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저 우주왕복선

 


'''Space Shuttle Challenger'''
[image]
'''STS-7 임무를 위해 발사 중인 챌린저'''
궤도선 제식번호
OV-099
사용국
미국
계약일
1979년 7월 26일
이름을 따온 곳
HMS 챌린저호
최초 비행 임무
STS-6
최초비행일
1983년 4월 4일 ~ 1983년 4월 9일
최후 비행 임무
STS-51-L
최후비행일
1986년 1월 28일
수행 임무 수
10회
총탑승 인원 수

우주 체류 일수
62일 7시간 56분 22초
지구 주회 횟수
995회
총 비행 거리
41,527,414.4km
발사 위성 수
10기
미르 도킹 횟수
0
ISS 도킹 횟수
0
상태
파괴됨
1. 개요
2. 통산 기록
3. 기타


1. 개요


미국의 우주왕복선 프로그램 제 2호기. 1983년 STS-6 미션으로 첫 비행을 가졌다. 원래 활공시험기 엔터프라이즈와 함께 지상 진동 시험기로 만들어졌지만, 우주비행이 가능하게 개조되어 컬럼비아호에 이은 미국의 두 번째 우주왕복선이 되었다.[1]
초대 사령관은 스카이랩 출신의 폴 비츠. 마지막 사령관은 딕 스코비. 셔틀 시대 최초의 EVA, NASA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 최초의 동양계 미국인,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의 야간 발사, 최초의 어보트[2] 등 화려한 기록을 남긴 궤도선이다.
하지만 1986년 1월 28일, 10번째 임무였던 STS-51-L을 위해 발사된 후 폭발하며 공중분해되어 비행사 전원이 사망했다. 추운 날씨로 인해 고무패킹이 경화되어 연료가 누출했고 이것이 고온 고압의 환경에서 화재를 일으키며 폭발했다.

2. 통산 기록


STS-6 미션으로 처음 발사된 이후, 운용되었던 4년 동안 어떤 궤도선보다 자주 우주로 나갔고 많은 시간을 우주에서 머무른 우주왕복선이었다. 총 69일(지구시간)을 우주에서 보냈고, 지구를 987바퀴 선회했으며 총 60명의 남녀가 챌린저에 탑승했다.
챌린저는 우주로 올라간 첫 미국인 여성, 우주로 올라간 첫 아프리카계 미국인[3], 미국인 여성이 하는 우주유영[4], 우주왕복선 계획의 첫 우주유영[5], 사상 최초의 무선 EVA[6], 최초의 궤도 진입 중단[7], 최대 인원 수송[8] 등의 기록들을 세웠다. 또한 야간 발사를 실시한 사상 최초의 우주왕복선[9]이었고, 고장난 인공위성을 우주에서 잡아 보수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첫 왕복선[10]이기도 했다.

3. 기타


대부분의 매체 관련해서는 그 최후의 비행과 폭발사고 때문에 비운의 아이콘처럼 등장한다. 장 미셸 자르Rendez-Vous도 원래는 챌린저에서 우주-지상 합동콘서트가 계획되어 있었다가 이 사고 때문에 추모곡으로 바뀌었고...
러시아 영화 '스테이션 7'은 1985년 살류트 프로그램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챌린저호가 폭발사고 이미지로 그려지지 않는 드문 작품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고증오류로 당시 챌린저호는 살류트 7호에 그정도로 근접비행하지는 않았다.

[1] '챌린저'의 이름은 우주왕복선이 만들어지기 이전, 최후의 달 유인 탐사 미션이었던 아폴로 17호의 달 착륙선에서도 쓰였다.[2] STS-51-F. SSME 이상으로 인해 발사 도중 ATO 절차를 실행하고 예정보다 많이 낮은 궤도에 진입했으나 이 미션은 위성을 쏘는게 아니라 스페이스랩(우주 과학실험) 미션이었기 때문에 그냥저냥 예정된 실험 다 하고 집에 왔다.[3] 가이 블루퍼드(Guion Bluford), STS-8.[4] STS-41-G[5] STS-6[6] STS-41-B[7] STS-51-F. 다만 이 미션 자체가 위성 쏘는 미션이 아닌 우주에서 실험하는 미션이어서 예정보다 저궤도라고 미션 자체에 별 지장은 없었기에 조금 수정한 일정을 전부 수행하고 돌아왔다.[8] STS-61-A 역대 유일무이한 8인 발사/8인 귀환 미션으로, 스페이스랩 미션이어서 스페이스랩의 관제 또한 휴스턴이 아닌 서독에서 맡았다.[9] STS-8[10] STS-7. 이 위성의 캡처 훈련을 받고 임무를 수행한 사람이 샐리 라이드였다.