되었다. 결국 트란실바니아에서 반합스부르크 반란이 일어나자 양국은 종전 협상을 시작했다.
합스부르크 측은 황제 루돌프 2세의 동생인 마티아스가 전권을 부여받아 협상에 임했고, 오스만 측은 술탄 아흐메트 1세가 직접 협상에 임했다. 조약이 체결된 양국간의 국경마을은 현재 슬로바키아 서남부 지방에 위치해 있다.
합스부르크 측은 (서부) 헝가리 왕위에 대한 연공을 3만에서 20만 두카트로 올려야 했지만 1568년 에디르네 조약 이래의 연공 총액은 줄었다. 또 오스만 측은 합스부르크 황제를 '파디샤'로 칭하며 1547년 아드리아노플 조약 이후 60여년만에 신성 로마 제국을 동등한 위치로 대하게 되었다.
트란실바니아 반란으로 인해 종전이 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합스부르크의 판정승으로 평가되는 조약이다. 술탄이 친히 직접 국경에서 조약을 체결한 상황 자체가 이 전쟁이 최소한 오스만의 승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스만은 전쟁에서 승전했을 경우 상대국 군주가 이스탄불로 와서 항복식을 치루도록 해왔다. 또 그동안 이 세상에 단 한명의 술탄(황제)만이 존재해 왔던 오스만은 처음으로 또 다른 황제의 존재를 정식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후 오스트리아와 오스만 제국은 1663년까지 평화를 유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